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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71 이웃집 똘똘이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속담이 있다.

격차가 너무 나는 사람들이 아닌 주변과의 비교. 아, 내가 떡 먹을 때 한우 먹는 그런 분들 말고. 고물이 좀 더 묻어 있는 떡을 손에 쥔 옆 사람을 다시 돌아볼 때 말야.

그러니까 비슷한 위치의 누군가가 나보다 나아 보이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을 때 드는, 악하기보다는 부러움과 선망을 내포한 자연스런 욕망을 나타내는 격언이라고 할까나?

 

양재역의 어느 식당이었다. 고기 굽는 냄새와 잡담이 수저와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들려온 '똘똘이' 이야기.

 

 "아, 새로 온 애가 영 시원찮네.. 전에 놈이 똘똘했는데."

 "그래? 어쩌냐? 부서 전체에 똘똘한 애가 아에 없는거?"

 "다른 팀엔 좀 똘똘해 보이는 애들이 몇 있더라."

 "야, 그럼 혹시 걔네를 좀 당겨올 순 없나? 하긴 그게 말처럼 간단치 않긴 하겠다."

 "어렵지..ㅋㅋ 서로 관계도 있고 하니까.."

 

 

사촌동생 아명이 '똘이'였어서 또 누군가의 이름이 오르내리는지 알았다. 여기의 '똘똘이'는 김똘똘이가 아닌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를 귀엽게 일컫는 사회적 대명사의 똘똘이. 뭐, 문법적으론 같은 대명사긴 하지만.

 

목소리 큰 옆 테이블 아저씨들의 똘똘이 이야기는 좀 더 이어졌고, 나는 늦게 온 친구를 데리러 가게 밖으로 나왔다. 약속 시간에 매번 늦는데다 길도 잘 못찾는 걸 보면 이 자식은 전혀 똘똘하지가 않아 보인다.. 아저씨들이 말하던 안 똘똘이가 혹시 얘 아냐?

 

 

 

 

웹툰을 쓱쓱 넘기며 입구에 서 있는데 5미터 앞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어서 들어가자니까 담배 한 대만 피잔다. 1시간 반이나 늦어 놓고.. 아이고 이 똘똘아!

옆자리 아저씨들은 이제 소주를 찾고 있다. 빨간 뚜껑이 더 똘똘한 놈인가보다.

 

똘똘이에 대한 첫 기억은 유치원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과 제법 친하게 지냈었는데, 과자나 빵을 두어개 받아 오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저씨에 하나씩 건네곤 했다. 그때마다 볼을 쓰다듬으며 "아이고~ 요 똘똘한 놈~" 하던 것이 썩 듣기 좋았다.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좋아보이는 어감이었으니깐.

 

볼살이 찰떡 같은 어린이들과 어울리는 '똘똘이'. 여드름에 거뭇한 수염까지 올라오면서부터는 말하는 사람도 또 듣는 사람도 머쓱해지는 그런 단어를 상당히 오랜만에 들은 셈이다.

 

소주 대작을 하며 똘똘이를 찾던 아저씨는 넥타이를 맸다. 경비 아저씨들의 똘똘이 시절의 나는 손수건을 목에 맸었다. 스무 해하고도 수년이나 더 지났음에도 다들 똘똘이를 필요로 하나 보다.  

 

회사에서 똘똘이와 덜 똘똘이 사이의 온도차는 작은 듯 크다. 워낙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인지라 밖으로 굳이 표현은 안한다만, 그 두 부류를 대하는 상사들의 얼굴엔 다 써있다. 그러니 똘똘이와 안 똘똘이를 바라보는 시선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클 수 밖에. 바야흐로 오늘날은 경쟁 시대다. 그리고 똘똘이들에 대한 관심은 지대해지고 있다.

 

 

주말에 학교 선배 결혼식에 다녀왔다. 밥을 먹다 과장급 되는 선배에게 '똘똘한 놈'의 정의를 물어봤다.

"뭐, 사원급에서 똘똘하다는 게 별거 있겠냐? 그냥 시킨 일이나 빨리빨리 처리하는 거지."

 

비밀번호 8282?

 

집으로 가는 길엔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냐, 회사 생활은 좀 할 만 하냐, 물으시던 중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네가 동작이 빠른 편이 아닌데.."

 

삑. 저는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셨습니다.

 

위치마다 본보기가 있다. 그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선호되는 귀감이랄 수 있겠다. 저쪽에서 원하는 기준을 충족시켜주면 이쪽도 어느 정도 괜찮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모범생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대접 받는다. 각각의 산업과 직군엔 존경 받고 이쁨 받는 직원의 전형이 있다.

 

오늘도 우리팀 안 똘똘이가 쫒기었다. 상사는 혀를 찼고 그는 엉덩이를 안 걷어차인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꽤 많은 회사원 친구들이 학창 시절의 원더보이 타이틀을 잃고 눈칫밥풀 묻혀가고 있다. 반대로 사원증을 매고 나서 갑자기 에이스가 된 케이스도 있으니 역시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우리의 시야각은 바로 앞의 모니터를 보면서도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다. 그대로 사무실에 앉으면 1팀과 3팀이 보인다. 늘 가운데가 어중간한 건 무슨 법칙이려나?

 

학교 다닐 때 옆 반 담임 선생님이 더 좋아보였다. 선생님도 옆 반 애들이 더 말 잘 듣는 것 같았겠지? 그래도 지내보면 우리 선생님이 제일이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 그리고 손 안의 새 한마리가 덤불 속 두마리보다 낫다. 왜 꼭 지나고 나서야 알아챌까?

 

이웃집 똘똘이를 쳐다보다 그 집 주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옆 집에서는 우리집 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