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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경제학도로 4년을 보내며 듣던 가장 많은 말은 '경제? 보기와는 다르게 똑똑해 보여~' (보기와는 다르게? 보기와 다르게?!) 두번째로 많이 들었던 건 '경제? 어렵겠다!' (죽겠더라) 그리고 가장 많이 들던 생각은 '나 숫자랑 참 안 맞다'

 

중학교 땐 수학과 친해지고 싶었다. 방학이면 학원을 세개씩 다녔고 자의반 타의반 수학책만 종일 들여다본 날도 있었다. 덕분에 제법 친해졌다. 아니, 친해진 줄 알았다. 억지로 끌고 온 수학이와의 관계는 버거웠고 고등학교 2학년에 접어들며 결국 놓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돈을 불리는 법을 배우려 선택한 경제과에서는 돈을 아끼는 법을 가르치더라.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쓰는 게 경제학의 핵심이라나 뭐라나. (아차! 싶던 개론 수업 후에 바로 떠났어야 했다) 각종 사회 현상을 숫자로 해석하는 경제학은 수학이 기본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최대한 수학 느낌이 적어보이는 수업을 찾는 꼼수(?)를 부리긴 했다만 필수 수강 과목이란 게 있더라. 미분적분학, 경제수학, 계량경제학처럼 이름부터 대놓고 수학 기반의 수업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더니. 

 

전과를 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했으니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새로 입시를 하기엔 귀찮았기에 그냥 계속 다니게 됐다. 쉽지 않은 졸업 후에 드디어 회사에 들어갔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숫자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영업으로 지원했다. 영업을 제외하면 안 그래도 몇 안 되는 문과 직군은 채용 정원이 턱없이 적었을 뿐더러 그마저도 모집 공고가 적었으니까. 더욱이 두 팔 걷어 돈을 벌어들이는 영업이야말로 기업의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숫자와 함께 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그것들을 분석해내는 작업이 추가됐다. 업무는 경제학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 시절 느끼곤 했던 고충도 비슷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국내외 숫자들을 풀어내 의미를 부여하기. 똑같이 한숨 쉬며 시작했다 한숨으로 마무리되는 일상들까지.

 

수(數)를 읽고 해석하는 게 사회와 회사에 있어서 중요하고 필요한 일임에는 의문이 없다. 그치만 내게도 그런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설령 그렇다해도 힘든 걸 견뎌내며 굳이 계속 해나가야 할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2010년에 했던 ‘경제 공부해두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니까’ 그리고 2016년에 한 ‘분석이야말로 문돌이들의 살 길’이라던 생각. 상황을 당장 바꿀 수 없으니 일단 현재의 선택을 최선으로 만들어보자며 생각한 건 긍정적인 사회화 과정이었을지, 합리화일 뿐이었을지.

 

숫자가 싫어 문과를 택했지만 대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됐고 관계는 직장에서까지 이어졌다. 함께 한 세월을 생각해 보면 인연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지긋지긋하고 거리 두고 싶은 속내는 어쩔 수가 없다. 하다보니 처음보단 편해졌다만 여전히 숫자와는 서먹하고 분석과는 어색하다. 가까이 있지만 너무 멀게 느껴지는 우리 사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누군들 좋아서 하겠냐면서, 어떤 일이든 하다보면 결국엔 어울리는 일이 되는 법이라는 점잖은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일에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직장인들, 앞으로도 아마 그러긴 힘들 것 같다면서도 그냥 발 담그고 산다는 회사원들의 이야기다. 어쩌다 하게 돼버린 일을 계속 하고 있을 뿐이란다. 시작할 땐 나름의 열정이 있었을지 몰라도.

 

어떻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떠신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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