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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9 사투리에 관한 고찰

"야 그거 해줘! 범죄와의 전쟁! 아니면 바람!"

 

나는 네이티브다. 대구 사투리 네이티브. 친구들과 술 한 잔하다 얼큰해질 무렵엔 늘 영화 장면 재연을 요청 받곤 한다. 경상도 사투리 대사로다가. 명연기를 맨입으론 볼 수 없는 법.

마! 시끄럽고 소주나 한 병 더 시키라!!

 

나는 경상도 남자다. (믿고 거르진 말아줘..) 십 년을 그쪽에서 살아왔다 보니 주 사용 언어도 물론 경상도 사투리고. 만약 친구들과 같이 본 영화에서 주인공이 경상도 사람으로 나왔다, 혹은 배경이 경상도다, 또 깡패가 나왔다 하면 아주 그냥 그 날의 재연 배우는 나다.

 

 

서울 살이 십 년차지만 아직 사투리를 쓰고 있다. 여기서 지낸 세월이 있다 보니 서울말도 유창한 편이지만 필요할 때만 구사하고 있다. 제2외국어는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크니깐.

 

지방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직장생활까지 몇 년 해놓곤 서울로 이직했다고 한 달 만에 국어 세탁을 하는 친구도 주변에 있긴 하다. 동대구역서 기차 타고 "어~ 엄마 내 인자 탔데이~ 도착해가 연락하께~" 했다가 서울역 도착 후엔 "저 이제 도착했어요~ 엄마두 밥 잘 챙겨 드시구~~" 거의 자기최면 수준의 빠른 적응을 보며 나는 그저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지방인들이 섞여 살고 있는 여기는 서울. 사투리 티 나지 않게 조곤조곤 또박또박 말하는 그게 더 어색하단 걸 왜 모르니 ㅜㅜ 신입사원 시절엔 긴장을 해서 최대한 안썼던 사투리는 점점 적응하며 슬금슬금 다시 찾아온다. 나는 서울말을 꽤 한다, 내 어투에선 부산 안리가 아닌 남산의 느낌이 나 자신만만한 친구들아, 다들 네가 사투리 쓰는 걸 아는데, 정작 너만 몰라..

 

** 이번 글은 지방근무 포스팅의 연장선이라곧 볼 수 있다. 아직 못 봤으면 얼른 캐치업하자~ Ep.3 너 정말 지방근무해도 괜찮겠어? (http://hwankishow.tistory.com/5)

 

 

 

 

부산 사나이 컨셉의 모델이자 예능인이 TV에 자주 출연하게 되며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관심이 제법 뜨겁다. TV프로그램에 이어 SNS에서도 사투리로 포스팅을 하는데 당당해서 참 멋지다.

"촬영 왔스예~ 재밌겠지예~ 햄들이랑 노이까 참 재밌네예~ 기대 많이 해주세예~" 

 

 

 

이 형님이 애용하시는 '~예"체는 '~소'체, "~데이'체와 함께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서 주로 사용하시던 사투리다. 요즘 세대는 잘 쓰진 않는다. 비 네이티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개 예시를 들어보자면,

▶'~예'체

예) 밥뭇스예?(식사하셨어요?), 아니라예(아닙니다)

▶'~소'체

예) 계산해주이소(계산해주세요), 보지마이소(보지마세요)

▶'~데이'체

예) 아까 밥묵었데이(아까 밥 먹었어), 안간데이(난 안간다)

 

청년들도 자주 쓰는 경상도 사투리는 '~캅니다' 체. 예를 들면 아까 팀장님이 그카시던데요(아까 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뭐라카노?(뭐래는거야), 아이라고 안 카드나(아니라고 했잖아) 식으로 가장 활성화된 어체다.

 

서울 친구들은 나만 만나면 사투리를 쓰고 싶어하는데, 그 모습이 옹알이하는 애들 마냥 볼수록 은근 귀엽다.

회사에선 사투리를 그나마 적게 쓰는 편이다. 유관부서와 전화통화를 할 때 사투리로 설명하다 보면 간혹 잘 못 알아듣는 사우들도 있다. "네???" "예??" 하면서 다시 묻는 경우가 있는데 두 번 말하기 싫어서 처음부터 제2외국어를 구사하게 된다.

 

 

경상도 사투리의 단점은 강한 강세. 자칫 잘못하면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릴 수 있고, 말이 빨라 발음이 뭉개진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정확, 명확이 중시되는 업무통화시엔 약간 불리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반면에 확신이 느껴지는 강한 어투는 장점이다. 목소리만 들으면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일을 마무리 지어줄 것 같은 경상도 아재들이다.

 

다른 언어도 나라나 지역마다 발음에 차이가 있다. 그 중 영어가 대표적인데 영국 영어를 쓰는 영국 남녀는 섹시하다는 의견이 많다. 무심한듯 정돈된 느낌의 브리티시 엑센트를 쓰는 영국 사람들은 성격도 그런 느낌이다. 영국 신사라는 단어가 생긴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

 

한국 사투리도 마찬가지다. 각 지역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사투리 색깔이 뚜렷한 만큼 성격도 어느정도 차이가 난다. 느낌 있는 거다. 개성 있는 거고.

 

세대가 여럿 교체되며 사투리를 매력으로 봐주는 친구들이 많아 참 고맙다. 사투리를 사용한지 이 십여 년째. 앞으로도 대구 사투리를 주력으로 쓸 예정이다. 작은 회사 건물에 서울부터 제주까지, 대한민국이 통째로 들어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할 때가 있다. 서울말은 서울말대로 좋고 경상도는 경상도대로, 전라도도, 충청도도, 제주말도 그렇다.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모두 서로 이쁘게 봐줍시데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