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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3 너 정말 지방근무해도 괜찮겠어?

요즘 대다수 대기업 공채 필수 체크 항목이다.

‘지방근무가 가능한가?’

 

서류에 이어 면접에서도 묻곤 하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늘 고민되는 질문. 특히 영업이나 직군 통합으로 뽑는 상황에선 등장 빈도가 특히 높은 편이다.

 

신입들은 입사하자마자 통과의례를 거친다. 배치 면담이라는 이름의 지역 근무자 선출 면담. 면담방에는 비장함마저 감돈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지방행이다. 누군가는 지역 근무를 해야 한다지만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방으로 보내신다면 그만두겠어요!’ 정도의 굳은 심지를 보이면 덜 보내긴 한다만 그것도 공공연한 모두의 전술이 돼버릴 시엔 곤란해진다. 어느 기수에는 신입사원 전원이 퇴사카드를 빼들었고, 분노한 인사담당자는 그냥 다 퇴사하랬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물론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지만.

 

가장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인 건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지만 지방에 연고가 있는 친구들인데, 홈타운으로 가지 않아야 하는 명분이 딱히 없어서 꼼짝없이 팔려갈(?) 수 밖에 없다. 바로 나처럼.

 

시작부터 암울하다. 공채를 준비하는 친구들이라면 이쯤에서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너 정말 지방근무해도 괜찮겠어?

 

 

 

 

지방연고자인 나의 배치면담은 정말 짧았다. 돌아왔더니 동기들이 화장실 다녀왔냐더라. 10분이 채 안됐을 그 시간동안 인사팀과 이런 느낌의 이야기를 나눴다.

 

 "너는 내려가서 어머니 밥먹고 다니면 되겠네~좋겠다."

 "그것도 좋긴한데 저는 서울에서 사먹는 밥이 입에 맞아서요."

 "야, 이번 기회 아님 이제 언제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보겠어. 안그래?"

 "..뭐, 일단에 어디든 가서 열심히 하긴 해야죠."

 

그리곤 난 대구로 내려보내졌다. 살짝 예상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씁쓸했다 했다. 하긴, 서울 토박이들도 전라도와 경상도로 슉슉 보내지는 판에.

 

처음엔 지방 근무를 하게 된 현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향은 명절에나 잠시 내려오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앞으로 몇 년을 지내야 한다니. 며칠 후면 다시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쉽사리 짐을 풀질 못했었다. 그래서 한 달간은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세탁된 속옷을 받아들고 캐리어애 도로 넣는 아들의 기행을 어머니는 별말없이 바라보셨던 것 같다.

 

나는 없는 술자리 사진이 친구들 단체 메신저방에 올라올 때면 소외된 것 같아 울적해지기도 했다. 지방에 부모님이 계셨던 내가 이 정도인데 서울 토박이 동기들은 더 힘들어했겠지?

 

그래도 이곳엔 또 이곳에서의 삶이 있었다. 취미를 가졌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 역시나 지방 근무 중이었던 다른 회사 직원들과도 교류하다 지방 근무에 대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는데...

 

 

*

J양(S그룹, 지방 근무 6개월째) : “확실히 별로긴 해요. 누구는 본사에 근무시키고 누군 지방으로 보내니까. 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한진 모르겠지만 같은 공채 과정을 통해 입사했는데 경쟁에서 밀린 느낌도 들고. 물론 지역이 본사 근무보단 업무 강도 면에서 살짝 프리해 삶의 질은 높다 싶지만 그래도 어렵게 입사했는데 힘들어도 더 클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죠.”

 

K군(L그룹, 지방 근무 1년째) : “다양한 부서에 계시는 선배님들과 교류도 하고 싶은데 그러기 힘들어요. 누가 본사 사람들은 어차피 너 모른다랬을 때 그냥 웃고 치웠거든요? 기회가 돼서 본사 들러보니 그 말이 진짜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인사드렸던 선배가 지역 근무 동기들만 기억 못하시더라고. 일정 기간 근무하면 다시 서울로 로테이션시켜주기로 했다지만 기다리다 지쳐요. 친구들은 어디 믿을 놈이 없어서 인사팀을 믿냐며 한 소리씩 하고...”

 

S군(H그룹, 지방 근무 2년 3개월째) : “지방에서 근무 중입니다. 대학교는 서울에서 나왔어요. 그동안 해온 활동들도 거의 다 서울이 베이스에요. 제 삶은 거기에 있어요. 지방에 있다 보니 자연히 모임도 나가기 힘들어져서 정말 친한 친구들 아니면 관계가 소원해졌어요. 이런 절 보고 ‘변명이다! 그렇게 중요하면 주말이나 시간을 내서 챙기면 되지 않느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시잖아요. 주 중에 막 굴려지니 주말에라도 쉬어줘야 하는 거.”

*

 

취업이 급하다고? '지방 근무 가능하냐'라는 항목에 체크 안 하면 안 뽑힐 것 같다고? (미안하지만 그거 때문에 떨어진 건 아닐 거야)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시장에서 줏대 가지기 쉽지 않은 건 알지만 그래도 무작정 YES! 외치는 지원자가 되진 않기를. 회사의 비전, 직무 적성만큼은 아니지만 근무지도 어느 정도는 중요하니깐.

 

잘 생각해 봐, 정말로 지방 근무 괜찮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