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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22 동기가 결혼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단톡방이 시끌시끌했다.

 

그럴만두하지,

회사 동기의 결혼날이다.

 

34명의 동기 중 첫번째 결혼식인지라 모바일 청첩장을 공지했던 한 달 전부터 톡방은 난리법석이었다.

결혼식도 축하할 만한 일이다만 전국에 뿔뿔히 흩어져 있는 동기들이 공식적으로 모이는 자리기에 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오후 12시. 간만에 온 동대문역.

역 안에서 비슷하게 도착한 녀석을 만나고 축의금을 인출하러 함께 인근 은행으로 들어갔다.

지금이 몇 시지?

핸드폰을 꺼내드니 부재 중 전화가 6통이나 와있다.

1번부터 6번까지 싹 동기들.

식장에 도착은 했는지, 사람은 많니, 차가 막혀 짜증이 나니, 어쩌구 저쩌구.

경기도에서, 부산에서, 창원에서, 대전에서, 그리고 대구에서 그 먼거리를 그렇게 달려들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까운 사이들은 먼저 온 사람이 아직 안 온 쪽의 자리를 맡아준다고 코트를 벗어 옆 의자에 걸어두고 있다.

귀엽다.

초딩 때나 직딩 때나 우리들의 자리 맡기는 참 유치한 귀여움 한 가득이다.

 

 

총 34명의 동기들 중 20여 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딱 봐도 단체 하객 중에선 우리가 최다 인원이었다.

시작과 함께 강렬한 천장의 조명만큼 격한 축하를 보냈다.

과유불급이라지만 과한게 미덕일 때도 있다.

날이 날이니 만큼 모두들 평소보다도 더한 동기애를 발휘했다.

우리의 모습을 보신 동기형네 부모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똘망똘망한 청년들이 모여 누구보다 크게 박수치고 환호해주는 모습을 보곤 누구라도 빙그레 웃을 수 밖에 없었을거다.

만난지 겨우 1년 남짓하나 고된 회사 생활을 함께 버텨내는 동안 우정 또한 더욱 단단해졌으리라.

 

오늘의 신랑이 휘황찬란한 결혼식을 선보였던지라 "다음 결혼할 사람은 부담되서 어떡해~" 하며 웃음 한바탕 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진심 부담될 것 같다. 정말 다들 바로 다음으로 나서긴 꺼릴 것 같다.

 

2번 타자는 후달리겠으나 일단 오늘은 기쁜 날이다.

음식도 맛있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한껏 기분 업된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동기가 결혼했다.

 

 

 

 

옛 부터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중요히 여겨졌다.

 

인간의 4대 통과의례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가정행사 날엔 가까운 이들과 모여 함께 웃고 때론 울며 관계를 쌓아나간다.

가깝고도 먼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관혼상제는 우리 삶의 기반이 되어 주었고,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사회에서도 혼례와 상례는 되도록 챙기자는 인식이 퍼져있다.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형은 학교 선후배들을, 아버지는 고향 친구를 만나곤 하신다. 형의 결혼을 매개로 사자고등학교 2학년 3반이 10년만에 모이고,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 40년 전 참외 서리 함께 하던 아버지의 마을 친구분들이 하나 둘 씩 도착하니 어느새 곳곳이 추억들로 가득하다.

집안의 굵직한 경조사들이 만남의 장이 되어주는 격이다.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며 인사하고 담화도 나누자면 슬픔은 어느새 반이 되고 기쁨은 배가 된 것 처럼 느껴지자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연히도 결혼식장에서 아는 동생을 만났다.

회사 동기석에 앉아서 떠들고 있던 나를 누가 툭 치더라.

"사자 오빠?"

별 생각 없이 영화 <범죄도시> 의 장첸(윤계상)처럼 '너나 누군지 아니?' 뱉으려는 찰나,

"헐 너구나!"

한 3년은 됬을거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다.

각자 함께 온 이들이 있었기에 조금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자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기도 하고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동생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소원해졌던 친구였다. 아마 각자 살기 바빴기에 그랬겠지.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건만 못 본 기간이 늘어날수록 할 말도 적어지고 사뭇 어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자연스레 그 시절 우리와 함께 했던 또 다른 녀석들도 문득 생각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오랜만에 만난 추억.

결혼식 참석의 작은 묘미가 또 이런게 아닐까?

 

 

결혼식의 3대 필수 요소라면 신랑, 신부 마지막으로 결혼식장일 것이다.

삼국지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도원결의'. 복숭아 밭(桃園)에서 결의의 잔을 부딪치는 세 사람이 바로 연상된다.

복사꽃 흐드러진 풍경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충실한 배경 역할을 해주기에 유비, 관우, 장비의 의형제 맺음이 오래토록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유일거다.

그만큼 어떤 사건에서 장소는 큰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결혼식장은 그 날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다.

결혼식장을 통해 누군가의 결혼을 기억하는 사람도, 식장이 자기 마음에 쏙 들어 둘의 사랑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는 사람도 있더라.

 

오늘의 장소는 JW메리어트 호텔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호텔에서 진행하는 결혼식은 고급스러움의 상징이자 호불호가 거의 없을정도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반짝이는 샹들리에부터 맛있는 스테이크는 결혼하는 사람이나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이나 '대접받고 있다' 라는 느낌을 전해준다.

장소가 사람을 만든다고, 식장에 들어서기 전 옷 매무새나 다시금 가다듬게 되고 언행 또한 주의하게 된다.

차례로 나오는 맛있는 음식에 반하고 굳이 음식을 가지러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친절함에 또 한 번 반한다.

누구든 여기 앉아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거다.

'나도 이런 곳에서 결혼식 올려야지.'

 

호텔도 좋지만 결혼식 하면 생각나는 뷔페.

보통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들 한다. 그리고 뷔페 복불복이 준비되있다.

그다지 친한 사람이 아니면 식도 보지 않고 우선 선(先) 뷔페행, 후(後) 신랑신부 대면하는 아재들도 많이 봤다.

결혼식장 뷔페하면 특유의 살짝 얼어 아삭거리는 육회에 물렁함과 딱딱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탕수육이 떠오른다.

여러 음식이 모였다라지만 결국 한 두가지 음식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게 뷔페의 역설이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야 결혼식 뷔페가 폐급이 많았지, 요즘엔 음식이 맛이 없으면 클레임을 제법 강하게 걸다보니 점점 맛있고 먹을만한 뷔페도 늘어나고 있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뷔페가 앞으로도 더 발전해주길.

 

트렌디한 요즘 형누나들은 꽁냥꽁냥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곤 한다.

3개월 전 퇴사한 옆 팀 대리님은 경상북도 칠곡 어느 산장에서 결혼식을 치루었었다.

'야외 결혼식은 날씨가 다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날씨가 그 날 결혼식의 성패(成敗)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 의 명장면 중 단연 제일은 주인공 남녀의 결혼식 부분이 아닐까.

명랑 경쾌하게 야외 결혼식을 시작하려는 찰나 안타깝게도 비가 쏟아진다. 여우비도 가랑비도 아닌 폭우가.

캐노피와 천막이 강풍에 휘날려가고 억수같이 내리는 빗물을 첨벙거리면서도 신랑 신부, 모든 하객들이 그 상황 자체를 깔깔대며 즐긴다. 배경 음악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메 한 폭의 아기자기한 그림 같은 장면에 가슴이 떨렸더랬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현실에선 택도 없을 일이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야 할 결혼식을 위하여 사전에 정확한 날씨 예측은 필수다.

문제는 우리 옆엔 자기네 체육대회 날 일기예보도 틀리는 기상청이 있다는 점이고, 그로 인하여 결혼 전 날까지 잠 못이루는 밤이 이어진다.

날씨만 제대로 맞춰준다면 추억에 길이길이 남길 수 있는 나만의 야외 결혼식.

획일적이던 결혼 문화가 개인의 취향을 흠뻑 배며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혼식에 솔로들이 참석하게 되면 늘상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신부친구들 혹은 신랑친구들과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시작되는 썸. 사랑.

디즈니 영화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 라인이다.

결혼식 하객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이 아직까진 내 주위엔 없다.

이번 결혼식 때도 동기들 눈이 매직아이쇼 마냥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게 아닐까 싶다ㅎㅎ

 

어느덧 나도 스물 아홉을 앞두고 있다.

명절 마다 듣던 질문인 '대학은 어느 곳 가니', '취업은 어디로 했니' 따위를 이겨냈다 싶더니 이젠 결혼은 언제 하냔다. 

요즘은 서른은 넘어야 결혼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친구들과도 한 잔 하다보면 꼭 나오는 이 농담조의 말,

"야, 너 결혼은 언제 하냐?ㅋㅋ"

대충 어버버 웃으면서 넘기곤 하지만 내심 말 못할 고민들을 하더라. 

여자친구랑 4년을 사귀다가 성향이 맞지 않아 시간을 갖던 놈은 다시 재결합 후 1~2년 내 그녀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년이라도 당장 결혼할 것 같던 친구는 5년 안에는 결혼할 마음이 없어졌다며 미안한 마음에 엉엉 울었단다.

 

결혼은 신중에 신중에 또 신중을 요하는 정말 큰 일이다.

최근 돌싱이 증가하고 있는데 서로의 합의하에 충분히 이혼할 수도 있다곤 생각하지만 한 편으론 참 안타깝다.

에쉬튼 커쳐와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영화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What happens in Vegas)> 에서 둘은 만취 상태로 라스베가스에서 결혼하고 만다. 실제로 미국 라스베가스가 있는 네바다(Nevada) 주는 결혼 및 이혼 절차가 가장 간단하기로 유명한 장소다.

본인들이 이 영화의 배우들인양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결혼하고 다시 쉽게 헤어지는 그런 관계들이 종종 보이는데 개인의 결정은 존중하나 개인적으론 그리 아름다워 보이진 않는다.

 

결혼은 삶 속에서의 어떠한 문제보다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한다.

오늘 결혼한 신랑 신부가 서로를 배우자로 받아들이기까지 숱한 고민과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그가 그녀와 결혼하리라 다짐하는 과정은 인생 최대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와 함께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인생엔 생각지도 못한 많은 변화가 생길거다.

 

선배들이나 형누나들이 하나 둘 씩 결혼을 하고 있다.

모든 결정에 따른 결과는 긍정과 부정의 확률을 반씩 내포하고 있고 결혼도 예외가 될 순 없다.

내 주위엔 결혼 후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분들이 훨씬 많아보여 참 다행이고 또 멋지다.

그만큼 '이 사람이 내 짝' 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겠지.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감싸주기 때문이겠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사람과의 결혼을 결심할 수 있다는 건 더욱 행복한 일이다.

결혼을 축하하며 처음으로 동기형이 부러워졌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그 순간이 오겠지?

 

동기가 결혼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