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기대 누워 핸드폰을 치켜들었다. 웹툰을 슥슥 내려가며 읽는데 손가락에 달이 떴더라. 초승달 보다 얇던 손톱 모서리가 어느새 상현달 만큼 차올랐다. 여러 번 자르기 귀찮아서 바짝 깎는데도 벌써 또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보다.
언제나처럼 찬장을 열어 손톱깎이 세트를 꺼냈고 책장 구석의 진급 교육 교본을 펼쳐 아래에 깔았다. 따봉 자세로 펼친 엄지에 손톱깎이를 댔는데 깎아야 하는 모서리 라인이 잘 안 보였다. 별생각 없이 앉은 자세가 하필 창문을 등진 모양새였다. 해를 등지고 앉았으니 당연히 눈앞이 어두울 수밖에. 움직이기 귀찮아서 그냥 덜 보이는 대로 자르기로 했다. 남 손도 아니고 매일 같이 함께 한, 하루에도 수백 번은 봐왔을 손톱 열 개 정도야 눈 감고도 다듬을 테니까.
어두운 방 안에서 반듯이 썰리던 한석봉 어머니네 떡처럼 손톱은 또각- 또각- 소리와 함께 하나 둘 다듬어졌다. 역시 이런 건 일도 아니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아야!”
약지 손톱을 너무 깊이 잘랐다. 손톱깎이가 핑크색 속살이 비치는 손톱 안쪽 부분까지 파먹어 버렸다. 다행히 피도 나지 않았고 (아직은), 또 금방 자라나겠지만 멀쩡한 손톱이 3분의 1이나 날아가 버린 탓에 한동안은 일할 때나 운동할 때 아프긴 하겠다.
아픈 손가락을 주물 대다가 햇볕이 드는 방향으로 돌아앉았다. 남은 손톱을 마저 깎아야 했다. 이번에는 밝은 빛을 조명 삼아, 잘 봐가며, 천천히 진행했다. 그렇게 더 이상의 사고(?) 없이 마무리를 지었다.
손을 씻기 위해 튼 수돗물 물살은 유난히 세게 느껴졌다. 가려가며 씻었음에도 손톱 밑 드러난 속살이 아렸다. 손을 움직이는 와중 살살 일어나는 바람에도 그 약한 부분은 바로 반응했다. 어중간하게나마 온종일 신경 쓰이는 그런 불편함과 함께.
내 손톱, 이거 매일 보는 건데, 한참 잘 다듬어내던 와중 왜 갑자기 실수를 했으려나? 손가락을 연신 튕겨내면서 아기 고양이 발바닥같이 연한 핑크색 살점을 들여다봤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다. 몸의 일부이기도 하거니와 자주 보니 다 안다 싶었나 보다. 이미 아는 것이라 주의 깊게 행동하지 않았다. 딱히 주의를 기울일 생각조차 안 들었다. 영혼 없이 그냥 해치우는 거지, 누가 손톱 따위를 깎으면서 그러기까지 할까?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일 거고 손톱은 모르는 새 계속 조금씩 변하고 있었을 거다. 어젯밤과도, 손질하고자 마음먹기 불과 몇 분 전에 비해서도 자라났을 테고.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조금씩이긴 하겠지만은.
해를 등지고 처음 엄지손톱을 깎을 때 눈에 들어갔던 힘이 약지쯤 갔을 땐 다 풀렸었다. 거의 눈을 감은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식은 죽 먹기라 여긴 데다 검지, 중지까지 연달아 무탈히 해냈으니 자신감이 옴팡지게 붙었었겠지. 그러다 한방 얻어맞았다. 요놈의 손톱을 너무 잘 안다면서 제대로 보지 않고 매만진 잘못이었다.
손톱을 깎다가 생각이 들었다. 잘못 깎고서야 생각이 났다. 다 안다고 믿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고. 이미 파악했다는 확신에 긴장이 느슨해져서 발등을 찧고 마는 그런 일들이 더 생길지도 모르겠다며. 충분히 안다고 느낄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일 수도 있겠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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