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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6 대학가 자취촌엔 추억이 방울방울

간만에 서울에 올라와서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왔냐?ㅋ"

"마, 대프리카 냄새 난다 옆으로 가라~"

 

시덥잖은 소리까지 얼마나 그리웠는데. 녀석들을 보면 괜시리 코 끝이 시큰해진다.

대학생활 동안 학교 근처서 모두 자취를 했다. 참 많은 상도동 골목 중 희한하게 모두 가까이 집을 구했고 자연스레 자주 만나곤 했었다. 2012년 9월의 첫 만남 이후 2016년 가을까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누가 여자친구랑 싸웠다면 우르르 나와 같이 욕해주고 헤어져서 우는 녀석은 비웃어주고. 그때 참 많이 울었는데..

 

다들 홀로 자취를 하다보니 서로를 의지하며 형제처럼 지냈고 어느새 서로가 많이 익숙해졌다. 금요일 삼겹살(+Alcohol), 일요일 점심(해장)은 일주일의 루틴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방근무 발령을 받아 고향에 내려갔다가 간만에 올라온 서울, 친구들을 기다리던 중 우리의 그 골목 어귀에 발 디뎌봤다. 상도동. 울고 웃던 대학시절 추억들이 공존하던 거리. 이 곳엔 이제 우리 중 누구도 살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다들 상도동을 떠나지 말자고, 직장이 멀든 가깝든 여기서 계속 같이 지내자며 이야기했었다. 근데 직장인 삶이 어디 맘처럼 되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동네를 떠나갔고 얼굴 보기 힘들어져 갔다.

 

편도 1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다 결국 회사 근처로 이주한 J형도. 시험 준비를 위해 도서관 가까이 이사한 Y형도. 출근길 한강대교 교통체증에 고통받다 다리 넘어 이사간 B도. 좀 더 큰 집에서 살고 싶어 옆 동네로 살짝 건너간 S도. 마지막으로 지방근무 발령 받아 남쪽으로 수백 킬로를 내려간 나까지.

 

상도동 골목에 우린 더이상 없지만 함께 한 추억은 남아있다.


 

 

 

졸업하고 직장 다니시는 OB선배들이 학과 송년회에 오시면 늘상 대학시절이 좋을 때야~ 말하곤 했었다. 책상 앞 탁상공론보단 차라리 일이 하고 싶었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땐 대학교 4년이 쓸데없이 너무 길다고, 졸업장 하나 받는데 드는 시간이며 돈이 너무 아깝다고 푸념하곤 했지. 직장인이 된지 1년하고도 6개월 차. 선배들의 말에 고개가 세차게 끄덕여진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나의 대학교 시절. 그 중 가장 그리운 건 같이 수업 듣고 학식 먹고 공강시간에 노닥거리던 친구들이었다. 도원결의의 술잔을 부딪치던 녀석들도 챗바퀴 속 직장생활에 놓이다 보면 어느새 목소리가 가물가물해진다. 연락을 한번 해야지, 마음 먹었다가도 정말로 바빠서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모처럼 시간 될 때 건 전화는 연결이 안 된다. 내가 안 바쁠 때는 친구가 바쁘고, 친구가 한가할 땐 내 시간이 안 된다. 카톡이야 자주 할 수 있다지만 남자들의 답장은 모스 부호만도 못하니깐 근황 캐치업도 힘들고.

 

직장인이 되면서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소문도 안 좋을 수 있다며. 분명히 나 아직 애인데, 평균적인 사회 기대치에 발 맞추어 뭔가 좀 어른스러워져야 할 것만 같다. 겉으론 약간은 성숙해진 것 같다. 아직 완벽하게 감출 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감정은 꾹 눌러내게 됐다.

 

상도동 골목에선 정말 많이 울고 많이 웃었었다. 힘들다고 소리 치기도 했고 불같이 화도 냈었다. 감정에 솔직했고 옆에는 친구가 있었다. 맞장구, 조언, 충고, 칭찬, 질책.. 녀석들이 해주던 피드백 또한 솔직했기에 굳이 힘들여가며 어른인 척 행동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학창시절을 보내셨던 동네를 언젠가 함께 지나간 적 있었다.

"친구들이랑 이 근처 빵집에서 시간 보내곤 했었는데.."

 

당시엔 초등학생이었기에 그 말이 어떤 뉘앙스을 내포한 건지 이해 가지 않았다. 오래된 가게들을 한참 쳐다보시는 어머니를 따라 창 밖을 봤지만 '아 그렇구나~' 아니면 '빵 맛있었을까? 먹고 싶다!' 정도의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지방근무로 친구들과 떨어지게 된 후에야 고개 끄덕일 수 있었다. 우리가 늘 만나곤 했던 편의점 앞에 웃고 떠들던 그 시절 모습이 비쳐 보인다. 웃음이 나왔다. 나도 곱씹을 추억이 생겼나 보다.

 

오스트리아의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추억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지 모른다' 라는 말을 남겼다. 대학교. 자취, 친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지금 비로소 그리운 추억으로 다가오는 단어들.

 

자취촌이라고 썼는데 쓰고 나니 '추억촌'이다. 추억촌, 적고나니 은근 이쁘다. 오늘 밤엔 침대에 누워 그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 돌아봐야겠다.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빠짐없이 살라 먹어야겠다. 그리고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푹 자야겠다. 대학가 추억촌엔 추억이 방울방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