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뒤면 휴가가 시작된다.
천국으로 가는 카운트 다운. 두구두구두구~♬
휴가가 시작된다.
가을도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지만 나의 여름휴가는 이제 시작이다.
작년 여름에도 휴가를 받긴했으나 그땐 휴가답지 않은 휴가를 보냈었다.
당시 그룹사에, 계열사에, 본부에 교육에 교육을 거듭하다 신입과정을 막 수료한 뉴비의 신분이었던지라 회사에서 휴가날을 정해줬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강제로 쉬다보니 어디 갈 계획도 못 짜고 대구집에 내려와서 푹 쉬기만 했었다.
그렇다 보니 올해의 휴가는 직딩으로서 나의 공식 첫 휴가다.
사실 이번 달이 아니라 지난 달 초에 이미 다녀왔어야 했던 나의 여름 휴가.
지난 9월에 홍콩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 휴가를 냈었다.
비행기도 예매하고 숙소도 예매하며 콧노래도 룰루랄라. 기쁨, 그 자체였다.
회사 생활도 너무 지치고 업무도 노잼에다가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즈음, 휴가나 다녀오면서 머리를 식히고자 했었다.
근데 이게 왠일?
우리팀 과장님이랑 휴가 날짜가 겹쳐버렸다.
우리 둘이 동시에 휴가를 가게 되면 팀에 업무 공백이 꽤 크게 발생하기에 누군가는 휴가를 포기해야 했다.
과장님은 다른 분들과 함께 가기로 한 일정이라 부득이하게 내가 휴가 계획을 취소 할 수 밖에 없었다.
위약금은 위약금대로 물고 기분은 너무 처져서 빡침이 지각을 뚫고 지구 내핵까지 다다를 지경이었다.
당시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있었고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멘탈도 흔들리고 있었기에 오로지 다가올 휴가기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를 가지 못한다는 소리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시간이 흘러 10월 황금 추석연휴에 세부 여행을 다녀왔다.
말 그대로 정말 살 것 같았다.
학생 시절 여행을 즐기지 않았기에 남들 다 간다는 그 흔한 배낭여행도 다녀온적 없었는데, 직장인이 되자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팍팍한 삶 속에서 여행이란 건 생명수였다.
한 숨 돌릴 수 있는 쉬는 시간이었다.
다시금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주변을 보면 다들 너무나 지쳐있다.
힘에 겨워 마우스 클릭도 겨우 하다가 발 걸음이 멈추는 곳은 동네 소주집.
핸드폰을 위해선 언제 어디서든 콘센트를 찾는 사람들이 자기네 삶을 충전하기 위한 콘센트는 잘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휴가 시작 세 시간 전이다.
남자들은 휴가의 소중함을 비교적 일찍 깨닫곤 한다.
대한건아라면 한번씩은 다녀오는 군대에서 말이다.
신병위로휴가의 그 간절한 달콤함부터 제대 전 말년휴가까지, 휴가라는 건 나이가 어리던 많던, 잘 생겼건 개성있게 생겼건, 집안이 유복하던 어쨌던간에 똑같이 기다려지는 기쁨의 순간이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휴가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다림의 대상이다.
사실 아무리 힘들어도 군인 시절 느끼던 정도의 감격은 느끼진 못할 건 맞다.
그치만 회사에서의 휴가는 보다 현실적인 수준의 설렘을 우리에게 준다.
공식적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날 필요가 1도 없다.
보기 싫은 얼굴보며 억지 웃음 짓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다.
이미 퇴근한 상태니 퇴근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여름이 다가오면 서로 묻곤 하는 이 한마디.
"야 이번 휴가 때 뭐 할거냐?"
유럽 여행을 갈거야, 휴양도시에 가서 여유로움을 즐길거다, 집에서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할거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다들 군침만 잔뜩 흘리고 있다 ㅎㅎ
주말이 다가와도 힘이 나는데 휴가가 다가오매 괜시리 웃음이 나곤 한다. 평소에 그렇게 짜증나던 팀장님 잔소리도, 스트레스 받던 호통소리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1주일 뒤면 휴가이니깐, 며칠 뒤면 떠나니깐^^
'휴가를 언제 갈까' 보다 중요한 건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휴가를 통해 뭘 얻을 것인가' 이다.
휴가까지 굳이 전략적으로 보내야 하나 싶긴 하지만, 짧은 휴가기에 더 현명하게 써야 한다. 여름 휴가는 보통 5일이다. 주말을 양 쪽에 쏙쏙 끼워봐도 겨우 9일 남짓하다.
내 맞선배는 첫 여름휴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안에 누워 있었단다. 득달같이 연락오던 거래처 사람들의 연락을 합의 하에 무시해도 되니까 어디든 들고 다니던 핸드폰도 OFF. 옆구리에 끼고 살던 업무 수첩도 방 구석으로, 늘 아이컨택하던 노트북도 저 멀리 치워버렸을거다. 한껏 늦잠 자고 일어나서 맛난 어머니 밥으로 배를 두둑히 채우고 TV나 보며 뒹굴거리다 저녁엔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러 다녀왔댄다. 선배에겐 이게 잘 보낸 휴가고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아마 그에겐 격렬한 쉼이 필요했을거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일과 일상에 지쳐있었단 거겠지. 그걸 해소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선배에겐 최우선 순위였던 거지.
나는 새로움에 목말라 있던 상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적응해버린 순간 식상함과 지루함이 함께 온다.
회사 일은 특히 더 그렇다.
보고에 보고에 보고를 거듭하고 매 달 처리하는 루틴한 업무. 새로운 건 잘 찾아보기 힘들다.
영감을 얻을만한 건덕지가 정말 부족하다.
'재미없다'
최근의 내가 늘 느끼던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있지 않아?
나는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한다고.
올해 나의 휴가지는 영국이다.
누군가에겐 축구의 나라요 영어의 나라겠지만 내겐 해리포터의 나라.
해리와 론이 달려가곤 하던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서 급행열차를 기다려보고,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대신 그 모델이 된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그 곳의 정취를 물씬 느끼고자 한다.
스코틀랜드로 넘어가선 J.K 롤링 작가가 해리포터의 서막을 열었던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에 앉아 가슴 가득 영감을 채우고 올거다.
영화 <노팅힐(Notting Hill)> 의 OST 'She' 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노팅힐을 거닐테다.
귀를 간지럽히는 멜로디에 반해 차에서 수십번은 반복해서 들었던 곡인데 노래의 고향에서 다시 마주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은근 기대가 된다.
새로운 것들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느낌들을 한껏 즐기다 오련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참 고된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현명하게 재충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매일 전쟁터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겐 휴가기간이야말로 그것을 깊이 고민하고 시행해보는 시간일거다.
설렘으로 준비운동 후에 평소 느끼곤 하던 결핍의 구멍들을 만족으로 꽉꽉 눌러 채우고 돌아오자.
핸드폰 배터리만 완충시키지 말고 너와 내가 완충되어 돌아오자.
휴가기간만 행복하기보다는 휴가 이후에 더 행복해진 우리 모습이 기다려진다.
어느새 휴가날이다.
똘끼와 발랄함 재충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
첫 휴가 네 시간 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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