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입사원김사자 』

[신입사원김사자] Ep.105 태닝 완전 정복

친구들과 수영장으로 유명한 제주도 리조트에 다녀왔다. 다년 간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몸들을 앞세워 야외 수영장으로 입성한 우리는 소년으로 돌아가 물장구 쳤다. 한참을 첨벙거리다 중간중간 찍었던 사진을 확인하려고 연 핸드폰 사진첩에는 물 묻히고 웃는 흰둥이 세마리가 있었다. 딱 벌어진 가슴팍은 허여멀건한 그 색깔과 부조화스러웠고 팔뚝은 굵기를 떠나서 껍질 벗겨 놓은 참마를 연상케 했다.

 

가장 몸이 좋고 역시나 가장 하얀 친구가 사진을 보더니 물 밖으로 나갔다. 태닝 오일을 가져 오겠단다. 뽀얀 등판과 대조되는 검은색 모자를 꾹 눌러 쓰며 뱉은 말은 “얘들아, 우리 좀 태워야 할 것 같아…”

 

 

하얘서 슬픈 동물들의 태닝 욕심은 그때부터였다. 전문샵을 가야 하나 싶다가 인공광이 해롭단 이야기를 듣고 그냥 자연 태닝의 길을 가기로 했다. (어차피 자외선을 끌어안는 결과는 같지만) 일기예보를 예의주시하다가 주말이면 어디든 가서 드러누웠다. 리조트에서도 빠지에서도 도심 내 수영장에서도. 골고루 굽기 위해 15분 간격으로 뒤집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번거로움 대비 미미한 변화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조금씩 두드러져 가는 몸 윤곽을 보며 힘들 내면서.

 

 

 

 

그렇게 태닝에 목 매던 어느 주말엔 섬에 다녀왔다. 여수가 본가인 친구네에게는 배로 30분 거리의 섬에 별장 느낌의 집이 하나 있었다. 조용한 어촌에서 우리끼리 낚시와 프리다이빙을 즐기며 쉬다 오자는 매일의 일정 속엔 태닝 계획도 군데군데 들어가 있었다.

 

금오도로 들어가는 아침 배를 기다리던 부두엔 비가 추적댔고 날은 시원하다 못해 쌀쌀했다. 흐린 날씨에 태닝은 커녕 물 속에도 못 들어가는 건 아닐지 걱정하면서 반팔 티셔츠 위에 입을 바람막이 잠바를 꺼내려 가방을 뒤적거렸다.

흐리고 선선한 날씨는 낚시하기엔 알맞다는 친구 말에 섬에 도착하자마자 낚시 포인트로 갔다. 낚시대를 몇 번이나 던졌을까? 천국의 문이 열리듯 구름이 개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연한 자태를 드러낸 햇빛을 시작으로 날이 더워졌다. 외쳤다. “야, 벗어야겠다!”

 

우리는 티셔츠를 벗고 쨍쨍한 햇살 속에서 고기를 잡았다. 그렇게 방파제 위에 몇 분이나 서 있었을까? 옆에서 장대 낚시 하던 아저씨가 자리를 뜨며 한소리 하셨다. “지금 날씨에 그렇게 옷 다 벗고 있다가 후회할 텡게~ 조심덜 하더라고!” 예-예- 대충 대답하고 하던 일에 다시 집중했다. 몸도 태우고 고기도 잡고 이거 완전 일석이조라고 생각하면서.

 

낚시대를 들면 초보자조차 시간 관념이 모호해진다.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한 그 상태에 우리도 놓였다. 반신 나체로 30분에서 40분은 더 줄을 던지다 점심 먹으러 들어오라는 친구 부모님 연락을 받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까보다 그을린 듯한 피부가 제법 만족스러웠다. 낚시터를 비추던 햇볕을 등지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기분 탓인지 등어깨가 살짝 따끔했다.

 

 

오후가 되자 등이 본격적으로 따가워졌고 어깻죽지 언저리는 아프기까지 했다. 발갛다 못해 시뻘개진 벌개진 팔에 심각성을 느껴 친구에게 등 좀 봐달라 했더니 거의 참치 뱃살이라며 호들갑이다. (난 아파서 호들갑이었고) 만지기만 해도 열감이 느껴졌다. 이거 화상이다.

 

몸의 열을 식히고자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었다. 벌벌 떨면서도 살을 태운 시간만큼 들어가 있었다. 물이 증발하며 냉기가 사그라들자 다시 따가움이 몰려왔다. 우리는 좀 괜찮아졌냐며 서로 물었고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인다 답했다.

예민해진 피부를 보호하려 바디로션을 연신 펴 바르는 중 낮의 그 아저씨 말이 생각났다. ‘후회할 텡게~ 조심덜 하더라고!’ 강태공의 화신이 전해준 지혜로운 말씀을 우리는 귓등으로 들었고 결과는 매~콤했다.

 

나름의 판단이 가끔은 아집스러워질 때가 있다. 겪어보지 못한 상황 앞에선 더욱 그렇다. 설마 설마 하던 그 설마가 바로 내 설마가 되고 만다. 해가 떴고 몸을 태우면 그저 좋을 거란 명랑함 덕에 이 꼴(?) 난 우리처럼. 하지만 남 말은 쉽게 귀에 안 들어올 뿐더러, 슬쩍 건내진 조언이 딱 들어 맞는 정답이라는 걸 알아챌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태닝하려다가 화상 입고 돌아온 하루. 구릿빛 피부를 꿈꾸다 달아오른 구리 그 자체가 됐다. 그간 공들여 조금씩 태워 온 몸이 대책 없이 타 버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아저씨 말을 들었을 때 멈췄을 거라고 늦은 후회를 했다. 애초에 태닝샵을 갔어야 했다면서 더 늦은 후회도 했다.

 

약해진 피부가 이불에 쓸릴까 조심조심 침대에 누웠다. 탄 부위가 거칠거칠한 게 왠지 조만간 까질 것 같다. 피부가 벗겨져 나갈 때쯤 후회도 같이 떨어져 나가겠지. 태웠고 다 타 버렸다. 다른 의미로다가 태닝 완전 정복. 대체 뭔 짓한 걸까 싶었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겠구나 싶다. 처음엔 다 그런 걸거라고, 따가움을 참으며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