12시가 되면 행복한 고민을 하곤 한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옆 팀 동기와 새로 생긴 국물 떡볶이집에 가기로 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 될지도?!! 설.렌.다!
하지만 오늘 점심은 팀 점심. 오늘도 메뉴는 국밥이겠지. 그리고 오늘도 내가 팀장님 앞자리일거다. 팀장님을 필두로 사무실 근처 국밥 가게로 걸어갔다.
"지시사항 챙겼나? 했으면 보고 안하나?"
(아, 앉자마자 업무 이야기. 국밥아 빨리 와라..)
"순대국밥 섞어 어느 쪽이라예?"
(이모야~ 살려줘서 고맙십니더..)
먹을 땐 일 이야기가 멈춘다. 입이 하나라서 정말 다행이다. ‘나 국밥 먹었어요~’ 알리는 양 온몸에 그윽하게 밴 국밥 향기. 조심해서 먹었는데 셔츠에 김칫국물은 언제 튄 건지 모르겠다.
국밥. 이름부터 굉장히 심플하다. 국과 밥. 지역별로 플래그십 국밥이 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부산의 돼지국밥, 대구의 따로국밥, 그리고 전주 콩나물국밥이다.
부산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당시 경상도로 피난 간 피난민들이 미군부대에서 쓰고 남은 돼지 뼈를 고아 먹었다는 설이 있다. 푹 끓인 돼지국밥 한 입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던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보다.
대구 따로국밥은 장작이나 땔감을 사고파는 나무시장에서 요깃거리로 즐기던 장터국밥이 시초라고 한다. 이때 연세가 지긋한 사람들은 치아가 약했는지 ‘내는 밥과 국을 따로 내 주소’ 했었고, 옆에 있던 이들도 ‘여도 따로 함 줘 보이소’ 하던 게 유행어처럼 되면서 자연스레 생긴 메뉴란다.
마지막으로 전주 콩나물국밥은 전통식 콩나물국밥이라고도 불리는데, 밥을 만 콩나물 국에 양념을 더하고 그 위에 날계란을 얹어 끓여 나오는 방식이다. 전주지방의 토양과 수질이 콩나물을 키우기에 최적의 환경이었기 때문이란다. 이것 말고도 유명한 국밥은 여럿인데, 선지국밥이나 피순대국밥 등 기회 되면 한 뚝배기 해 볼만하다.
회사생활 1년 째. 수십그릇의 국밥을 먹을 때면 가끔 궁금해진다. 팀장님들은 왜 국밥을 좋아할까?
특히나 가성비의 국밥이다. 내 얇은 지갑으로도 얻을 수 있는 몇 안되는 행복이랄까? 빠른 조리가 가능해서 한 그릇 뚝딱 얼른 해치울 수도 있다. 그치만 거기 맛 들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회사에서 너의 주식은 국밥이 될 수도..^^
대한민국 팀장님들은 유난히 국밥을 좋아한다. 무슨 사연이 있나? 쓸데없는 질문 같다만 신입사원의 패기로 한번 물어봤다.
"머하나! 밥 무러 가자!"
"넵, 근데 우리 그제도 그 국밥 먹었는데, 팀장님 국밥 되게 좋아하시네요 ㅎㅎ"
"안 좋아한다! 빨리 먹을 수 있다 아이가!"
그렇다. 팀장도 사람인지라 국밥이 딱히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다. 물론 비 오거나 추울 때 먹는 국밥은 정말 소울푸드긴하지만 평소 회사에선 크게 당기진 않는 메뉴다. 오전 내내 이 업무 저 업무로 정신없다가 점심시간에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데, 점심메뉴라도 기똥찬 걸로 내 맘대로 정해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거다. 크게는 성별, 나이, 직급에 따라서 선호하는 점심메뉴도 차이가 난다.
* 여사원
지지고 볶고 굽고 냄새가 많이 나는 류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의 메뉴보단 깔끔하고 정갈하고 비주얼이 훌륭한 메뉴를 좋아하더라. 사진 찍어야 하니깐. 아니면 진리의 분식집이라거나. 신발 벗고 들어가는 좌식형 식당은 서로를 위해 Nope! 식사 후 커피 한 잔은 사랑입니다♥
* 남사원
씹는 맛이 있고 국물이 얼큰하거나 시원하다거나 뭐 그런 메뉴? 그 와중에도 옷에 냄새 배고 국물 튀는 부분은 나름 민감해한다ㅋㅋ 꽃 같은 남사우들이 늘어남에 따라 여기서도 역시나 SNS 업로드할만한 메뉴를 Pick 하기도 하지.
* 20대~30초 중반
점심메뉴 선택에 나름 신중한 나이대다. 메뉴 선정 고민에 20분은 할애할 의사가 있음. '근처서 새로운 식당을 본 것 같다', '어디가 맛있다는데 가보자' 와 같은 의견 공유가 활발하다. 눈빛엔 고민과 열정이 비친다. 젊음의 패기와 수용력덕에 메뉴 선택 폭도 넓고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맛집을 찾으려 고뇌하고 맛나게 먹는 걸 즐긴다.
* 40대 이상
메뉴 고민하는 시간도 아깝고 체력도 아까워하신다. 가까우면 30점 정도의 가산점을 부여하시며 (총점 31점) 신발 벗고 들어가는 좌식형도 제법 선호하시는 편. 방석만 덩그러니 보단 등받이 달린 의자가 준비되어 있을 때 표정들이 현저히 좋아지신다. 인기메뉴는 한식. 무조건 한식이다. 밥, 국, 반찬이 각자의 위치에 충실한 밥상 앞에서야 비로소 나오는 '한 끼 잘 먹었다'.
어찌됐건 팀장님과의 점심식사 때는 보통 국밥이나 찌개류로 통일하려 하고 있다. 물론 미식가시거나 선호 메뉴가 명확한 분이라면 다르긴하다만 맘에 드실 메뉴 고르는 것도 일이니 무난한 국밥으로 대동단결. 맛집이라며 어중간한 거리의 식당을 오가는 것보단 그냥 빠르게 국밥 밀어 넣고 조금이라도 더 쉬는 게 차라리 맘 편하겠다.
점심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업무 스트레스를 푼다는 말을 슬슬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가본 집의 돈가스가 맛있었다는, 그 소박한 행복감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기분이 좋아진다.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남은 하루의 기분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거다.
점심시간은 단순히 한끼 때우는 시간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준다는 건 심오한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깐 아무거나 먹지 말자. 생각없이 국밥이나 뜨진 말자. 꽃길은 못 걷더라도 맛집길은 걷자, 우리. 팀장님 오늘 점심은 따로 드시고 와주세요♥
끝.
'『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입사원김사자] Ep.7 막내로 살아간다는 것 (4) | 2017.06.20 |
---|---|
[신입사원김사자] Ep.6 대학가 자취촌엔 추억이 방울방울 (2) | 2017.06.18 |
[신입사원김사자] Ep.4 오늘밤 야근러는 나야 나~ 나야 나♬ (3) | 2017.06.06 |
[신입사원김사자] Ep.3 너 정말 지방근무해도 괜찮겠어? (5) | 2017.06.04 |
[신입사원김사자] Ep.2 동기사랑 나라사랑, 그것은 진리 (4) | 2017.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