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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김사자 』

[신입사원김사자] Ep.94 드라마 보는 직장인

퇴근을 하고 친구들과 만났다. 기분이라도 낸다며 이태원에서 삼겹살로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가던 와중 그냥 헤어지기가 조금 아쉬워 삼각지에 내렸다. 이 근방에서 자취하던 대학 친구와 종종 들르던 동태탕 집이 이 근방이었으려나? 탕을 시켰고 소주도 한 병 주문했다. 빨간 국물이 보글대고 투명한 알콜이 쨘 소리를 낼 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매주 금요일 토요일 저녁 10시 50분이면 만나곤 하던 익숙한 사람들.

 

 "아, 오늘 드라마 봐야 하는데. 본방 사수 못했네~"

 "맞다 오늘 그거 하는 날이지? 나도 봐야 하는데. 낼 재방 고고."

 

채널을 돌리다 '실수로' 보게 된 드라마를 어느새 조금씩 챙겨보게 됐다. 평소와 같이 퇴근 후 씻고 글 쓰려 책상맡에 앉았는데 영 진척이 없던 날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분 전환을 하려고 TV를 켰고 홈쇼핑을 피해 피해 어느 채널에서 멈췄다. 왼쪽 상단에 제목과 함께 첫방송 글자가 달린 드라마를 선채로 잠시 보다 이내 앉았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십 수 시간 지난 내 하루보다 훨씬 다이나믹했던 40분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TV는 바보 상자에 드라마 보는 건 시간 낭비라는, 요즘 누가 들으면 놀랄/놀릴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께선 인기 드라마의 경우엔 첫 화 정도는 보는게 어떠냐셨다. 어딜가나 대화의 소재가 될텐데 굳이 이해 못해서 못 낄 필요가 있냐시면서.

 

'에이 괜찮아요~' 계속 대답하다 직장인이 됐다. 그리고 시간이 남는 듯하면서 절대 남지 않는 매일이 이어졌다. 아버지께서 왜 주말엔 늦게까지 주무신지 이해가 됐다. 퇴근 후에 갖는 얼마 안되는 자유시간 동안 뭐라도 하고 싶다. 자기계발 좋다지만 공부하긴 귀찮고, 책 읽으면 곧 졸리고, 퍼즐 맞추기나 그림 그리기 재밌지만 하루 이틀이고, 모임 참석은,, 체력이 남아 나냐?

 

그래서 방에 누워 드라마를 본다. 모든 취미 생활 중에 단연 편하고 여유롭다. 활성화된 스트리밍 서비스 덕에 재밌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차고 또 넘친다. 전세계의 컨텐츠가 침대 위 내 손가락 움직임에 재생되는 이곳은 멋진 신세계!

 

 

 

 

언젠가부터 드라마의 위상이 달라졌다. 주부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그들만의 전유물에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사회 분위기까지 흔드는 큰 손이 돼버렸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이 열 제조업 부럽지 않은 수익을 올리는 요즘, 드라마 안 보고 살아도 생활하고 업무하는 자체엔 아무 지장없지만 챙겨보면 일단 플러스 알파라는 점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일거다.

 

방송사에서 사기업에서까지 말 그대로 찍어내는 덕에 시청자들도 선택에 있어 깐깐해지게 됐다. 하도 여럿이다보니 볼 드라마를 고르다가 되려 시간을 다 쓰게 된단다. 그러니 개성이 뚜렷한 작품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무채색 회사원 일상에 덧댈만한 확실한 색깔을 갖춘 드라마에서 손은 멈춘다.

 

출근 후 맞은 점심시간엔 어제자 드라마 이야기가 오가고 퇴근 후 도착한 회식자리선 유행하는 대사가 흥을 돋운다. 드라마가 수다의 주제가 될 거란 어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회사 사람들끼리 깊은 이야기를 나누긴 서로 부담일테니 적정선의 친분을 유지하기 위한 가벼운 대화거리론 이런게 딱일듯 싶다.

 

사원증을 목에 걸자 인생에 흥밋거리나 여흥거리가 되려 줄어들었다. 그리곤 너무나 평탄하고 뻔한 하루를 살게 됐다. 나의 4년 뒤 모습은 옆에 있는 과장님, 10년 뒤는 그 앞 부장님일거다. 하기 나름이라지만, 퇴근 후 쓸 수 있는 몇 시간만으론 다가올 그 현실을 뒤집기 쉽지 않다.

 

다이나믹하게 전개되는 드라마 스토리는 평범함이 가득한 회사 생활기와는 사뭇 다르다. 실제 삶에서 하기 힘든 일을 주인공은 속 시원하게 해낸다. 권력과 부조리에 대한 소신있는 반발이라든지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도전이라든지. 생각도 못한 상상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작품도 있다.

 

 

감정을 갈무리할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어야 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마지막으로 속 시원히 소리 지르고 꺼이꺼이 울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회사에선 차갑고도 드라이한 김사원은 드라마 볼 땐 누구보다 감정에 충실해진다. 주인공의 슬픔에 눈물 훔치며 공감하고 악역의 비겁함에 잔뜩 분노하다보면, 이렇게 희로애락을 명확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는지 스스로 놀라곤 한다. 주변에 보는 눈도 없고 좋은 사람인 '척', 차분하거나 진중한 '척'도 할 필요 없다. 지금 느끼는 대로 그냥 내 감정이 충실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에 빠져들고 또 빠져들고 싶어하나 보다. 낮 동안 자의반 타의반 채워놓은 감정의 족쇄를 퇴근 후에라도 풀어주고 싶으니깐.

 

그래서 드라마에 공감을 한다. 비록 몸은 따를 수 없겠지만 마음만은 나도 등장인물이다. 못된 상사나 비겁한 상대역은 얼마전 회사 몇 층에서 마주친 누군가와 유사하다. 여주인공과 운명적으로 얽히는 과정은 말도 안된다 싶으면서도 은근 부럽다. '내 이야기' 같은 스토리와 '내 이야기였으면' 하는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이번주도 기다린다.

 

어쩌면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취미생활일수도 있겠다. 아무도 신경쓸 필요 없고 하는데 딱히 노력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회사에서와는 다르게 별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 또 재밌다. 가끔씩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나 대사가 영혼을 충만케 해주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래선지 편한 옷 입고 침대에 기대어 드라마 보는 주말 낮을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챙겨보던 드라마가 별 재미없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보통 최종화가 가까워올 때쯤일까나? 밑바닥에서부터 고군분투하던 주인공의 일상이 안정감을 찾게되며 지켜보는 사람들의 흥분도는 가라앉기 시작한다. 첫화에 비해 좋아진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함께 기뻐하긴 한다만 차분해진 갈등 관계만큼 스토리 전개도 평범해 뵌다.

여태 어디로 튈지 몰라 새롭던 캐릭터들이 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해졌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다음 화도 조금씩 예상가능해진다. 그래서 현실을 반영하되 너무 비슷하면 안되는, 보통의 기대와 자극선은 살짝 넘기는 드라마가 흥행하게 되나보다.

 

드라마 보지 않은 사람은 있더라도 한번 본 사람은 없댄다. 이번 주도 역시나 잘 챙겨봤다.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부터 일주일이 다시 시작된다. 다음화 예고편 그 몇 초까지 지나고 나면 출근이 바로 눈 앞에 있다. 회사 가는 현실은 피하고 싶지만 새로운 에피소드도 찾아올테니 이번주도 잘 버텨봐야겠다며 종료 버튼을 누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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