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에다 금요일 연차를 붙여 총 4일을 쉬었다. 그리고 일요일이 왔다. 나를 슬퍼지게 하는 이 날이 평일의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요일이었단 점은 매주 새삼스런 아이러니다.
회사-운동-집-회사-약속-집-회사-운동-집-회사로 돌아가는 지독한 출퇴근 루틴에선 쉬는 날이 특히 간절해진다.
몇 일 전 참석했던 한 커뮤니티의 세미나의 연사님은 어느 책의 인상깊은 문장을 읊어주셨었다.
'우리는 석기시대의 마음을 지니고, 중세의 제도 속에서, 신과 같은 기술로, 스타워즈 문명을 만들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들린다. 당초 전하고자 하셨을 바와는 방향이 틀어진 의미가 전달됐다. '변함 없이 당하면서도 역시나 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역사'로.
밝으면 일어나 어두워지면 자는 인류 역사의 DNA를 품고 생존 활동을 하고 있다. 동시에 사회는 관리에 효율적인 양상으로 위계화 되어 왔다. 피라미드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시대에 따라 변화된 형태의 채찍을 맞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등짝에 난 멍자국과는 상반되는 멋진 신세계를 만들고 있다.
중세 농민들이나 기사들은 제도화 된 도시 시스템 하에서 살아왔을거다. 구석기 시대부터 전해온 먹고 살기 위한 수렵채집 활동을 기저로 한, 보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노동생활을 이어 나갔었다. 개인의 Role&Responsibility 를 다하며 매일의 노동을 버텨나가다 보면 일요일이 온다. 노동 계급에게는 관리인의 눈치를 피해 딱딱한 빵으로나마 배를 채우곤 진탕 잘 수 있는 날이었겠지.
다시 시계가 돌아 현재. 석기시대의 정신을 이어 받아 중세시대의 사회 시스템에 발을 디디고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휴일을 기다리는 동일선 상에 서 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선 쉴 기회가 너무나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님께 열 두 척의 배가 남아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연차 휴가가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한구절처럼, 연차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월요일 눈을 떴을 때와 금요일 아침은 베겟맡에서부터 전해 오는 기운이 다르다.
출근길 걸음걸이부터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속도, 점심밥의 맛, 심지어 중력도 다른 것 같다. 금요일 전까지는 주말과의 심적 거리가 실제보다 멀게 느껴진다.
사회 국가적으로 지정된 쉬는 날에 주말과 공휴일이 있다면 회사에는 '연차 휴가 제도'가 있다. 카드 게임의 조커보다는 긴급 수혈이나 수액 투입 같은 개념이라고 해야 하려나? 생존이나 활력 공급에 직결되니깐..
여름휴가를 포함해서 매년 15개~20개 정도의 연차 휴가를 부여 받게 되는데, 근속연수에 따라 그 갯수도 늘어난다. 연내 미소진시 돈으로 환산해 보상해 주기도 하지만 차/부장급이 아니고서야 쉬는 걸 선호하니 어지간하면 모조리 쓰고들 있다.
그저껜 출근을 위해 겨우 일어나 샤워를 했다. 바지를 입는 중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한번 땅에 닿은 허벅지는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방바닥에 주저 앉아있다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낸다. '팀장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연차 쓰고자 합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심호흡 하자 벌떡 서지는 다리. 반만 뜨인 눈동자도 조리개처럼 활짝 열렸다. 시리얼을 와작 와작 소리 나게 씹으면서 TV를 켰다. 집에서 아침밥 먹으면서 아침 방송을 보고 있다니!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장님을 눈 뜨게 하며 때론 반 죽은 이를 살리기도 하는 연차는 마법이자 기적의 단어다.
아프거나 급한 일이 터진 경우, 여행 계획이 있을 때 연차를 낸다면 가끔 아무 일 없어도 연차를 쓰기도 한다. 늦잠 자고 일어나 삐쭉 선 머리를 하고 영화보며 배달음식 시켜 먹기. 한량처럼 대낮에 운동이나 산책 하기. 친구를 불러내 한 잔 하거나 여자친구와 평일 데이트도 가능하다. 별 이유 없는 연차 사용은 이유 있는 행복을 만들어 준다. 이 역시 마법이자 기적의 순간.
팀장님은 연차를 잘 안내신다. 차장급 이상은 거의 안 쓰는 걸로 보인다. 대다수의 그들은 회사일 말고는 딱히 취미나 시간 보낼 만할 거리가 없는 것 같더라. 좀 쓰셨으면 좋겠다. 다른 의미는 없고 ^^ 본인과 가족들을 위해서.
월 1회 팀장들이 연차 휴가를 쓰는 '팀장 없는 날'이라고 있는데, 다음 달 팀장 없는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직장 부루마불 속에서 여전히 해 뜨면 출근하고 해 지면 퇴근한다. 때론 달빛야근도 하고, 실적으로 줘 터지기도 한다. 이 게임의 황금 열쇠인 연차를 언제 쓸지 고민하면서 일상을 보내는 너희이자 우리.
그래, 연차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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