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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김사자 』

[신입사원김사자] Ep.104 아쉽지 않은 남자와 더 아쉽지 않은 여자가 만났을 때

왠일로 이 형이 점심 먹자며 연락 왔다 싶었다. 회사 선배이자 친한 형과 로비에서 만나 근처 몰에 위치한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안에서도 밖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고 마치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간단한 근황을 나누는 중에 대화 상대와 아이컨택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하늘대는 원피스나 짧은 스커트들이 지나갈 때 형의 입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눈은 그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그 와중에 대화의 흐름은 끊김 없었으니, 늘상 있던 일이었으니까. 주문한 사케동이 나왔고 방황하던 한 쌍의 눈은 그제야 테이블 위에 안착했다.

 

 

밥도 다 먹고 이야기도 대충 다했다 싶은데 뭔가 덜한 듯한 느낌은 커피를 아직 안 마셔서일까? 카페를 향해 걷는 와중 건내진 말로 의문은 해소됐다.

 

“그래서, 형 소개해 줄 사람은 알아봤어?ㅎㅎ”

 

그래, 이게 왜 안 나오나 했다. 루틴에서 하나가 빠진 느낌이더라니. 잊을 만하면 들린다 싶은, 가물가물해질 때쯤 꼭 나오던 말이었다. ‘소개-부탁-해요-’

 

띵동대는 초인종 소리에 자동으로 ‘누구세요~’ 묻듯 내 입에서도 언제나와 같은 대답이 나왔다.

 

“에이~ 내가 소개해 줄 애가 어딨어요~ㅎㅎ”



 

 

소개해 줄 사람이 없다. 이 형에게 소개해 줄 사람은 특히나 더 없다.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는 다소 재수없어 보이는 강한 자의식만큼 실제로도 좋은 스펙이 더 재수없다^^ 단아하고 나긋한 성격에 이목구비 또렷하고 볼륨 있는 몸매를 갖춘 데다 집안까지 좋은 분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와중에 본인이랑 맞다는 느낌이 제일 중요하다는데, 나야 친하니까 저런 요구를 듣고도 가만히 있지 어디 가서 저 말했다가 뺨이나 안 맞을지 걱정이다. 큰 맘 먹고 지인을 연결해줬다가 괜히 중간에서 난처해졌다는 누군가의 경험담을 들은 뒤로 나는 절대 소개해주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내 코가 석 자니까.

 

30대 중반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도 독신의 삶을 이어가는 형 같은 경우가 주변에 꽤 많다. 형편도 외모도 평균 이상인데 홀로 지내는 그런 사람들. 사귈 만한 사람이 없단다. 마음에 쏙 드는 이성이 보이지 않는단다. 소개해달라 조르길래 없는 인맥 동원해서 연결해줬더니 10분 뒤쯤 돌아온 답장은 ‘너무 괜찮으신데, 나보다 더 잘 어울릴 분 계시지 않을까?’

 

고민은 깊되 빠르게, 선택은 똑 부러지게, 그리고 거절은 기분 상하지 않도록 능청스럽게! 착착 맞아 떨어지는 3박자에서는 확실한 느낌 오는 사람이 아닐 바엔 혼밥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네~ 보아하니 앞으로 반 년은 더 혼자 식사하실 운명일듯 해요~

 

 

선호와 취향이 확실하고 자기애 강한 세대가 사회로 진출했다. 직장인이 됐다. 아직 완벽하진 않다만 그리 아쉬울 것까진 없다는 그들에게 소개팅이 들어오고 그렇게 아쉽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호감이 있는 듯 또 없는 듯 둘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첫 눈에 반하기도 쉽지 않을 뿐 더러 반할 마음도 별로 없다. 상대가 좋은 분인 듯하지만 아직은 나도 그리 아쉬운 상황이 아니니까.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지만 나도 괜찮으니까. 방어적인 자세로 대화를 이어가다 이내 서로 흥미를 잃고 마는 두 사람.

 

직장인 연애의 시작은 조금 달라진 양상을 보인다. 외모에 끌려서 혹은 성격이 잘 맞는다는 이유로 교제를 결심하던 시절보다 좀 더 깐깐해졌다. 직장인인데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결혼 적령기에 가까워 감에 따라 현실적 고민도 늘어났다.

 

사진만 덥석 받고 소개받던 시절도 있었다만 성격, 나이, 학벌, 직장, 거주지, 집안까지 무례하지 않을 선에서 슬쩍 물어보기도 한다. 숙고 후에 나간 자리에서도 눈치껏 서로를 파악하려 하고. 나이가 나이인만큼 만나다 헤어지며 헛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보기 위해서란다. 엑셀 문서의 구분자 수식처럼 조건 값 걸린 만남에 질리다 못한 비혼주의자들도 늘고 있다. 가끔 외롭긴 하겠지만 강아지 키우며 살면 되니까.

 

꼭 맞는 상대가 원체 잘 안 보이다 보니 어쩌다 마음 가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망설여진다. 먼저 한 발짝 다가서기 조심스럽다. 이젠 정말 제대로 된 연애하고픈 바람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매번 괜찮은 사람을 놓치게 되고…

 

아쉽지 않은 남자는 따져 보는 만남이 싫기에 차라리 혼자 살겠단다. 아쉽지 않은 여자는 간 보는 만남이 싫어서 아무도 안 만나겠단다. 그렇게 아쉽지 않은 남자와 더 아쉽지 않은 여자가 만나고 의미 없는 두 시간 대화 중에 건조해진 입술보다 메말라진 마음으로 귀가길에 오른다. 만남과 관계라는 것에 별로 설레지 않게 된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