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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입사원 김사자

[신입사원김사자] Ep.108 그날의 분위기

신입사원김사자 신입사원김사자 2020. 8. 28. 09:39

평소보다 10분은 이르게 집에서 나선 아침이었다. 금요일 다음으로 행복한 목요일. 기분 좋게 사무실로 들어와 인사를 했다. “굿모닝~ 안녕하세요!” 평소 같았으면 “응~ 안녕~” 다정 무심히 받아줬을 대각선 선배가 말없이 눈짓을 했다. 크게 한 번 동그래졌다가 위에서 아래로 휙휙 움직이는 눈. 와씨, 눈썹과 턱까지 동원해 신호 보내는 걸 보면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소리 없이 가방을 내려놓고 얼른 PC를 켰다.

 

“아니, 그러니까 정확한 사유를 대보시라니까?!!” 팀장님 목소리다. 안 그래도 큰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린 걸 보아하니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셨나 보다. ‘쾅쾅!!’ 키보드 자판이 잘 안 눌러지는지 마음이 억눌러지지 않는지 큰소리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김 없이 시작인가 보다. 그래, 뭐 오늘은 짧게나마 행복해봤으니 됐다...

 

 

바로 앞에 뒀던 커피 잔을 책상 가장 안 쪽으로 쭉 밀어 넣었다. 최대한 튀어 보이지 않는 것이 상책. 맞은편 선배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슬그머니 벗었다. 불안해하는 눈빛이 더 불안해하는 눈빛과 마주쳤다.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해야 하는 일을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이런 날 업무적으로라도 괜한 꼬투리가 잡히면 하루가 정말로 힘들어지니까.

 

 

 

 

점심을 먹고는 조금 일찍 들어왔다. 업무시간 시작까진 아직 10분이나 남았다만 모두가 앉아 있었고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옆자리 선배가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속삭였다. “얼른 앉아, 이빨 보이지 말고.”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곤 의자를 조용히 뺐다. 팀장님의 심기는 여전히 불편해 보였고 자연히 오후의 팀 분위기도 삭막하기만 했다. 기대했던 즐거운 하루는 무슨, 꿈도 희망도 없는 목요일이었다.

 

그날 이후 유행어 아닌 유행어가 돼버린 ‘이빨 보이지 마’. 해학적인 어감에 비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니 상사의 기분에 맞춰서 행동하란 뜻일 거다. 팀장님이 왜 화가 나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불어오는 폭풍우에 있어 원인 파악이 큰 의미가 있을까? 돌덩이가 날아다니고 창문이 깨지는 결과에 대비라도 해야지. 더한 피해만 없길 기도하면서.

 

회사 내 기류는 그렇게 시시각각 변해 간다. 오늘 좀 편하다고 방심하다가는 내일은 그냥 뛰쳐나가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 (운이 나쁘다면 오후부터라 당장) 지레 겁을 먹다 보니 너무 좋은 분위기에선 되려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든다. 그러니 ‘중간 정도’와 ‘무난함’을 사랑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은 괜한 게 아닐 거다. 대단한 성과를 내고 싶지도 않고 찬사나 칭찬도 필요 없다. 바라는 건 큰 탈 없이 근무시간을 채우고 무사히 퇴근해내는 것 그 하나뿐인데, 왜 이리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냐고 물어오는 래퍼에게 회사원들은 몰라서 묻냐고 답한다. 누군가의 하루는 그 위 누군가의 기분에 좌지우지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게 된 사람들. 그분이 웃으시면 나머지도 웃을 수 있다. 우신다면 적어도 침울한 척이라도 해야 할 거다. 욕은 마음속으로만 크게 외치고 쥐어패고 싶은 생각도 상상 속에서만. 아직 지난달의 나와 그 지난달의 내가 쓴 카드 빚이 남아 있으니까...

 

그분의 심기에 좋든 싫든 맞춰 보낸 여덟 시간. 봐도 못 본 듯 들어도 못 들은 듯 미소 짓지도 찡그리지도 않는 표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그저 업무에 열중하는 듯한 얼굴을 겨우겨우 유지하며 앉아 있었다. 물론 동태를 감지할 귀와 눈은 열어둔 채로. 언제든지 웃을 수 있는 얼굴 근육과 납작 엎드릴 수 있는 유연함 겸비는 덤이겠거니.

 

회사 메신저를 출근길에 확인해 버렸다. 도착하기도 전에 알아버린 오늘의 분위기도 흐림. 우충중하다 못해 뇌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질 예정이란다. 오기로 한 비는 어쩔 수 없다만 부디 장마나 태풍으로 까진 이어지진 않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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