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선배가 연락 왔다. 모처럼 모이잰다. 결혼 후엔 얼굴을 보기 힘들던 형이었다. 그런 양반이 먼저 얼굴 보자 연락을 주다니, 별일이라 생각하면서 ‘참석’ 투표를 눌렀다.
금요일 저녁 도착한 약속 장소엔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결혼식이 마지막 만남이었으니 아마도 넉 달 만이었을 거다. 격주마다 삼겹살을 굽던 예전같이, 해장용 짬뽕 앞에서 떠들던 이전처럼 왁자지껄했다. 일 얘기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몇 병 비웠을까? 안주 하나 추가한다며 들어 올린 형의 손을 옆자리 친구가 가리켰다.
“이야~ 형 성공했네! 손에 소나타 한대 차고 다니는구먼!”
그러고 보니 시계 찬 손목 말고도 뭔가 달랐다. 포마드로 빗어넘긴 머리에 눈부시게 흰 셔츠, 칼같이 다려진 정장 차림. 우리랑 놀 땐 삼선 슬리퍼에 기능성 티셔츠를 걸치던 형의 출근 룩은 무려 킹스맨이었구나. 삼디다스 쓰레빠와 롤렉스 시계, 둘 중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 일상 모습이었을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날 그는 성공한 남자의 아이템을 당당히 소지하고 있었다.
두 살 밖에 많지 않았지만 경제 감각에 관한 한 5년은 앞서 나간 형은 서른의 나이에 자가를 마련했다. 그 집에 처음 놀러 가던 길에 형은 벌써 어른이 됐구나 싶었다. 집에서 어느 정도 지원도 받고 은행 대출도 끼긴 했지만 집값이 미쳐 날뛰는 근래에 그 정도는 당연한 걸 거고.
대학교 졸업 후 각자의 일상은 달라졌지만 각각의 삶을 평가하는 필수 잣대엔 공통 항목이 생겼으니 바로 경제력. 좀 더 무거운 느낌으로는 재력. 쉬운 말로는 돈. 영어로는 Money.
작년에 산 아파트가 몇 억이 올랐니, 보유 주식 상승률이 몇 프로니, 연봉은 얼마에 또 성과급은 어느 정도나 나왔다는 이야기가 모임 자리서 뻔하게 등장하는 나이가 됐다. 재테크에 큰 관심은 없더라도 영 외면해선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직장인 그리고 30대. 좋든 싫든 자산 수준으로 계층이 나뉘고 월급이 인격으로까지 지칭되는 이 황금의 세계의 일원이 됐으니까.
우연히 언급하게 된 형의 자가 마련기를 전해 들으신 어머니께선 그 친구 참 실속 있다며 칭찬하셨다. 보고 느끼는 바는 없었는지 슬쩍 물어 오시던 다음 문장을 못 들은 척, 나는 방으로 들어갔었고.
실속 챙기기. 꿈만 꾸진 않지만 좀 많이는 꾸고 사는 아들에 대한 부모님의 희망사항이셨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사회적 지위와 직업적 성공, 경제적인 안정을 목표로 하는 현실파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생각을 바꿔 나가길 바라셨던 것 같다.
몽상가들에게 있어 실속 있는 삶이란 건 아무도 떠올리지 못한 멋진 상상을 하는 걸 거다. 그런 맥락에서는 밥 잘 먹는 것도 심지어 잠을 푹 자는 것마저 ‘실속 챙기는 행위’가 될 수 있겠지만 보통은 그런 걸 실속 있다 말하진 않을 거다. 밥 벌이에 뛰어든 직장인들이라면 더욱.
달리기가 빠르거나 노래 잘 부르는 학우를 부러워하던 꼬마들이 자라나 돈 잘 버는 친구를 가장 부러워하게 됐다. 실로 만든 소원팔찌가 귀여워 보이는 시절도 어린 한때라며, 소개팅 상대를 보자마자 걸친 게 얼마인지 계산됐다는 일화부터 출근길 동료 얼굴보다 그가 찬 시계 로고로 눈이 먼저 갔다는 말을 부끄럼 없이 나누는 어른이 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잘 버는 사람은 정말 멋있단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만 소득은 높은 친구를 보면서는, 그래도 돈은 많이 벌지 않냐며 부러워한다. 벌이는 적어도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은 가장 로맨틱하단다. 하지만 정작 본인 삶으로 받아들이기엔 자신이 없다는데, 꿈을 꾸는 사람은 덜 늙긴 한다만은 더 굶을 수는 있으니까.
실속 있게 살고 싶어 하지만 희한하게 못 챙기는 친구들이 있다. 속물 같다며 아예 등 돌리다 혼쭐이 나고서야 슬금슬금 끼어 보려는 녀석들이 보인다. 그리고 동년배들이 부동산 투자다, 경매 공부다, 치고 나서는 사이 아직도 낭만 그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우리 아이를 보며 한숨 폭폭 쉬시는 부모님들도 여럿 계신다. 애가 그렇게 실속이 없어서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 나가려나 걱정하시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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