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2 동기사랑 나라사랑, 그것은 진리

학교 복도를 지나면서 ‘동창’ 뭐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공원 정자를 지나면서 ‘우리는 동향’이란 말이 들린다. 회사 지하 카페에서 주문줄에 서있다가 ‘A랑 B랑 동문이잖아’하는 말이 귀에 들어온다. 모두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같을 同’이 들어간 단어들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는 질문에 소속감의 민족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동기’도 있다.

 

동기(同期)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시기나 같은 곳에서 교육이나 강습을 같이 받은 사람' 이다. 대표적으로 대학 동기, 군대 동기, 입사 동기가 있다. 친하면 그냥 친구라 불렀던 전에 비해 대학교 이후의 조직에선 꼭 동기라는 호칭을 쓰곤 했다. 어른스러워진건지 나이가 차고 난 뒤의 인연인지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좋든 싫든 그 동기들과 술자리도 하게 되는데, 술게임도 등장한다. 심심하면 외치게 되고 할 말없으면 던지게 되는 ‘동기사랑~ 나라사랑~’ 알딸딸하니 기분도 좋고, 사랑이란 말이 어감도 좋고, 자꾸 말하다 보니 정말 사랑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목놓아 떼창하는 게 참 재미졌었지. 언제 들어도 참 기분 좋은 단어들의 조합이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동기의 중요성이 별로 체감되지 않던 대학시절을 보냈다. 주변에 더 오래 알고 지낸 고등학교 친구들도 있고, 함께 상경한 고향 친구도 있어서. 소속됨에 있어 강제성을 비교적 낮게 띄는 조직이라는 점이 이유일 듯싶다. 수업 듣기 싫으면 안들어도 되고 공강시간엔 시간이 허락하는 내에서 어디든 가도 된다. 법적, 규범적 질서만 지켜주면 아무도 뭐라하지 않으니 심각하게 힘든 순간이 거의 없다. 단체생활함에 있어 애환이 적다보니 함께 입학한 동기들에 의지할 일이 거의 없다. 시험기간에 같이 야식 먹고 밤샐땐 좀 그렇긴 했다만.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간(내던져진) 후에야 비로소 이 동기라는 분들의 중요성이 가슴 사무치게 다가오게 됐다. 가장 보편적인 공채 과정의 경우 입사의 첫단계로 연수원에 입소하게 된다. 이때 사번과 함께 연수원 기수가 부여된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깃수지만 당시엔 소속감 만땅으로 느끼게 해주는 숫자였다. '우리가 000기라는데!' 라며 재잘대곤 했었지.

 

요즘 같이 이직이 빈번해지는 시대에 깃수며 동기며 큰 의미가 없다는 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같은 기수의 동기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고 한다. 회사 술자리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웃음은 동기들 사이에서 나온다. 다른 회식 땐 입만 웃거나 눈만 웃게 되지만.

 

 

회사동기들의 진가가 특히나 발휘되는 순간이 있다.

 

* 회사생활이 전반적으로 지칠 때

회사일로 힘들고 지칠 땐 동기들에게 전화를 건다. 부모님이나 학교친구, 여자친구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들을 순 있겠지만 것보다 동기들에게 고민상담을 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같은 조직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척하면 착 알아들으니깐. 걔네 역시 내가 겪는 힘듬과 어려움을 비슷하게 겪고 있다. 하소연하고 고민을 토로하다보면 굳이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큰 위안이 된다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 누가 괴롭힐 때

꼭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괜히 갈구는 놈들이 늘 있다. 동기네 팀에도 그런 인원이 있는 걸 보면 같은 회사 다니는 거 맞나 보다. 풍토인건가? 퇴근 후 만난 우리는 소주잔을 깨져라 부딪히며 욕을 한다. 안에서 꾹꾹 눌러 참던 감정을 콕콕 찔러 터뜨려준다. 내가 당하면 동기가, 걔네가 겪으면 내가 해준다. 같이 분노해주는 동기들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 화산 폭발처럼 감정을 분출했다가 진정이 되면 괜히 오버했나싶어 무안하기도하고 고마워서 머쓱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서로의 굳은 얼굴을 풀어주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 어쨌거나 퇴사하고 싶을 때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의 반은 동기들 덕이다. 한 달만 같이 더 버텨보자 말하다 1년째 밥 굶지 않을 수 있었다.. 일용할 양식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동기들은 사회에서 만난 가장 가까운 친구다. 잘 사귄 동기 하나가 열 소꿉친구 안 부럽다고, 마음이 통하고 잘 맞는다면 그것만큼 환상의 짝꿍들이 있을까? 지금 내가 겪는 일을 가장 비슷하게 겪고 있고 삶의 형태가 가장 비슷한 친구들이니까.

 

동기들끼리 사이가 가까운 편이다.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고민상담에 별것들을 다 이야기하곤 한다. 전화통화도 잦다. 업무 때문에 전화할 때도 있지만 아무 이유없이 목소리나 한번 들을 겸, 뭐하고 있나 궁금해서 새벽에 전화를 거는 날도 있다. 막상 전화 걸면 시덥잖은 농이나 주고받는데도 어찌 그리 재미난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어느새 덜어져 있다.

 

힘든 회사생활이지만 동기들이 있어 오늘도 버텨나간다. 정글과 같은 회사 내에서 내 편인 녀석들이 있어 든든하다. 좋은 동기들을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었기에 새삼 고마워지는 회사다.

 

동기들과 아직 가까워지지 못했다면 먼저 마음을 터놓고 다가가 보시길. 맘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우정을 꽃피울 수 있는 우리 이름은 동기니깐. 계속해서 찾아올 회사생활의 어려움 중에 큰 힘이 되어줄 친구들이니깐.

 

끝으로 나의 동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앞으로 같이 더 힘내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랑할 수 있는 동기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행복한 직딩이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