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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8 별 일 없이 산다

"별 일 있으면 좋겠지만 별 일 없으면 좋겠어."

 

요즘 별 일 없이 살고있다. 별 탈 없이 그냥 산다.

직딩들은 공감할 수 있을 거다. '그냥 산다'는게 뭔지. 신입사원 때였던가? 동기들이 "아 너무 심심해! 지루해! 챗바퀴 생활 핵짜증나!!" 라며 울부짖곤 했었다. 직딩 생활 1년 반째, 그런 시절도 다 지나갔다. 단조로운 삶을 사는 모두가 조용해졌다. 다들 그냥 산다.


그냥 지낸다. 그저 일상을 보낼뿐. 별 일 없이, 큰 일 없이. 별 탈 없이, 큰 탈 없이. 

직딩라이프는 생각보다 더 단순하고 또 단조롭다. 집-회사-집-회사인 평소의 루틴. 8시 30분 출근을 위해 7시경 눈을 뜬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7시쯤 퇴근을 한다. 집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면 빨라봐야 8시. 하루 7시간 잠을 잔다고 치면 내 시간은 4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운동 1시간 30분, 멍때리기 1시간, 독서 1시간. 하루가 끝났다.

 

 

별 일 없는 심심한 삶이지만 어느새 이미 적응해버렸다. 보디빌딩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헬스장을 일주일에 서너번을 가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젠 규칙대로 딱딱 어느정도 예상한대로 삶이 흘러가길 바라는 걸까. 심심한 삶은 싫지만 정작 별 일이 생겨나면 피곤함을 느끼게 됬다.

예전보다 더 집돌이가 되어버렸다. 고딩 때나 대딩 때나 밖에 나가 번화가에서 시간 보내는걸 크게 좋아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젠 아에 집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피곤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또 피곤하기도 하고.. 이젠 뭔가 내가 예상한 범위 내에서 일들이 돌아가는게 마음 편하다.

직딩생활 중에도 큰 별 일 없었다. 지방발령을 받게 된 것이 큰 일이었다면 큰 일이었겠지. 여태까지의 삶을 모두 두고 다시 대구로 내려가서 새 출발을 해야했으니까.

배치를 받고 대구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딱히 일이 없었다. 팀에서 털리고 거래처랑 싸우며 스트레스 받는 정도? 첫 차를 샀고 운전하면서도 가끔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있긴했지만 큰 일 없이 놀러도, 외근도 잘 다녔었다.

 

그 와중에 일이 생겼었다. 첫 교통사고. 내 차 수리비만 300만원이 든 꽤나 큰 사고였다. 차 앞부분이 다 날아갈 정도로 충격이 컸던 상황에서 '어 이게 사고인가? 생각보다 별거아니네' 라고 느꼈었는데, 아마 차가 서로 부딪혀서 데굴데굴 굴러가고 폭발하고 그러는 영화를 봐서 그런것 같다. 마블영화를 좀 끊어야겠다. 다른 친구들이 사고났다고 호들갑 떠는 걸 보면 살짝 부딪치거나 긁히거나 그 정도였는데. 첫 사고를 거하게 치루다 보니 이젠 운전에 자신감이 꽤 붙었다. 비록 보험 분쟁도 지고 차는 차고 차량이 되어버렸지만ㅜㅜ

보험사랑 경찰서 전화를 받으면서 내가 느꼈던 생각은 '귀찮다'였다. 모쪼록 잘처리됬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고요한 삶을 흔드는 방해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냥 빨리 끝내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보통의 생활로 복귀한 후의 안도감은 생각보다 컸었다. 다이나믹한 삶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새 별 일 없는 삶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그나마 내 삶에 별 일이 생겼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은 별 일 없는 중에도 안좋은 별 일은 모쪼록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걸 예측할 수 없으니 '별 일이 다 있네~'라고 말하긴 하지만.

너무 별 일이 없으면 살짝 지루하지만 너무 별 일이 생겨버리면 멘탈이 나갈 것 같은데.. 과연 어떤 삶이 베스트 케이스일까? 그리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게 좋을까?


살다보면 문득 생각날만한 질문 하나.

별 일 가득한 삶이 좋은지, 별 일 없는 일상이 좋은건지. 




한 달 전쯤인가 대학교 선배를 만났다. 서로 근황도 묻고 회사생활 뭐같다~ 주거니받거니 하다 터져나온 형의 질문,

"요즘은 너 뭐 재밌는 거 안하냐?"

 

학생시절, 내 주위는 항상 별 일로 가득했다.

중학생 시절 미국유학을 다녀왔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 3학년 때 첫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의 확장을 위한 비영리민간단체 설립부터 내 이름을 건 토크쇼 제작까지,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팀을 꾸려서 회의다 뭐다 우르르 다니는 것 보단 혼자 꽁냥꽁냥하다가 쨘~하고 뭔가를 들고 나타나는게 내 스타일이었다.

주변에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게 재미있었다고,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고 한다. 남들 다 가는 길을 걷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뭔가를 자꾸 만들어내놓는 또라이를 관전하는게 볼만했나보다. 대리만족도 하고 말이다. "요즘은 뭐 안해?" 라는 말. 주변 사람들이 늘상 묻곤 했던 저 말은 그 때의 내게 자극제요, 도전의 용기를 갖게하는 말이었으리라.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새로운 일들을 벌여나가는게 재미있었다.


직딩이 되고나선 그 '재밌는 일'을 벌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회사를 나가고 일을 쳐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에 허덕일뿐. 물론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나름 생산적으로 살기위하여 발버둥치긴 했지만, 예전의 내 모습은 아니었다. 사실 뭔가를 해내려고 마음은 먹었었지만 녹초가 되어 퇴근한 뒤 그저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말 그대로 오늘만 살아가는 인생이 되버린 것이다.

드라마 <미생> 을 볼 때 깨달았어야 했다. 대기업 신입사원은, 직딩들은 그냥 회사에 녹아들어 살게되는 인생이 된다는 것을.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원1로서의 김사자의 삶이 김사자로서의 김사자보다 더 익숙해지는 현실이 된다는, 나름 슬픈 현실.

취업만 하면 행복해진 것 같다는 취준생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 취준하는 입장에선 이런 내 생각마저 마냥 투정부리는 것처럼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으니깐. 학교 다니는 것도 소모전같고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수업도, 팀플에 과제도 적어도 너를 위한 것들이었다.


이제 직딩이 한 번 되어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별 일 아닌 별 일들이 어찌나 그렇게 많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예측조차, 방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꾸역꾸역 그저 해나가야만 하는 #그게 바로 직딩의 길. 내 개인 삶 속에선 별 일 없이 사는데 회사선 별 일이 산더미인 #그게 바로 회사원의 길.

 

그러다보니 초반엔 회사만 벗어나면 술이다 친구다 하면서 놀러다니다가 어느정도 또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별 탈 없이 별 일 없이 사는 삶을 점점 선호해가게 된다. 매일매일 업무와 인간관계에 시달리는 별 일들이 가득하다보니 하루라도 일없이 편안하게 살고싶어지게 되는 것 같다. 예전처럼 프로젝트다 사업아이템이다 구상하고 팀을 꾸릴 시간적 여유도 정신적 여유도 줄어들었다. 현실이다.


이번 주제와 같은 제목의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 란 노래가 있더라. 노랫말중엔 이런 가사가 있었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중략)
나는 사는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좋다"


이 양반 노래가 생각보다 매력있다.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곡이 좋다는 것도 못느끼겠는데, 말하듯이 노래하는 목소리와 또 노래같지 않은 가사가 좋았다. 특히 일상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밑에 링크 달아놨으니까 궁금하면 들어봐. 노래는 헤어진 연인 혹은 스스로에게 나 잘 살고 있어~ 하는 내용이라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랑은 조금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저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별 일 없이 사는데도 사는게 재밌고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신날 수 있는 사람, 주변에 몇이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살고 있나? 니 옆에 걔는 그렇게 살고 있어?


https://www.youtube.com/watch?v=SF6z1jd2fa0 (출처 Youtube)

장기하와얼굴들 <별 일 없이 산다>



여전히 큰 별 일 없이 산다. 그러다 점점 삶 속에서 긍정적인 별 일들을 만들며 산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그 중에 하나다.

대한민국 산업역군 답게 열일하고(이 과정은 사실 노잼이다) 퇴근해서 헬스장에서 땀 흘리고 집에와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쇼팽 <야상곡>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소소한 행복.


정말 별 일 없이 산다. 큰 일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삶 속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아가는게 참 행복하다. 작은 일도 기쁨 가득한 일이 될 수 있다. 별 일 아닌 것들도 ★일이 될 수 있다.

조금만 고민하고 실행하면 일상 속에 별이 한가득이다.

 

삶 속에 별을 만들어 나가자. 그리고 우리 젊은 날을 한껏 즐기자.

글을 마무리하며 장기하와얼굴들의 <별 일 없이 산다> 중 마지막 부분을 같이 불러보고 싶다.

별 일 없이 사는 우리들도 활짝 웃으며 저렇게 외칠 수 있는 시기가 얼른 오기를 고대하며.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그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