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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입사원 김사자

[신입사원김사자] Ep.109 예민하게 그냥 보통날처럼

신입사원김사자 신입사원김사자 2020. 9. 3. 00:07

토요일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다섯 시간밖에 못 잤지만 블라인드 사이로 콕콕 찔러대는 햇빛이 성가셔서 그냥 떠 버렸다. 누운 채로 웹툰을 들여다보던 시야에 뭔가 포착됐다. 방바닥의 머리카락. 긴 머리카락. 지난주에 여동생이 왔다 간 뒤 바로 청소를 했는데 어디서 자꾸 나오는지 모르겠다. 10평짜리 집에 무슨 영화처럼 숨어 사는 사람이 있을 것도 아니고. 그대로 일어나서 청소기로 바닥을 주르륵 훑었다. 출근하는 날엔 겨우 힘이 들어가는 다리를 머리카락은 너무 쉽게 일으켜 세운다.

 

손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 바닥에도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얇은 한 올 한 올이 어찌 쏙 눈에 들어온진 모르겠으나 곧바로 샤워기를 틀어 쓸어 보냈다. 이건 고민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곧 다시 쌓일지라도 일단은 치워버려야 마음이 편하니깐.

 

 

마산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놀러 왔다. 오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손 씻고 발까지 씻고 나오더라. 뜻밖의 행동을 환영하면서도 당황스러워져 웬일이냐 물었더니, 너네 집 오면 이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무던히 대답한다. 대놓고 눈치 주는 것도 어느 정도라며 구시렁대던 게 고작 반 년 전인데. 이놈 이제 장가보내도 되겠다.

 

 

 

 

며칠 전에 주문한 소파가 도착했다. 딱히 내가 앉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한 놈들이 침대에 올라가는 걸 막기 위해서 산 거다. 몸과 마음이 정갈한 상태에서만 닿을 수 있는 나의 성지에 감히 외출복 차림으로 오르려 하는 역적 노무 새키들! 볼기짝을 매우 치고 싶었을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침대로 뛰어드는 경악스러운 모습에 기겁하면서도 정 없어 보일까 봐 아무 말 못 하던 예전 날들. ‘저것들 가면 베개 커버랑 이불이랑 다 빨아야지.’

 

불안의 시대를 넘어 소파가 왔고 이젠 거기 앉으라 권할 수 있다. (권유 말고 권고란다 얘들아~) 그것들도 나름 손님이라고, 바닥에 앉히긴 좀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했던 침대를 이제는 사수할 수 있겠지? 삼겹살 굽던 손들이 매트리스 위를 구르는 모습이 신경 쓰이던 날들은 이젠 안녕이길 바라.

 

그렇게 하루가 간다. 예민하게 그냥 보통날 다운 일상. 세면대는 새하얘야 한다 싶어 닦았고 거울은 손자국 없이 반짝여야 양치할 맛이 나니까 또 닦는다. 남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참 신경 쓰일 때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민감한 것에 민감해할 뿐인 거고 예민할 만한데다 예민해할 뿐이니까. 하지만 아버지조차 말씀하시기를, “남자가 너무 깔끔 떨고 그러면 안 된다~” (베개 베시려 길래 샤워부터 하고 오셔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나한텐 그게 당연한 거라니까?)

 

더 치울 거 없을지 두리번대다 천장에까지 손을 뻗는 내가 있다면 줄임말이나 맞춤법 오류에 눈길을 떼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계획된 일을 꼭 예정된 시간에 해줘야 마음이 놓인다는 형도, 맞아 죽어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후배도, 어딜 가든 개인 이불을 들고 다니는 동기도 있다. 콕 집어낸 탓에 튀어 보이긴 해도 너무나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

 

 

예민함은 주변까지 피곤하게 만든다고 하더라. 사람 앞에 두고 한숨 폭 쉬면서 그 사람 머리카락 줍는 모습은 충분히 유난스럽긴 하지. 근데 다들 민감한 부분 하나쯤은 있어봐서 알지 않나? 가끔은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거. (사실은 그냥 어쩌라고 말해버리고 싶긴 한데) 여하튼 혼자 살아서, 그래서 가끔만 만날 수 있어 서로가 천만다행이다.

 

과자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청소기를 향해 가는 등짝엔 예외 없이 어이없어하는 눈초리가 날아온다.

 

"미친, 니 뭐 하냐? 다 먹지도 않았구만 유난스럽게."

 

"저거 저러는 거 볼 때마다 현기증 난다."

 

역시나 예외 없이 차분히 청소기를 켠다. '왱!' 하면서 쓸데없는 것들을 빨아들이는 모터 소리 사이로 한마디 남기기도 했고.

 

"지는~?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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