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12 어디선가 너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파블로프의 개'는 사실 슬픈 실험의 결과물이다. 과학계에 한 획을, 그리고 내 일상에도 하나를 그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연락이 온다는건 두근대는 일이었다. 전화나 카톡. 더 과거로 가서 문자메시지는 우리에게 설렘과 기다림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소개팅 상대의 카톡 하나에 심쿵한 일부터 오지 않는 답문자를 기다리다 깜박 졸았던 옛 기억까지. 이 '연락'이란 것과 관련된 추억이 아른거린 순간이 누구에게든 있었을거다.

 

핸드폰이란걸 처음 가져본 중학교 1학년 때 작은 신세계가 열렸었다. 사진도 동영상도 찍고 게임도 하고. 가장 좋았던 건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핸드폰의 장점이자 특성이 비수(匕首)가 되어 날아올 줄은, 그땐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들어봤음직한 '파블로프의 개' 이야기. 러시아의 유명한 생리학자인 이안 파블로프(Ivan P. Pavlov)의 고전적 조건 형성 개념의 시발점이 된 유명한 실험.

 

사실 이건 우연한 발견으로 시작됐었는데, 개가 먹이를 먹을 때마다 분비되는 침의 양을 측정하는 연구를 하던 파블로프는 그 개가 먹이를 주러 다가가는 사람의 발소리만 듣고 또 밥그릇 자체만 보고도 침을 흘린다는 점을 발견했다. 개는 그 둘이 밥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학습했고 그에 따라 발소리만 듣거나 밥그릇만 보고도 먹이를 먹을 때와 동일하게 침을 분비하게 됐다. 발소리, 밥그릇이란 '조건'의 등장이 개에게는 먹이를 먹는 것과 같은 동일한 효과로 작용한다는 조건반사.

 

 

 

반복되는 학습을 통한 조건반응화를 이루어낸건 비단 이 파블로프의 개뿐만이 아니다. 너와 나. 우리와 같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 또한 그 실험의 대상이자 결과물이다. 카톡이나 전화가 왔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최대치는 무한대요 최소 무덤덤한 정도였다.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1년 반째, 이젠 벨만 울려도 소름이 끼친다.

 

파블로프의 개가 반복된 과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서로 연관성이 없던 사료, 발소리, 밥그릇이 침의 분비라는 동일한 반응을 야기했던 것처럼, 전화벨/카톡소리, 팀장, 거래처는 짜증의 유발이라는 동일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거다. 또하나의 완벽한 조건반사 사례랄까?

 

 

 

 

기분 탓일까? 업무 전화를 하루 안 받으면 하루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말하면 전화를 하루 더 받을수록 하루씩 늙어간다는 건데, 거울을 보니 느낌 수준이 아니라 실화다. 쉬는 날은 오롯이 내 것이기에 전화도 메일도 무시하고 싶은데 분위기상 그럴 수가 없다. 따라서 내게 저녁이 있는 삶이나 완전한 주말이란건 없다. 4개월 전에 퇴사한 동기는 나보다 4개월은 더 젊어졌으려나?

 

팀원 단체 메신저방만 무시하면 되지 않냐고? 아니. 일단 기본적인 팀 공지 및 업무 단톡방이 4개. 좀 더 세분화된 업무 단톡방이 7개. 상위 부서원과 같은 직무를 하고 있는 타 지역 인원들까지 포함된 업무방이 3개. 막내들 몫인 잡일 공지방이 3개. 거래처별로 단톡방이 또 7개.

 

도합 24개의 단톡방에서, 또 팀장 휘하의 팀원들, 유관 부서와 거래처 인원들조차 행여 내가 심심할까봐 온종일 핸드폰을 울려 주신다. 벨이 울리면 흠칫한다. 이곳엔 우리가 추구했던 일과 삶의 분리는 없다.

원래 카카오톡 단톡방은 재미난 곳이었다. 가족들, 친구들, 기타 모임 인원들까지 '내 사람들'로 구성된 자리였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오로지 내 자의에 의해 참여한 만남의 장이었다. 그들과의 연락을 통해 삶에 기쁨과 재미, 풍요로움을 주는 소식들을 공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업무 정보를 묻는, 요청하는, 요구하는, 지시하는, 혼내는, 우는 소리하는 연락들로 메신저는 포화 상태다. 식사하고 오면 와 있는 부재중 전화 5통, 50개는 훌쩍 넘어 있는 메시지까지. 나는 콜센터 김사원이니? 글 쓰는 이 순간엔 또 몇 통이나 와 있을까? 뒤집어 둔 핸드폰을 보기가 겁이 난다.

 

혹자는 그럴거다. 사회에 뛰어든 직장인이라면 업무연락을 받는 걸 당연히 여겨야 하는게 아니냐고. 사회 초년생의 어리광 섞인 불만 정도로 느낄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 이해한다. 직급에 따라 또 각자가 걸어온 시간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수 있으니 그런 생각 조차 당연할 수 있다. 역시 당연한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그것이 대해 충분히 문제제기 가능하다는 점이고.

 

 

휴가를 다녀온 동기가 이런 말을 하더라. 태국 휴양지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만끽하며 즐기고 있던 중 읽게 된 거래처 카톡 한 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를 줬다고.

 

주말에 거래처 전화 받아주고 카톡 답장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묻는 누군가에게 힘들고 아니고를 떠나서 쉬는날 연락 그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 있다고 대답했던 적 있다. 조곤조곤 말했더니 이해해주시더라. 권리에 대해 합의까지 구해야하나 싶긴했지만, 어떡하랴, 우리는 직장인인데.

 

업무를 위한 연락이 계속되는새 연락 자체가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파블로프의 개가 발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게 된 것처럼, 전화벨이 울리면 짜증이 나게 됐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저녁 9시. 휴식시간을 알려주는 TV소리 사이로 어디선가 너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 애써 무시하지만 계속 울려대는 핸드폰. 연락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어디선가 너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