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로 나는 스물여덟살이다. 문득 드는 생각,
‘나는 지금 나잇값을 하고 있을까?’
스물 여덟. 보편적으로 남자들은 사회초년생 1~2년차, 여자는 3~4년차 정도일거다. 주변에선 이제 충분히 어른이 된 나이니 그답게 ‘어른스러워’지라고 말한다. 옛날같았으면 벌써 결혼해서 애도 낳고 살 때라신다. 들을수록 거북이처럼 움츠려지는 자세가 취해지는 말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할거다. 그리고 고민한다. 나는 나잇값을 하고 있냐고.
아마도 생각보다 잘 못하고 있을거다. 소수의 애어른들을 제외하곤 우린 모두 제 나잇값을 못하고 지낸다.
별문제 아니니 그래도 괜찮다. 보통 '~을 못한다' 라고 하면 뭐든지 그다지 좋진 않은 의미인데, 나잇값은 못해도 충분히 괜찮다.
20대 후반엔 삶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밀려오곤 한다. 애 티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벗고 어른이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의 그 심리적 압박감, 또 막연한 두려움.
‘잘해나갈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사회초년생의 떨림은 설레면서 동시에 섬뜻하다. 대학생활보다 늘어난 자율성, 넓혀야 하는 시야와 행동반경, 그만큼 더 커진 위험성.
잘한건 그만큼 돌아오고 못한건 배로 되돌아오는, 비합리적이지만 동시에 합리적인 직장생활.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얕은 사회초년생들에겐 꽤나 가혹하다. 그러니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 또 고민을 거듭하는 이런 고뇌인이 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오고 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리고 올해로 나는 스물하고도 여덟이다.
28
어리다면 어리고 많다면 많은 나이 스물여덟. 여러모로 불리함이 많은 나이다. "제가 어려서 잘몰랐어요ㅜ" 안통한다. 그냥 못난놈 되는거다. "나이도 어린놈이~"에 "먹을만큼 먹었는데 왜요!"라고 받아치기에도 아직은 어린 것 같아 괜히 겸연쩍다. 여러모로 애매한 구석도 많은 나이. 이와중에 빠른 년생들은 유리할 땐 형이 됬다가 불리할 땐 친구가 됬다가, 또 동생이 됬다가 친구가 되는 태세전환을 보여주는데 얄밉지만 사실 부럽다.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다니엘 래드클리프도 올해 스물여덟이다. 해리가 호그와트 망토를 걸칠 때 나도 교복을 입었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윙~가디움 레비오~사!' 주문 외칠때 나도 샤프를 들고 '근의 공식'을 부르짖었으리라. 이젠 우리 둘 다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 스물여덟이란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시기다. 그렇기에 조바심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레임이 가득한 나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하던 시인 윤동주는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타계했지만 그 시는 우리 곁에 남아있다. 처음 읽을 때도 좋았지만 20대 후반에 읽으면 더 좋은 시. <서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序詩), 윤동주 **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 시다. 처음 읽을 땐 시인 동주에 대한 숙연함으로, 다시 읽을 땐 문학적 표현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이 흘러 마주했을 땐 나를 돌아보는 거울로. 주어진 길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의 밤에 별이 바람에 스치웠듯이 내게도 뭔가 스쳐오게 되면, 그땐 알 수 있으려나? 개인적으로 올해는 참 빠르고 동시에 천천히 지나간 해다.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심각하지만 귀여운 고민을 한 시기이기도 하다. 답은 Nope! 아직 구두보단 운동화가 편하다. 셔츠보단 티셔츠가 편하고 정장보단 맨투맨이 편하다.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른인척하기는 부담스럽다. 어른이기를 애써 거부하는 마음도 한켠에 자리하는 듯하다. 어른스럽지 않아도 괜찮아. 삶에 있어 심각해지지 않아도 문제없어. 넥타이를 매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목을 죄는 그것에 캑캑되지 말자.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싫어도 웃는 낯으로 맘에도 없는 행동을 하곤 귀가길에 한숨 폭 쉬진 말자. ‘어른의 삶’은 역시 힘든거라며 술잔 쏟지 말고 담배나 물지 말자. 굳이 어른이 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는 듯해. 스물여덟. 아직 간직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충분히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파릇파릇한 생동감으로 주변까지 화사하게 만드는 '어린놈'들의 싱그러움이기에! 고민하고 또 고뇌하자. 실수하고 실패도 하자. 그리하여 좀 더 단단해진 어느날, 비로소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거야. 스물여덟살. 구두도 좋지만 아직은 운동화가 익숙한 나이. 정장도 잘 어울리지만 캐주얼이 더 이쁜 나이. 성인이란 부담감을 덜 가져도 괜찬아. 좀 더 어리광 부려도 괜찮아. 내년이면 아홉수지만 그래도 괜찮아. 스물여덟. 아직 우린 졸라 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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