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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53 입장과 입장 사이

세상에는 나쁜 개가 없다는 TV 프로가 인기를 끈 적 있다.

대소변을 아무데나서 하는 노상방뇨견, 사람만 보면 짖는 경계견, 주인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물어대는 악어견 등 자타공인 '나쁜' 버릇의 강아지들과 훈련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

 

애완동물은 늘 귀엽고 예쁘지만은 않다. 동물들이 피우는 말썽의 수준이 주인 기준에서 이해가 불가하다면 혼이 나기 마련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주인의 심기가 불편하거나 신경이 날카롭다면 훈육의 정도는 더해진다. 꾸지럼의 대상인 강아지는 의례 꼬리를 아래로 말고 눈치를 살피기 일쑤다.

"여기에 쉬하면 나쁜 아이야!!!"

"신발 왜 물어 뜯었어! 나쁜 짓 한번만 더하면 정말 혼날줄 알어!!!!"

 

요즘은 애완보단 반려동물이라고 통칭되는 편이다. 방한 200% 느낌의 패딩점퍼를 입히고 소고기 간식을 먹이며 몇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들여 미용까지 예쁘게 시켜준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마따나 얘네가 적어도 대소변은 가리고 집안을 어지럽히지 말아야하며 밤엔 조용해야하는 최소한의 예절개념을 습득하길 기대한다. 동시에 평가한다. '나쁜' 강아지 혹은 '나쁜' 고양이라며.

물론 어설프고 본능대로 행동하는 동물의 모습 그자체를 사랑해주는 이들도 많지만.

 

 

정말 나쁜 녀석이라서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걸까? 종(種)이 다른 상황에서 착하거나 나쁘다는 개념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게 타당한 건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주인이란 이름의 인류는 그들의 선악 관점에서 반려동물을 바라본다. 짝 반(伴), 짝 려(侶) 두 자로 이뤄졌으니 양쪽이 짝짝꿍을 해야 할 텐데 한 쪽이 다른 쪽 사회의 보편적 사고를 따라야 하는 희한한 상황이다. 그럴거면 반려동물이라고 이름 붙이질 말던가. 어쩔 땐 사람이 동물을 먹어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기까지 하니 그러는게 맞겠다 싶으면서도, 또 걔네가 인간더러 그렇게 해달랬나 싶기도 하고, 나름 복잡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반려동물들의 태도에 대해 좋고 나쁨을 규정하기보단 능동적인 상위 인식능력을 갖춘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차이임을 인정하고 그냥 넘어가는게 나아보인다. 굳이 혼내고 혼나봐야 서로 기분만 상한다.

 

세상에는 나쁜 개가 없다고 부르짖는 이 프로그램의 동물훈련사는 사고뭉치 강아지들을 교정 혹은 치료한다기 보다는 '보듬어준다' 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본인의 직업도 반려견 행동 전문가라고 칭한다. 반려동물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그들의 시선에서 상황을 이해하려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따지자면 사람 사이 관계도 비슷하게 정리할 수 있을 터인데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마찬가지로 좋고 나쁨의 대립이 아닌, 한쪽 입장과 또다른 입장 사이의 대립일거다. 회사라는 집단에 소속된 후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체감하게 되면서 조금씩 느끼는 바가 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와 입장이 같지 않은 누군가가 있을 뿐이지.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아니, 실수란 걸 인정은 하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무게는 100% 내가 짊어져야 한다.

학생때는 진심어린 사과 하나로 어느정도의 잘못은 큰 탈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꾸중을 감내하면 누군가는 혀를 쯧쯧차며 내 과실을 메꿔줬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로도 여전히 진정성 있는 사죄는 감성을 건드린다. 그치만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그들의 이성이 고개 내밀며 말하기를,  "그러셨구나! 안타깝네요..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요."

여기는 사회. '봐 주세요' 가 통하지 않는 냉정하면서도 합리적인 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다. 잘못에 따른 책임은 어떤 형태로든 내가 감당해야 한다. 오늘은 살아남았더라도 내일은 장담할 수 없기에 항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렇기에 직장인들은 본인의 위치에서 상황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타고난 심성에 관계없이 본인 입장에서 유리하게 일을 풀어나가고 싶어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양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때도 있다. 누가 뭐래도 '내 입장'이 우선인 것이 현실이니깐.

결국은 입장과 입장 사이, 그 중에서 내가 경험한 세가지 케이스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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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1. 그 사무직 그 현장직의 사정

 

나는 영업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주로 현장을 베이스로 일해야 하니 연락 오는 곳이 많다. 떨어지는 업무를 즉각적으로 처리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여러가지를 멀티태스킹으로 챙겨야 하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보니 잔 스트레스가 모여 의도치 않은 감정노동도 하게 마련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거래선은 총 7개다. 팀원들을 제외하고도 회사 제품을 파는 거래처에서 근무하는 판매사원들이나 위에 관리자, 도급업체까지 관계자들을 모두 더하면 50~60명 남짓 될거다. 영업관리직은 마케팅팀, 기획팀과 같은 회사 내부 관계자들과 외부 업체나 거래선 사이 중간다리 역할을 도맡고 있다. 따라서 내외부적 업무를 동시에 챙기다보니 휴대폰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장과 사무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내가 관리하는 대상인 현장에서 근무자들은 사무직보다는 비교적 늦은 퇴근시간에다 주말에도 일하곤한다. 서로의 근무시간이 다르니 주로 연락하는 시간대가 서로 다를 때가 많다.

퇴근 후나 주말에 오는 연락은 특히 더 힘든데, 이걸 받아야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쳐다보다가 통화 버튼을 누른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여기서 또 두가지 케이스로 나뉜다. 받자마자 "다른게 아니라요~"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하는 거래처와 "쉬시는 날 죄송해요~" 와 같은 아름다운 말머리로 시작하는 직원.

어느 쪽 일을 내가 더 신경써서 처리해줬을지는 생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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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2. 화성에서 온 팀장 금성에서 온 사원

 

X와 Y,Z 사이의 대립이다.

현재 팀장급 위치에 계신 분들은 1960년 중후반부터 1970년 초반에 출생하셨다. 이분들을 일컬어 X세대라고 한다. 그리고 사원들의 출생년도는 1980년 후반에서 1990년 중반까지로 볼 수 있는데 얘네는 Y와 Z세대란다. 알파벳 순서로는 한 끗 차이지만 평균 15년의 터울은 당사자들에겐 화성과 금성 사이 거리인 1억 2천만 킬로미터로 느껴질 정도다. 그리하여 화성人 팀장과 금성人 사원이 친해지기란 가히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하루는 팀장님께서 팀 내 사원급들과의 회식중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팀장님이 아직도 불편하니?"

답했다.

"음.. 불편하다기보다 편하진 않죠?"

 

부모님들이 자식들과의 세대 차이를 느끼는 만큼 비슷한 연배이신 팀장님들도 역시 아들딸 뻘인 사원급과의 거리감을를 충분히 인지하고 계신다. 그리고 대다수의 팀장님들이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시는 점을 사원들도 알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불편한건 어쩔 수 없다.물론 절대 안하시는 으르신도 여럿 계신다.

 

사원과 팀장은 참 다른 입장에서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한쪽은 차곡차곡 오르다보면 장미빛 미래가 기다릴거란 근면성실함을 지향하는 세대고, 다른쪽은 미래는 알 수 없기에 한번 사는 지금을 즐겨야 한다며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부르짖는다. 전자는 조직을 위해 그리고 행복은 직장에서의 성과와 사내 평판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후자는 나를 위해서 또 지금 이순간에 행복이 달려있다고 믿는다.

 

팀장과 사원 사이, 각자의 입장 차이로 인해 갈등구조가 형성되기 딱인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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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3. 이건 내 일이고 저건 네 일이야!

 

"이건 담당자가 OO씨 아니에요?"

똑 부러지는 한 마디.

선배인지 후배인지 아니면 동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일과 네 일을 정확히 정의하는 목소리가 참으로 야무지다.

 

사실 굉장히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정으로 호소하는 시대는 진작에 지났다. 오늘 일을 처리할 시간이 없으면 어제 미리 했었어야 했고, 아니면 내일이라도 해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일터엔 그렇지 않은 분들이 꽤나 많은 것이 안비밀이다. 그 정도와 빈도의 심화도는 나이, 그리고 직급과 비례한다.

 

90년대 키즈들은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라는 어느 학습지 광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회사에 계신 우리 형님과 삼촌, 좀 더 가서 작은 아버지 뻘들도 그 학습지를 풀면서 자라셨다면 좋았을텐데.

"이것 좀 해주라. 부탁할게^^" 받고, "혼자 좀 해주라. 부탁할게^^" 드리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주어진 12가지의 과업을 혼자 힘으로 해냈단다. 21세기 세계시민이라면 픽션과 논픽션을 초월하여 본받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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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결혼식에서 들리는 '신랑 입장!' '신부 입장!' 까지 핏대 세우는 입장 겨루기로 들린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람(人)이 서긴 힘들다. 아름다운 관계는 주고 받고 얻고 양보하며 쌓여간다. 너의 입장과 나의 입장이 함께 입장할 때 비로소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 관계랄까?

 

입장과 입장 사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회사 안밖으로 비일비재하다.

그 사이를 이해하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그놈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게 문제다. 자존심이라든지 손해보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라든지 여러가지 이유로.

 

그래서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의외로 참 재미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