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시절 엠티의 지배자는 술게임이었다.
'아 공동묘지에~ 아 올라갔더니~ 아 시체가 벌떡! 시체가 벌떡! 벌떡! 벌떡! 벌떡! 벌떡! 벌떡!!!!!'
'베스킨~라빈스~써리원! 귀엽고 깜찍하게 써리~원!!'
'팅! 팅팅팅! 탱! 탱탱탱! 팅팅탱탱 후라이팬 놀이!!!'
도입부분만 읽어도 술 취한 것 같고 흥 돋고 그렇지 않나 ㅎㅎ 저 4가지가 경쾌한 도입부와 함께 시작되는 대표적인 게임들이었다.
이외에 유명한건 "야 임마 너, 야 임마 너, 야! 임마! 너!" 로 시작되는 <야 임마 너>. 이름 그대로 상대를 손으로 지목하면서 야! 임마! 너! 를 외치는 게임인데, 술도 들어갔겠다 흥도 올랐겠다 엄청 크게들 외치곤 한다.
"야!!!!!!!!!"
"임마!!!!!!!!!"
"너!!!!!!!!!!!!!!"
더이상 엠티에 참석하진 않게 되며 게임에서조차 듣지 못하던 저 괴성을 요즘의 나는 매일 듣고 있다.
#그것이_바로_직딩의_길
신입사원이 팀 배치를 받으면 며칠 뒤엔 이런 말을 의례 듣곤 한다.
"말 편하게 해도 되죠? 내가 나이도 더 많고 그러니까.."
누가 나한테 반말을 한다는 것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사람이, 그것도 신입이, 앞으로 매일 볼 선배가 저 말 하는데 "아뇨, 반말은 좀 그런데요." 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 반말이라는게 지속 사용되면서, 자기가 윗 사람이라는 인식을 공고히 확립하고 내 앞에서 말과 행동을 심하게 편하게 한다는 거다. 우린 회사 동료지 친구가 아닌데 말야.
야, 임마, 너. 그렇게 심한 말은 아니다. 욕이라기 보단 반말 정도로 생각하면 되려나?
반말의 사전적 의미는 '친근한 관계나 동료간에 편하게 하는 말투 또는 아랫사람에게 낮추어 하는 말투'. 그나마 친밀함과 유대감의 표시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덜 기분 나쁘다.
근데, 누구 맘대로 나한테 반말하래?
안타깝지만 아마 회사에선 반말의 두번째 의미인, 낮추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클거다.
수평적인 관계는 호칭을 포함하여 주고받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마치 예전 2002년 월드컵 시절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허물키 위해 반말 사용을 지시한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되려나?
반말도 단어 선택에 유의하고 뉘앙스를 조절하면 충분히 예의있게 사용할 수 있다. 존댓말이 형식상 예의를 더 잘 담아 전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인위적인 구조라 딱딱하기도 하고 거리감을 조성할 수 있어 별로다. 존댓말을 사용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비꼼의 형태로 비방이 가능하다. 즉, 반말이나 존댓말 그 자체로는 예의가 있고 없고를 따질 수가 없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같이 달라질뿐이지.
이론적으로는 회사에서 반말을 사용하면 수평적 조직문화 형성에 도움이 될 거다. 지금 회사에서 선후배라는 명목하에 오가는 반말과 존댓말은 꼰대들이 일군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니까.
그.러.나. 그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때의 이야기이고, 적어도 현재는 특히 대기업에서는 직급을 무시하고 서로 반말을 한다는 건 헛웃음 나는 이야기일거다.
대한민국에서 존댓말은 집단 내 나의 생존이나 안위에 직결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 예로 우리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한 학년 위 선배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형누나의 눈치를 봐야 하고, 집에서도 안하는 존대를 한다.
얼마전 만난 친구의 어린시절 헤프닝이 기억난다. 중학교에 입학한지 몇 일 뒤 매점에서 빵을 사서 전자렌지에 데워 먹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댔다. 렌지에 음식을 막 넣고 있는 동년배 학생을 발견하자 친구는 소리쳤다.
"야! 내꺼도 좀 같이 넣고 돌리자!"
순간 그 학생들이 친구를 에워싸고 도끼눈을 떴단다. 그때 친구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새 "선배님 죄송합니다.." 란 말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게 중학교라는 집단에서 '선배'란 사회계층적 우위에 있는 자에 대한 첫 존댓말이었던 셈.
14살 학생들도 상하관계를 형성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이미 고착화 될 정도로 고착화 된 이 수직적 관계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긴 참 쉽지가 않아보인다. "수평적 관계가 조직을 발전시키니 모두 반말을 씁시다!" 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건 핀잔과 잡소문, 그리고 비타민C와 D를 쳐다도 보기 싫어질 정도로 잔인한 인사고과다.
직급을 막론하고 서로 존대를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사실 직장동료들끼리의 존댓말 사용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선배고 팀장이고 우리는 다 같은 회사의 동료들이다. 먼저 들어왔다 차이뿐이지 누가 상하의 위치가 아니라고나 해야 할까?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모두 직장인이요,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 속 톱니 하나하나들이다. 같은 신세끼리 상하관계를 조성해봐야 부질없을텐데..
친구, 동네형, 선생님, 멘토님 등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에겐 반말을 들어도 되려 친근감이 느껴진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모여서 이루어진 회사라는 조직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관계로 발전할 사람들이 분명히 보일 거다. 그때까진 적어도 서로에게 존대를 하는 편이 그 다음 단계의 인간관계로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름다운 관계는 쌍방의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어느 한 쪽으로 힘이 쏠리는 건 불합리하다. 아니면 적어도 한 쪽이 흔쾌히 그걸 인정할 때 가능하다. 혼자 판단해서 반말하지 말고 합의하에 반말을 할 수 있도록 되야 할 텐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고 또 반말은 내가 듣는다.
조금씩 변화되길 바라지만 쉽진 않겠지? 아직은 그들에게 반말을 듣고 싶지가 않다.
서로 존대를 주고받고픈, 우린 아직 직장동료니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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