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째 용산역을 배회하다 가까스로 자리 있는 카페를 찾았다.
용산이 이렇게 붐비는 곳이었나? 500미터 반경에서 들어갔다 나온 스타벅스만 3개, 커피빈 2개, 투썸플레이스 1개, 기타 카페 예닐곱개. 회전목마 마냥 같은 곳을 빙빙 돌다 용산래미안 아파트 상가 내 스타벅스 빈자리에 겨우 안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과 이어지는 아이파크 몰로 올라와 본 용산은 많이도 변해있었다. 역 리모델링과 더불어 주변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같은 고층 아파트도 생겼다. 서울을 떠나갈 즈음 뚝딱대던 건물들이 어느새 완공되었나보다. 맞은 편에서 역시 분주히 공사하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지난번에 봤다.
2009년부터 강 건너편 상도동에서 5년을 살았다.
한강대교만 넘으면 금새 닿는 거리다보니 여길 지나친 횟수만 해도 수백 번은 될 거다. 2년 만에 밟은 용산의 곳곳이 궁금했기에 구경삼아 의도적으로 헤맸던 점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랄까? 501번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와 영화 보던 CGV를 지나쳤고, 한 달에 서너번은 들르던 아이파크 몰 식당들을 스쳐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 옆 가득하던 주황색 포차는 이제 없다. 외국도 아니건만 이 곳에 서 있자니 익숙함이 갈무리된 낯섬이 얽혀온다. 촌스러운듯 하면서도 새삼 반갑다.
카페에 들어와선 벤티 사이즈로 카페라떼를 시켰다. 늘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하곤 했는데 멈칫하다 샷을 되려 하나 빼달라고 주문했다. 맹맹하면서도 고소한, 옅은 베이지색 오늘의 커피는 어색하다.
회사 연차로 3년차, 실 근무론 2년차.
이젠 후배도 2명이나 생겨버린 나는 팀장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 기성사원이 되었다. 아침 7시에 눈을 떠지는 현상도, 오후 5시 30분만 되면 퇴근을 기다리는 점도, 월 말이 다가올수록 지쳐가는 생체리듬도 점점 더 자연스러워진다. 익숙해져 간다.
사무실엔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명패엔 김사자 사원이라는 직급과 사진이 함께 붙어있는 나의 자리. 맞선배가 앉아도 이상하고 대리님이 앉아도, 팀장님이 앉으셔도 불편해지는 그 곳은 '내 자리'다. 꽤 오랫동안 나만이 앉던 자리인만큼 편해지긴 했다만 가끔씩 위화감이 느껴져 괜히 엉덩이를 들썩인다.
서울에 위치한 본부 메인 빌딩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인사드리러 가는 차장님이 계시다. 나의 조언자이신 개코원숭이 선배님.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언 킹> 에 나오는 현명한 장로이자 예언자인 개코원숭이 라피키를 기억하시려나.)
우리의 첫 만남은 우연하게도 이뤄졌다. 서울 온 김에 기존에 안면 있던 다른 선배를 찾아뵈어 함께 커피나 한 잔하러 나갔다. 이 선배의 옆자리 분이 바로 이 개코원숭이 선배였는데, 마침 바쁘지 않으셨던지 함께 커피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척 보기에도 소신이 뚜렷해보이는 인상을 지녔다. 운동을 꾸준히 하셨는지 탄탄해보이는 몸매 위 여유있는 얼굴에선 특유의 자신감과 나름의 고집이 엿보였다.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아는 선배는 급한 업무가 생겨 먼저 들어갔고, 개코원숭이 선배와 나는 둘이 남았다. 두 시간. 소개팅도 아니고 처음 만난 남자와 단 둘이 집중하여 두 시간이나 보낸 건 처음이었다. 말하는 사람은 대개 나요, 선배는 들어주는 역할이었다. 보통은 회사 사람, 그것도 다른 팀 소속 선배에겐 개인적인 고민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는 그때 처음 만난 회삿분 앞에서 여태까지의 인생 스토리와 함께 묵은 고민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한 사이에서 특별한 사이로 거듭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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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이 어색해야 해."
최근 만남에서 들려주신 말이다.
"불편해야 해.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을 어색하게 느끼면서 지내야 해. 이 안에서의 방식과 생활이 익숙해지는 순간 더 힘들어지기 시작할거야."
연차가 낮을수록 언젠가 회사를 떠나 새로운 꿈을 좇게 될거란 생각을 할 때가 많을거다. 당장은 아니겠다만 차곡차곡 열심히 실력을 쌓고 달려나가기 위해 숨 고르기 중인 사람들이 많을거다. 하던 일과는 뜬금없이 다른 길을 개척해나가는 이들도 있다. 선배님은 얼마전 파일럿이 되기 위해 퇴사를 한 내 바로 윗 깃수들의 이야기를 함께 해주셨다.
곰곰히 되새김질 해가며 정리한 바는 이렇다.
회사 생활에서 배울 건 빠르게 습득하되, 꿈을 이루기 위해 따로 뭔가를 계속하여 시도하도록.
업무는 적응하되 회사 속 1인으로 산다는 건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도록.
내 자리가 낯설고 앉아있기 깔끄럽다는 느낌이 은연 중에 계속 들도록.
그리고 언제든지 마음을 먹었을 때 멋지게 떠날 수 있도록 지금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회사 생활 중 이따금씩 드는 생각은 '월급쟁이가 제일 쉬울 것 같다'는 것.
물론 차장님들은 '남의 돈 버는게 쉽지 않다'고 늘상 말하시곤 하지만. 그래도 알고 계실거다. 마누라 바가지에 회사 스트레스에 죽으니 마니 해도 그래도 가장 쉬운 건 회삿돈이나 따박따박 받아 먹으면서 사는 거란 걸. 쥐꼬리 같은 월급이라며 긁으시는 사모님들도 사실 기다리고 계실거다. 바깥 양반이 그 쥐꼬리를 달랑대며 돌아오는 날만을 한 달 내내- 오롯이 기다리고 계실거다.
업무 로드가 과하게 걸리거나 루틴한 일거리가 재미없어졌다면 퇴사 욕구가 화수분 마냥 샘솟는다. 그래도 이정도의 시간과 강도로 일하면서 이만큼의 사회 경제적 위치(사실 별 것 아니긴 하지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대기업이라는 그 거대한 기계 속 일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일개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청춘들이 밤낮 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미 톱니피플이 된 청춘들은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야.." 라는 드라마 <미생> 의 유명 대사가 또 하나의 쓸쓸한 진실이란 걸 시나브로 알아가고 있다.
짜증나던 업무 방식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지고 이해 안되던 조직 분위기가 이내 받아들여졌다면 어느덧 그에게도 적응의 시기가 도래한 걸거다.
이쯤 읽다 보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적응해서 남으라는 거야 불편해져서 나가라는 거야!' 싶을거다.
사실 어떠한 삶이 더 낫다는 건 없다. 그저 결정을 하고 결단을 내릴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색함 속으로 출근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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