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돌아오지마. 우리 생각도 하지마.
돌아보지 말고, 편지도 쓰지 말고.
향수병 따윈 너한테 없는 거다."
- 영화 <시네마 천국> 中
주인공 토토가 청년이 되어 고향을 떠날 때, 어린시절부터 친구가 되어줬던 동네 영화관 영사기사 알프레도 아저씨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의 일부다.
마을을 떠나 로마로 간 토토는 성공한 영화감독이 됐고 정말 30년의 세월 동안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알프레도의 부음(訃音)을 듣고 나서야 고민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토토. 그 곳에서 옛 마을 사람들과 건물들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잊고자 했던 과거 기억과 마주한다. 그리고 알프레도의 마지막 선물로 남겨진 필름조각들을 이어붙인 영상을 보며 눈물 웃음을 짓는다.
입사 후 1년 2개월 남짓한, 400일이 조금 넘은 지금,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돌아보지 않는 태도의 필요성이란 미학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참이다. 27살,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지?'
'만약에 취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고작 얼마 전, 대학생 시절에 그리려던 그림이 시스티나성당의 천지창조였다면, 직장인이 된 내가 끼적이는건 크로키에 불과하달까.
프레젠테이션 동아리다, 마케팅 학회다, 전략기획 공모전이다, 혹은 스타트업이다, 다들 멋지게들 대학생 시절을 보내곤 했을 터. 모두가 선망하는 대한민국 몇 대 大기업 신입사원이란 훈장을 달았는데 알고보니 자기위안의 증표였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냐는 답 없는 고민이 틈만 나면 찾아오곤 한다.
참을 '忍' 을 수십번 그려도 결국 반복되고 있는 챗바퀴. 지난 달 초에 한 업무를 이번 달 첫주에도 똑같이 하고 있다. 월 말이 되면 마감에 허덕인다. 정신없이 지내다 월급날을 맞을 즈음 한 달이 또 어영부영 저문다. 정신 차리게 되면 3개월이 지났고 1년이 훌쩍 가 있다. 이때쯤 되면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특히 예전 생각들. "아 옛날이여!"
직장생활 중엔 옛 기억이 문득 찾아올 때가 많다. 만족스럽지 않은 날들이 계속될 경우 그 현상은 더욱 도드라진다. 지속되면 퇴사까지 고려하게 된다. 옛날 생각에 잠겨 잠시 행복해졌다가 현실로 돌아오게 될 때 짜증과 허무함은그 이상으로 밀려온다. 알면서도 다시 빠져드는 길을 택하게되는 건 마냥 힘든 지금을 회피하려는 마음 때문일거다.
그런데 과거의 내 모습이 현재 보다 언제나 나았을까? 생각해보면 늘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나름대로 고됨이 있었고 고뇌하던 시기도 있었으니깐. 과거는 미화된다. 행복한 기억은 특히나 과장되기 쉽다. 어쩌면 서글픔은 현재 삶에 불만족해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신기루일 수 있다. 힘든 현실을 위로받고 싶은 바람일수도 있을거고. 지금의 상황이 객관적으로 좋지않게 느껴지더라도 실제로는 그정도로 나쁘진 않았을 수도 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편지도 쓰지 말라던 알프레도 아저씨는 끝으로 이 말을 덧붙이며 토토를 밀어낸다.
'마지막에 무얼 하든 그걸 꼭 사랑하고, 철부지 시절을 기억해봐. 영사기 만지던 꼬마 토토처럼!'
추억만큼 지금의 삶도 사랑할 수 있을까? 지나간 버스는 정말 지나가버렸고 우리는 다른 버스에 올랐으니 그게 현명한거긴한데, 이번 차는 직전에 비해 빈좌석도 적고 가는 길의 교통체증도 심해 보인다. 안 해야지, 옛날 생각 그만해야지 했다가도 ‘아, 아까는..’ 터져나오는 탄식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나마 지금 상황을 사랑하고 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힘들어도 내 인생, 못 먹어도 Go! 해야하는 회사원들이다.
추억이 먼저 다가올 때까지 그저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하 나보다. 오랜 시간이흘러도 또 굳이 기억해내지 않아도 기억은 결국엔 찾아오게 된다. 슬그머니. 이 때 느끼는 감정은 현실에 치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할 때와는 분명 다를거다. 그리워하지 않을 때 가장 많이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추억팔이의 역설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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