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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입사원 김사자

[신입사원김사자] Ep.21 밥은 먹고 다니냐?

신입사원김사자 신입사원김사자 2017. 10. 31. 21:16

세계 어디든 인사할 땐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에서의 진짜 인사는 이 '안녕하세요' 가 아니다.

 

대한민국 남녀노소를 꿰뚫는 공통 인삿말,

"식사하셨어요?"

 

우리는 희한하게도 밥 때 맞춰서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한다.

끼워맞춰보자면, 오전동안은 업무를 보던 개인의 삶들을 살다가도 배고플 시간되면 뭐라도 먹으려고 밖으로 나오게 되니깐. 또 휴식도 좀 취해줘야 하니 비교적 긴장이 풀리는 식사시간에 맞추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식사하셨어요?' 란 말은 자주 보는 사이던, 오랜만에 만난 사이던, 아는 형님이던, 후배던 누구를 만나던 간에 친근미 넘치게 활용 가능한 이상하고 아름다운 인삿말이다.

 

"아이구~ 사장님 식사는 하셨어요?"

"어 그래 사자야 밥 먹었냐?"

"오랜만이네요!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심지어 다투거나 삐친 사이에서도  효과를 발휘하는데,

"에이~ 형니임~ 화 푸세요~ 식사는!? 맛난거 드셨어요? 안드셨음 제가 완전 맛있는 곳 아는데!!"

 

살살 웃으면서 아양 떨면 더 화내기도 그렇고 받아 줄 수 밖에 없다.

이 놈과는 상종도 안하겠다는 처음의 굳은 마음과는 달리 노여움도 누그러들고, 또 밥까지 같이 먹으면 언제 싸웠냐는 듯 하기까지 한다.

식사는 하셨냐니, 생각만해도 참 얄궂기 그지 없는 말이다ㅎㅎ

 

그만큼 밥이라는게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이리라.

 

 

 

한 나라의 인삿말이 식사했냐는 물음으로 일통(一統) 될 수 있단건, 그네들의 삶 속에서 '밥' 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단 것일거다.

밥을 못 먹으면 안녕하지 못하니깐 당연한건가?

 

역사적으로 유난히 이 '밥' 에 대한 관심이 큰 한민족.

신분 순서대로 차릴 수 있는 3첩 반상부터 5, 7, 9첩 반상, 나랏님만 드신다는 수랏상인 12첩 반상까지 정해져 있었단다.

에이~ 난 자취하는데도 밥 먹을 때 밥, 국, 김치, 김, 계란 이렇게 대 여섯개 먹는데, 왕이 되어서야 겨우 그릇 열 두개 올리고 먹나? 할 수도 있는데 이게 이름에 쓰인 숫자 그대로가 아니더라.

 

3첩 반상은 밥, 국, 김치, 장은 기본에 세가지 반찬이.

5첩은 밥, 국, 김치, 장, 찌개 + 다섯가지 추가 반찬.

7첩은 밥, 국, 김치, 찌개, 찜, 전골 + 알곱가지 반찬이 더해지고.

9첩은 밥, 국, 김치, 종지(간장, 초간장, 초고추장), 찌개, 찜 + 아홉가지 반찬.

마지막으로 임금님이 드시는 12첩 반상에는 기본 음식 빼고도 육-해-공 을 아우르는 총 38 여 개의 찬이 올라간다니.

정말 왕입니다요!! ^^7

 

상 차림에도 나름 규칙이 있었다는데, 재료나 조리법이 겹친 요리를 올릴 수 없었다니 그 시절 어머님들 참~ 힘드셨겠다. 

 

여러 정황상 한국 또한 유럽 여느 나라 못지 않게 음식을 사랑했고 식사하는 것에 관심이 높은 곳이라고 여겨진다. 

심지어 노비들도 반찬은 없을지언정 어지간하면 밥만이라도 고봉으로다가 먹여줬단다.

가끔 마님 기분을 좋게 해드려서 쌀밥이나 고기를 몰래 받아 먹은 돌쇠도 있었다는데, 그것도 능력이다.

 

이렇게 밥을 사랑하던 우리 민족도 한동안 식욕을 잃었었다.

시간이 흘러 IMF 외환 위기, 최근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까지 겪으며 당장의 생계유지에 위협을 느끼게 된 사람들에게 '식사' 라는 건 그저 한 끼 때우는 시간 정도로 전락(轉落)했다. 이때의 상황은 눈물 젖은 식은 밥이랄까?ㅠㅠ

 

그러다가 살림살이가 차츰 나아지게 된 근 몇 년부터 '먹는 행위' 에 슬금슬글 다시 관심을 가져간다.

드라마에선 유명 연기자들이 치킨을 바사삭 거리며 식샤를 하잔다. 또 맛있게 잘 먹는 녀석들이 온 나라 식당을 헤집고 다니고, 남의 집 냉장고를 부탁 받는 요리사들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심지어 옆집 초딩까지 자기 밥 먹는 걸로 방송을 한다.

TV 를 끄고 핸드폰을 켜보면 SNS에선 오늘 뭐 먹을지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고 샾이라고 읽고 싶은 해시태그는 외계어 같은 #맛스타그램, #먹스타그램, #존맛, #핵존맛, #먹방 으로 그득하다.

 

 

모두가 배불러 보이는 이 그림 속에서 우리 직장인들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구분되어 있고 우리는 하루 매끼 꼬박꼬박 건강한 식사를 한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하지만 못하고 있다.

아침/점심/저녁으로 구성된 3 라운드 경기에서 매번 K.O. 패를 당하고 있는 이 시대의 직딩들.

 

***

Round 1. 아침

아침부터 선택을 해야 한다.

30분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 밥 먹기 V.S 30분 더 자기

옛말에 선택은 신속하게 하랬다. 30분 더 잔다.

후다닥 씻고 옷 입고 지갑이니 핸드폰이니 챙기고 나면 밥 먹을 시간이 없다.

달걀이나 과일 사놓는 걸 깜박했다. 어젠 바나나라도 하나 들고 집을 나섰는데.. 없으니깐 그냥 우유나 한 잔 마시고 가야지.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그나마 어젯밤 닭발에 소주 파티 덕에 아직도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위안정도랄까?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아 책상에 충전기 두고 왔다.. 젠장.

 

Round 2. 점심

한 10시 언저리가 되니 급격한 배고픔이 밀려온다.

하. 배고파.

배도 고파서 힘든데 팀장은 또 뭐라고 하는거야..

커피도 식품이니까 믹스라도 2개 태워서 두 잔 같은 한 잔으로 배 채워야지.

오! 12시! 공식적인 밥 시간이다.

하루종일 칼로리가 소비될 테니 점심은 많이 먹어도 살 안쪄!!

밥도 두 공기 뚝딱에다가 반찬 더 달라고 이모를 몇 번이나 외친지 모르겠다.

밥도 먹었겠다 입가심으로 휘핑크림 하늘 끝까지 올린 커피도 한 잔.

 

Round 3. 저녁

오늘 하루도 하얗게 불태웠어..

고생한 나를 위해 건배!

중국발 미세먼지가 날로 심해지니 폐 건강을 위해 삼겹살을 먹어준다.

역시 삼겹살엔 소주다. 오메 맛난 것.

밤은 저물어 가고 입가엔 기름기와 더불어 미소가 맴돈다.

비록 온 몸엔 고기 냄새가 배고 있지만 이게 바로 회사 다니는 맛 아니겠어?

***

 

직딩의 하루다.

우리의 하루다.

뭔가 짠하면서도 안타깝지 않나?

물론 아침도 챙겨먹고 퇴근해서 운동도 해주는 날도 있다.

그치만 너와 나를 비롯한 넥타이 부대의 일상은 대개 저럴 것이다.

밥은 먹고 다니냔 물음은 잘 챙겨먹고 다니냔거고 우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바쁜 일상과 치열한 사회생활, 그리고 그로 인해 누적된 피로가 한몫씩 거들었을거다.

직딩들 사이에선 식사를 제때 챙길 수 없으니 비타민이며 오메가3며 영양제를 한아름씩 가지고 다니며 섭취하는 게 유행이다.

내가 바로 그 영양제로 도핑하는 1인인데 이게 참 희한한게 끼니를 걸러가며 영양제를 먹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여전히 피로하고 잔병치레가 잦다. 골골거리면서 약을 먹기 위해 식사를 매끼 챙기면서 비로소 회복한다.

한국인은 약발보단 밥심이 우선이라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우리의 인삿말이 왜 "식사하셨어요?" 인지 그제서야 깨닫는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1965년 연설 중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란 명언을 남겼다.

민족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역사라면 개인의 내일을 만드는 건 매 끼마다의 식사, 즉 밥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한 번 빗대어 본다.

밥을 잊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규칙적인 식사를 잊은 직딩에게 이성친구는 없을 수 있다.

건강한 식단을 잊은 직딩에게 승진은 없을 수 있다.

그리고 바람직한 식습관을 잊은 직딩에게 내년은 없을 수도 있다.

 

말도 몇 번 못 섞어본 옆팀 과장님도 밥은 먹고 다니냐며 관심 아닌 관심 섞인 인사를 던져준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가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 욕 잘 먹고 다니는지 신경도 안쓰고 있다.

그레이트 박 옹의 말마따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은거다.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빨리 스스로 한 번 챙겨봐봐.

 

나, 밥은 먹고 다니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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