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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42 관계학 개론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아들러 심리학의 대가인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 속 대목.

 

가족의 품 속에서 마냥 사랑받기만 하다 어린이집이라는 어색한 사회로 발을 딛게 되는 네 다섯 살 때부터 우리는 어렴풋이 저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니 사파리반 박원숭이랑 김여우는 매일 나를 찾던데, 정글반 이하마는 자기 장난감을 절대 못 만지게 했다.

유치원을 넘어 초, 중,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욱 또렷해진다. 반에서 적어도 한 두 놈, 아니 세 명까지는 나랑 사이가 별로라는 것을. 늘 허허 대며 주변에 사람 많기로 유명한 친구에게도 어느정도 껄끄러운 관계의 급우가 있다는 말은 조금 놀라웠으나 이듬해, 또 그 다음 해에도 그 비슷한 친구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이때부터 직장을 구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입문하게 된다. 여기서도 비슷하게 흘러가나 싶던 관계 형성 및 유지 과정은 가끔씩 눈썹이 흠칫 치켜설 정도로 험난할 때가 많다. 학교에선 스타일이 맞고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만 신경 쓰면 되는데 직장에 들어온 이상 너무 치우치는 것도 위험할 것 같다. 챙기긴 버겁고 안 챙기기긴 불편하니 이게 뭔가 싶다.

 

 

옆자리 선배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따금씩 나를 보는 눈과 입은 환하게 웃고 있는 뭔가 꺼림칙하다.

매서운 눈초리의 과장님 앞에선 긴장된다. 그다지 같이 있고 싶진 않은데 그 쪽에선 되려 나를 찾곤 한다.

어떤 분은 그냥 좋다. 나한테 잘해주신다. 함께 있자면 즐겁다. 근데 이게 좋은 현상인가?

다른 한 분은 그냥 그렇다. 딱히 좋지도, 또 싫지도 않다. 내게 별 관심이 없으신 것 같다.

 

포커 게임을 할 땐 주위를 반복해서 힐끗거리게 된다. 바로 앞과 옆자리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해 그들의 패를 짐작하는데, 큰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은 상대하기 어렵다. 이름하야 '포커 페이스'. 시소가 흔들리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유지되는 상태가 지속되다 어느 한 쪽이 감정을 드러내게 되면 상대가 빈 틈을 단숨에 파고든다. 마찬가지로 직장생활 중에는 포커 페이스가 참 중요하다는데, 그게 참 쉽지 않더라.

 

모두가 포커 페이스의 달인이라면 누가 누구를 좋아하느니 싫어하느니 하는 말도 덜 돌겠지. 그리고 우리도 상처를 덜 주고 받겠지만 로봇으로 가득한 사회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없다. 나를 좋아하는 티를 풍기는 저 부장님 앞에서도, 나를 싫어하는 아우라를 내뿜는 대리님 앞에서도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불편해도 한 자리에서 밥을 먹고 그네들의 타자소리를 듣고 앉아 있어야 한다. 설령 얼굴에선 어떤 감정이 비치더라도 아닌 척 재포장하며 연기하는 직장인들.

 

참 어려운 것이 '관계 맺기', 그보다 더 힘든 것이 관계를 '유지하기' 혹은 '발전시키기' 인 것 같다. 이야기에 앞서 사랑받고 싶어하는 모두가 은연 중에 알고 있을 점 하나만 상기하고 들어가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개새끼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다. 잘생긴 하얀색 말티즈로 이름은 '봄'이었는데 꽤나 눈치도 빠르고 샘까지 많은 녀석이었다. 다른 강아지가 내 근처에만 와도 왕왕 짖으면서 남의 주인 무릎 위엔 먼저 냉큼 올라가 자리를 잡고 으르렁댄다. 봄이 오면 추위가 물러나듯 기가 약한 아이들은 자기네 자리를 내어주든 일이 허다했다. 강아지들조차 본능적으로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큰데 사람은 오죽하랴.

 

누군들 사랑 받고 싶지 않고 존중받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모두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건 욕심이요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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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김사자의 관계학 개론>

 

1장. 개XX, 너와 나의 연결고리

(난 네가 맘에 안들었던만큼 걘 나를 불편해했기에)

 

"그 새끼 그거 진짜 완전 개새끼여!"

"야 이 개새야! 넌 정말 개 같은 놈이야!"

얼굴만 봐도 쏘아붙여 주고픈 사람들이 하나 둘은 있을거다. 직장에서 찾자면 별 고민없이 생각날텐데, 예전 팀장이라던지, 선배라던지. 성인들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시고 나를 위해 용서하라시지만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참다가 더 홧병난다. 싫은 놈 그냥 싫어하고, 미운 놈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시원하게 욕들 해도 괜찮다.

 

깔끔하게 싫어했으면 이젠 적어도 욕심은 부리지 않아야 하겠다. 나는 B를 싫어하면서 C가 나를 싫어하는 것에 마음 졸이고 상심하지 말아야 겠다. 어떡하냐? 이미 나를 싫어한다는데. 인연이라면 어떤 계기가 생겨 관계가 좋아질 것이고, 아니면 그냥 미움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괜히 밤잠 설치다가 내 건강만 나빠지고 관계 회복하려다가 걔를 더 자극할 수 있다. 그러니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자. 너나 나나 누군가의 개새끼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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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절친노트 찍을 필요 없는 절친들

(상을 보아하니 내 베프감이로구만!)

 

그랬다. 성깔 있는 내 옆에도 누군가 있어줬다. 친구라는, 동기라는, 선후배라는 이름의 '내 편'은 집단에서 내가 적응하고 또 생활하는데 큰 힘이 됐었다. 경쟁도 해야 하고 신경전에 눈치까지 살펴야하는 조직생활 속에서도 그네들 앞에선 긴장도 풀고 투정이며 즐거움이며 맘껏 드러낼 수 있었다. 가끔은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하게 행동해서 다투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를 옹호하고 지원해 줄 내 사람들이 늘 든든하다.

 

팀장님이나 부장님, 하다못해 내 바로 윗 선배 앞에서는 잘만 터져나오던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인위적인 인사치레가 희한하게도 내 사람들 앞에선 잘 나오지 않는다. 가까울수록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늘상 하지만 괜히 쑥쓰럽기도 해서 특별히 살갑게 대하기가 쉽진 않다. 고마운 마음은 한 가득이니 진심 담은 내 얼굴을 보고 알아서 알아주길 바라고 있다.

아무리 절친이라도 표정만 보고는 그런 내 속내를 100% 알아줄 순 없으니 말을 하자. 진심 어린 얼굴에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씩 더 얹어진다면 우정도 곱절로 커져나가지 않을까.

척하면 착인 베프들이라지만, 절친의 상(相)을 보는 것만으론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없다.

 

**

 

3장. 무관심이 상관심

(투명인간 김사자)

 

어릴 적 초등학교 선생님은 "꾸짖음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그땐 혼내는 것을 그저 정당화하려나보다 싶었건만 이후로 누군가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을 땐 묘한 자유로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하곤 했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 받고 싶어한다고 했었다. 솔직히 못나보이는 것 보단 잘나보이고 싶다. 그래선지 마이웨이를 걷는다면서도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처음 간 거리를 홀로 걸을 때도, 카페에 나 홀로 앉아 있을 때도 종종 주변이 의식 된다. 그때마다 동생은 '너한테 아무도 관심 없어~' 라고 했었는데,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사원 시절, 열에 일곱은 내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뭘 해야 할 지 몰라 쭈뼛대고 있자면 직장인의 내공이 축적된 몇몇 대리, 과장님들은 빙긋 웃어주기도 했지만 많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 무관심이 익숙해졌고 나도 그들에게 관심이 줄어들었다. 딱히 심성이 고약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물론 누군가는 그렇긴 하지만) 그저 자기 일을 쳐나가기 바빠 본인 밖에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인지도,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크게 관심 없다. 흰 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의 사람들. 다만 함께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느냐 피해를 주느냐에 따라 점점 그 색이 변해간다.

 

가능하다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단 날 좋아해주는 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치만 바라다보면 그 또한 스트레스로 다가올테니 내려놓는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들은 저렇게 생각하려나?' 신경도 쓰지 말자.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스트레스 받을 바에 니 꼴리는 대로 해라. 내가 느꼈듯 주변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적다. 직장 동료, 아니면 옆 자리 청년 정도로 생각하려나? 그들의 무관심이 서운할 때도 있겠으나 그만큼 부담감도 줄어들었으니 손해만 보는 장사는 아니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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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적이고 사람 대함에 뛰어나 관계형성에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만, 나를 비롯해 여러 직딩들이 사내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서로 토로하곤 한다. 까라면 까시고 또 한다면 하셨던, 굳세디 굳센 부모님네 세대와 우리들은 회사생활에 있어 제법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미움 받을 용기> 의 베스트셀러화는 이런 청년층의 고민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지려면 미워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누구나 겉으로 비쳐지는 모습은 멋지고 관용적으로 보이길 바란다. 그래서 어떤 이를 별로 좋게 보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호의적인 척 포장할 때도 있다. 나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니깐. 나에 대한 주변의 평이 좋길 바라니깐.

비약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어차피 어느 누군가에게 나는 개새끼로 치부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나도 또다른 누군갈 싫어하고 있다는 걸 이젠 인정하자. 좋은 사람 코스프레는 멈추고, 미운 놈은 죽빵이나 하나 더 줄거라고 맘 편히 털어놓을 시간이 되었다.

 

관계 형성이란 게 말만 거창하니 별 것 없어보여도 나름 힘든 미션이다. 댕댕이 좋아하는 만큼 이 말이랑도 친해지면 덜 힘들거다. 꽤나 거창하게 지은듯한 이번 제목은 사실 그 자체가 핵심이었다. 관계학 '개'론.

개객끼.. 개객끼.. 처음엔 뭔 욕을 하나 싶었겠지만 이젠 아련하게 들리지 않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개새끼였으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