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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69 누구를 위하여 한식집 종은 울리나

"독일 법인은.. 돼지 불고기가 맛있지.."

 

마주 앉은 주재원들의 입에선 공감의 폭소가 터졌다. 해외 출장시엔 뭘 먹냐는 나의 물음을 부장님이 이어받은 만담이었다. 웃음의 주체는 반응에 만족스러웠던지 돼지고기를 뜻하는 독일어 'Schwein' 을 거듭 소리치며 쥐고 있던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포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두 개를 붙여 만든 동그란 스텐레스 테이블 위에 놓인 스텐레스 물컵, 깍뚝 썬 오이와 당근, 맹맹한 오뎅탕. 술은 빨간 뚜껑 이슬로다가. 해외 주재원들이 한국 출장 나왔냐고? 높, 본사 사람들이 캐나다 출장 간 거다. 토론토 어느 동네의 한국식 포차 술집. 소맥을 타려고 손에 잡은 'Canadian' 맥주병을 보고야 여기가 어딘지 기억이 난다. 한 병에 3천원짜리 소주나 한 병에 $10짜리 Soju나 ‘이모’에게 주문하는 방식은 동일하니 재밌다.

 

 

법인 도착 환영회 메뉴는 소고기에 소맥이었고 이후로도 한식 대전은 이어졌다. 비행기에서 비빔밥과 국수를 한그릇씩 해치우며 날아왔었다. 출장 전날까지도 국에 밥 말아 김치 얹어 먹었었다. 그러니 30분 남짓 도로를 달려 뭔가 아쉬운 설렁탕을 먹지 않아도 되고, 삼겹살 냄새 배어가며 소주잔에 비친 달을 보진 않아도 될텐데. 바쁜 와중에 환영해준다고 한국 음식점에 데려가는 주재원들의 정성때문에라도 입을 다물겠지만,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누구를 위하여 토론토 한식집의 벨은 울리는 건지.

 

 

 

 

12박 13일 캐나다 출장 일정 간 먹은 음식이다. 돼지주물럭에 소맥, 특 사이즈 설렁탕, 해장국, 떡볶이, 고등어 구이, 명동 칼국수(닉값하는 국물 맛이 의외였던), 김치 찌개, 순두부 찌개, 손만두, 한국식 중국집의 짬뽕과 탕수육과 깐풍기, 족발(불족/온족), 부대찌개, 곱창볶음, 그리고 빠지면 섭할 삼겹살에 소주까지. 가뜩이나 광활해 도로와 들판만이 눈에 들어오는 북미에서 한식을 우물대고 있자면 여기가 대관령인지, 파주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외국인들이나 영어로 된 표지판을 보면 또 이태원인가 싶고..

 

캐나다에는 Victoria 나 London 같은 영국 색깔 짙은 이름의 도시가 여럿 있다. Fish and Chips 를 잘하는 식당이 많다고 하던데 도시 이름도 따올 정돈가 보다. 칼국수가 맛있는 토론토엔 적어도 Myeong-dong Village 라도 하나 만들어야 쓰겄네~

 

몇 달 전 캐나다에서 출장 왔던 현지 직원은 캐나다에 오면 닭날개 튀김에 맥주를 먹어야 한다고 했었다. 토론토의 매주 화요일은 윙 데이라 치킨 윙을 50% 할인 판매한다. 맛있다! 근데 어디서 먹어본 맛인디? 농촌 치킨..

 

 

캐나다에 간다니 '푸틴(Poutine)'을 꼭 먹고 오랬다. 감자튀김과 치즈에다 그레이비 소스를 얹은 이건 이름부터가 프렌치스럽다더니 역시나 프랑스x캐나다 조합의 퀘백 요리였다. 불어로 '엉망' 이라는 뜻의 푸틴은 출장와서 일하는 상황에 딱이었고 맛은 오지치즈후라이스럽다. 순수 자기네 음식도 잘 없을 뿐더러 딱히 맛나 보이는 것도 없는 미국과 캐나다라지만, 그래도 외국이라고 여기만의 음식이 당기긴 하다. 일하러 왔을지언정 식사시간만이라도 먼나라 이웃나라 맛집을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래도 먼길온 후배가 행여 김치 없으며 밥 잘 못 먹을까봐 한식집 데려가주시는 주재원 선배께 감사했고 함께 간 부장님 덕에 매끼 속 편한 한식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결국 몸 건강히 계획된 업무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게 출장 온 목적이니까 - 라고 하면 너무 기성사원스러운가?

 

"내일 출국이라며?"

"아 마지막 날 저녁까지 왠지 삼겹살에 소주 느낌인데.."

"내가 봐선 오늘 백퍼 삼겹살이다ㅋㅋ"

 

출국 전날, 식사 메뉴는 과연 뭐였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