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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김사자 』

[신입사원김사자] Ep.54 지방근무여 안녕!

후배들과의 저녁 회동을 끝으로 회사일정을 마무리했다.

2년 6개월 지방근무가 종료된 날이다.

 

본부를 옮기게 되어 더는 후배들과 한팀이 아니니 말도 편하게 하기로 했다. 

회사에 들어와 처음 맞은 후배였다. 아들과 딸 하나씩 있었음 좋겠다는 아빠들 마냥 남녀 후배 각 한명씩 있었으니 나는 제법 행복한 선배였지 싶다. 만남의 끝에선 꼭 첫만남을 이야기하게 된다. 마지막이란건 아쉬움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가져오나보다.

이 블로그의 정체도 알게 되었으니, 최소 두명분의 댓글과 조회수는 늘어날 것으로 사료된다. 그치 얘들아?^^

 

군대를 전역하고 군인물이 다빠지고도 남았을 시간에 육박한 지방생활 중 저장된 거래처 연락처는 60개 남짓이다. 팀장님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는 것이 인연이랬지만 나는 본부를 옮기는 케이스니 적어도 일적으로는 볼 일 없는 사람들일거다. 되돌아봐도 참 힘든 만남이었다. 연락처라도 깔끔하게 털어버리고 떠나는게 맞다 싶다. 바로 다 지우면 정없으니 조금씩 지워나가야지.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비로소 아름다우니 이들의 이름과 연락처도 기억의 일부로만 남기는 편이 좋을거다. 손가락 몇번 움직이다보니 벌써 반 이상이 사라진 듯한건 기분탓이려나? 아무튼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라는 옛 격언이 있듯 부디 나를 잊고 잘들 사시오.

 

 

마지막 출근일 오후엔 책상정리를 마무리했다.

한꺼번에 다빼면 왠지모를 서글픔이 밀려올 것만 같아 전날부터 조금씩 짐을 차에 옮겨다 싣었는데 이동한다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기만 했다. 책상이 텅 빌때까지 별 느낌이 오지 않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울컥하곤 하던데 내 현실은 기쁜 감정이 그냥 다했다. 그래도 감정을 잡고 책상에 팔을 괴고 추억팔이를 시도했다. 그래.. 힘든 것도 있었고 재밌던 일도 있었던 것 같다. 옆자리 과장님의 힐끔대는 시선을 느껴질 때쯤 홍차나 태우러 탕비실로 향했다. 맞아, 이 자리에서 차도 여러잔 마셨지. 업무 중에 먹는 간식은 정말 맛있었다.

 

일도 딱히 없어 시간도 많아 물티슈를 세장이나 빼내서 책상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다. 서랍과 의자까지 새것으로 만들어놨다. 오늘까지 내 자리였던 곳이 내일이면 남의 자리가 될거다.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인생의 무상(無常)함.. 참 쓸데없다^^ 아무튼 이곳에 앉게될 다음 누군가도 기분좋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새하얗게 반짝반짝해진 책상을 보니 앞으로의 내 미래도 빛나겠지? 정리하는 새 마음은 이미 거의 대전쯤 가있었다.

 

아무튼 지방근무가 끝났다.

 

 

 

 

팀에서 감사하게도 송별회를 마련해주셨다.

자그마치 6개월만의 회식이다. 초반부터 팀실적이 좋지 않더니 분위기는 하반기로 갈수록 악화됐다. 팀회식은 사라졌고 팀원들과 팀장님 사이에는 벽이 담쟁이 덩쿨처럼 돋아갔다. 회식이 줄어든건 좋았지만 팀내 기류가 침체되는걸 보며 차라리 회식으로 굿판 한번 신나게 벌이는 편이 나을까 싶더라. 막상 했으면 또 숙취로 괴로워했을거다. 그래서 회사생활내 계륵 요소로 회식을 손꼽나보다.

 

떠날때가 다되어서 가진 몇 달만의 팀회식이었다. 회식자리에선 소맥은 내가 말곤 했는데 간만에 그것도 했다. 마지막이니만큼 특별히 혼을 담아 탔다. 회식을 위해 남겨둔 팀 운영비와 하반기 인센티브를 받은 과장님의 비용 일부 찬조로 소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지난 회식, 그러니까 6개월전 그때도 상반기를 마무리한 시점이었는데 당시엔 차장님이 인센티브를 받아 그날 회식비의 절반을 내셨었다. 하반기때는 내가 인센티브 수혜자가 되어 한턱 내라고 하셨었는데..^^ 인센의 길은 멀고도 험했네요.

 

실적도 별로였고 업무 자체도 마음이 덜갔다만 팀원들과는 소소한 재미가 공유할 수 있었다. 모두 힘든 와중에 많이 웃고 떠들고 부대꼈던 것 같다. 물론 예외셨던 분도 계셨지만.. 작년부터 2년을 한팀에 있었던 과장님과는 마지막까지도 어색했다. 비록 잘 맞진 않았지만 그래도 배웠고 또 경험했으니 고마운 심경이다.

 

나고 자라난 도시인 대구. 사춘기때 떠나 이곳저곳 나다니다 청년이 되어 다시 살게된 여기서 처음엔 반절은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몸과 마음 모두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보니 친구들도 한둘뿐이었고. 정작 대구내에선 잘 다니지 않았기에 지리에 있어서도 까막눈 수준이었으니 고향이라지만 고향같진 않은 곳이었다. 정작 지방근무중에 업무차 구석구석을 방문하면서 비로소 '나 대구사람이요~' 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면, 우스운걸까?^^ 약 3년간의 지방근무 생활을 통해 이제는 내 고향과 좀 더 가까워진듯하다.

 

대구에서 근무를 하면서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이제는 우리집보다 부모님댁이라고 하는 편이 익숙한데 정확한 건지 아님 정없는 건지. 다시 들어간 본가에서 한동안은 짐정리를 하지 않고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유난떠는 것 같지만 몇년간 떨어져있으며너 명절에나 며칠 집에 오는게 습관이 되다보니 내려와서도 왠지모르게 다시 올라가야만 할 것같아 꼬박 일주일은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세탁한 옷도 다시 캐리어에 집어넣고. 어느날 퇴근 후에 자켓을 벗어 옷장에 넣으면서 여행객 생활은 끝이 났다. 집에 왔다.

 

'우리집'에서 출퇴근하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소소(小小)하나 대대(大大)한 행복이다.

2016년 9월이었나? 지방근무 발령을 받던 날 누군가가 이런 소리를 했었다.

"이야~ 너는 집에가서 어머니 밥 먹고 다닐 수 있어서 좋겠다~~!"

미친놈인지 알았다. 안그래도 지방근무 하기 싫어 속에 천불난 판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돌이켜보면 집에서 회사를 다니는동안 큰 별탈없이 잘 지냈던 것 같다. 아마도 부모님께서 계신 집에서 집밥을 먹으며 지내면서 나도 모르는새 심적으로 안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덕에 취미활동이나 기타 삶의 부수적인 요소들까지 챙길수 있었을거다. 감사할 따름이다.

 

 

대기업 근무시 감당해야하는 리스크 중 하나가 바로 지방근무다. 회사의 규모가 크고 혹은 제조업이거나 또 전문기술이 부재한 문과출신일 경우 높은 확률로 지방근무에 당첨된다. 요즘은 아에 신입사원들을 싸그리 지방근무부터 보내버리는 회사도 많다. 지방근무에 대한 주변의견을 모아보면 단연 호(好)보단 불호(不好)가 많다.

지방. 땅(地)자에 방향(方)이 더해져 생성된 글자. '어느 방면의 땅' 이라는 그 뜻답게 지방근무를 명받은 이는 동서남북 어디론가 가서 근무해야 한다. 싫으면 집에 가면 된단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주섬주섬 짐을 싸들고 배치받은 어떤 곳에서 구한 집으로 들어간다. 강압은 아니나 압박은 있는 지방근무는 직장인들에게 말 못 할 스트레스를 선사한다.

나 역시 2년 반 전에도 싫었고 지금도 여전히 싫긴 하다^^ 그래도 서울이 아닌 타지역 출신이라면 또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적다면, 고향에서 하는 지방근무 생활도 마냥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자리 정리를 마치고 사무실을 한바퀴 돌았다. 애증의 공간 회의실에서 우린 참 많은 열을 올렸었지. 때로는 답이 없는 문제를 싸매고 고민했고 일을 위한 일도 했으며 사이사이 농도 주고 받으며 키득댔었다. DMZ마냥 다가가기 힘들었던 팀장님 자리도 이젠 올 수 없다. 언젠가 내가 크게 혼났던 자리에 다시 서보니 웃음도 나온다.

텅 빈 책상과 서랍을 보며 느껴지는 회사원의 숙명. 우리는 '이동하는 자'들이다.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그 후에도 계속 옮겨다니겠지. 지금은 좋다만 그때는 또 어떻게 다가오려나?

 

2년 6개월간의 지방근무를 마무리하고 내일이면 서울로 다시 출근한다. 아득히 멀어보여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정말 다가와버리니 기분이 오묘하다. 안녕으로 시작한 지방근무에게 다시금 안녕을 고해야하는 순간.

오랜만에 품어준 우리 동네야 안녕!

매일 출근길과 외근길에서 달리던 달구벌대로야 안녕!

귀찮게만 느껴지던 거래처 연락도 안녕!

인사이동전 연차를 몰아써야해서 출근을 안한댔더니 "I'm fuckin' jealous of you!" 포효하던 헬스장 트레이너도 이젠 안녕!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오늘 이후엔 새로운 만남과 인사해야할 내일이 올거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지방근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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