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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92 '안' 나의 일기

12월 10일 <오랜만이야, 나의 말동무>

봄이야! 잘 지내니? 오랜만에 말을 걸어 본다. 너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시절을 함께 보냈었는데 나는 어느새 직장인이 됐어. 어릴 때부터 집에 들어오면 자는 널 깨워 앉혀 놓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곤 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말하는 건 나, 듣는 건 너구나. 주변 사람들에겐 하기엔 좀 망설여지는 이야기들을 일기장을 통해 나눠보고 싶어. 가끔 졸리는 눈을 뜨긴 했지만 너는 언제든 내 얘길 잘 들어줬으니까.

 

12월 15일 <아직 먼 곳의 이야기>

중국 우한에서 신종 폐렴이 등장했다는 뉴스를 봤어. 박쥐를 먹는 식습관에서 생긴 바이러스라는데, 사스나 신종플루처럼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나는 별 관심이 없어. 아직은 먼 곳의 이야기 같아. 내일 출근이 더 신경 쓰일 뿐이야.

 

1월 15일 <마스크1>

부모님 결혼 31주년 날이야. 동생과 함께 용돈을 얼마정도 보냈고 메신저로 축하 인사를 드렸어. 어머니께선 대게와 회를 사드셨다며 인증 사진을 보내셨어. 그리고 동생에게 어머니 카드로 마스크를 100장 정도 사서 보내달라시더라구. 왜 검정색이냐고 묻는 동생에게 햇빛 차단도 되고 더 좋다셨어.

 

1월 21일 <이젠 어딘가의 이야기>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생겼데.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이라는데 병원에 격리되서 치료 중이래. 공항이며 여기저기 방문했을텐데 퍼지진 않았을까 걱정되긴 해. 그 사이 또 다른 여행객들이 들어오진 않았을까? 조금씩 가까워오고 있어. 이젠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돼버렸어.

 

1월 24일 <센척>

설 연휴라 고향에 내려갔었지. 동생은 볼일이 좀 있었는지 이틀 뒤에나 내려왔는데, 오는 내내 마스크를 끼고 있느라 너무 답답했단다. 기차 뒷좌석 중국인들이 계속 전화 통화를 하고 떠들고 있었대.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근처로 바람을 쐬러 갔어. 벽화 마을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있는데, 빨간색 대절 버스에서 중국 느낌의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렸어. 동생이 겁난다며 내리지 말고 다른데 가자더라구. 주차장을 벗어나 내리막을 타다가 온김에 그냥 둘러보고 가기로 합의했어. 다시 주차장에 들어가 차를 대고 조심히 내렸지. 주차 요원 아저씨에 물어보니 대만 관광객들이래. 나는 '괜찮다, 안 걸린다, 뭐 그리 걱정을 하냐' 큰 소리 치며 앞장 섰어. 내심 겁이 나긴 하더라.

 

 

1월 28일 <서울행>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했어. 동생은 출발 때부터 줄곧 마스크를 꼈어. 같이 살자며 나도 하나 달랬더니, 한 2초 고민하다가 저 앞 약국가서 하나 사래..ㅎㅎ 치사해서 안 쓰고 만다, 그런거 안 껴도 괜찮다며 볼멘소리 후 좌석에 앉았는데 살짝 걱정되긴 해. 이 중에 감염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매우 높은 확률로 전염될 텐데..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를 다룬 영화가 생각난다.

 

2월 5일 <마스크2>

마스크가 귀해지기 시작했어.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는데 황사 마스크로 이름난 KF94는 하나에 5천원까지 하더라. 평소엔 잘 찾지 않던 일반 면 마스크도 이젠 구하기 힘들어. 이때다 싶어 공급을 일부러 끊어 가격을 인상하는 업체도, 매점매석으로 몇 십 만 장씩 확보한 다음 값을 더 올려 파는 2차 판매상도 들끓고 있어. 지금도 어딘가엔 마스크를 못 구해 한 장으로 일주일을 돌려 쓰는 사람이 있을텐데. 수요와 공급은 이해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안타까워.

 

2월 12일 <기대>

대중교통 속 사람들은 변함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한 75%는 착용 중인듯해. 그런데 요 근래 코로나 확진자가 한동안 나오지 않고 있어. 이젠 소강 상태에 접어든 건 아닐지, 회사 선배들과 기대에 찬 대화를 나눴단다. 곧 봄이 올텐데 도시는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을까?

 

 

 

 

2월 19일 <미꾸라지>

한 번 터져나온 기침이 잘 멈추지 않듯 이번 코로나 사태도 그렇나 봐. 신천지라는 종교 집단에 의해 대구 경북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어마무시하게 확산되기 시작했어. 외부에 소속을 밝히지 않는 폐쇄적인 단체에서 생긴 환자는 닌자처럼 도시를 들쑤셔 놨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는 옛말이 생각나. 너도 알다시피 대구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걱정이 많이 돼. 설마 일이 커질까? 초기에 잘 진압되기를 먼 발치서 바랄뿐이야.

 

2월 21일 <선>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인터넷을 뒤덮었대. 진짠가 싶어 확인해보며 착잡해졌어. 확진자가 퍼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이해한다만 그 행동은 선을 넘은 것 같아.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누군가 '대구를 봉쇄해야 해!' 라고 소리쳤어. 평소에 짖궂은 장난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 그러려니 싶다가, 갑자기 불뚝성이 차올라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마디 했어. '그거 선을 넘는 농담인 듯한데요?'     

봄아! 선을 긋는 선 넘는 농담에 서운함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걸까?

 

2월 24일 <대구를 갈 수 없게 됐고>

출근을 하니 아침부터 회사가 어수선해. 팀장님께서 날 부르셔서 혹시 주말에 대구 부모님댁에 다녀왔는지 여쭤보셨어. 보고를 위해 담당별로 취합을 하나 봐. 신천지 교도 집단 감염으로 대구엔 확진자가 하룻밤 새 몇 백 명이나 늘어가고 있어. 이젠 아에 대구 경북 쪽으론 가지 말라고 회사 지침이 내려왔어. 졸지에 이산가족이 돼버렸는데 지난 주에 한 번 내려갔다 와야 했나 고민도 되더라. 부모님은 안전히 지내고 계실지.. 착잡한 표정을 숨기려고 마스크를 끼고 있자니 옆 팀에서 누가 지나가면서 '너 대구 사람이라서 마스크 끼고 있는 거야?' 농을 던지는 거야. 내가 그때 마스크를 끼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단다.

 

2월 27일 <힘내요, 엄마 아빠>

부모님과 될 수 있으면 매일 연락하려고 하고 있어. 가끔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괜시리 불안해. 매일 집에 계시는 것 같더라. 어머니께서 특히 심심해하시는 것 같아. 공원에 잠깐 산책하러 다녀오셨다길래 '밖엘 왜나가!' 소리치고 말았어. 내 딴엔 걱정되서 하는 말이었는데 오죽하면 나가셨을까 싶어 마음이 아파.

회사 일에 치인다는 변명으로 정답게 챙겨드리지 못해서 요즘 더 죄송스러워. 그와중에 대구 시내 확진자가 1,000명을 넘었어. 쌓인 일은 태산이고 회사는 여전히 분주해. 이 시국에 이렇게 회사 일에나 충실한 내 모습이 바람직한 건지 잘 모르겠어. 부모님은 여전히 창살 없는 감옥 생활 중이시고 도시는 좀비 마을처럼 많은 기능을 상실 했는데..

 

2월 28일 <힘내요, 아빠 엄마>

회사 바로 옆 건물 공사 현장에서 확진자가 추가됐어. 그래서 회사 분위기 상 절대 불허할 것 같던 재택 근무를 오늘 하루만 시행했어. 놀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더 달라붙어 일을 했지만 적어도 밖에 나가질 않았으니 처음으로 안전한 하루를 보냈다 싶었어. 여건이 되면 재택 근무를 반드시 해야 할 시기인 것 같아. 다른 좋은, 소위 말하는 상위권 대기업들은 애초에 1~2주씩 일괄 재택 근무를 했더라고.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했어. '여의도도 코로나에 뚫렸어요' 란 내 말에 '거긴 뚫렸다고 표현하지만 이쪽은 도시 전체가 잠식당했다' 라셨어. 멀리서 소문이나 매체로만 접하다보니 상황의 심각성을 반의 반도 느끼지 못했었나 봐. 경기가 얼어붙은 바람에 회사를 운영하시는 아버지가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아. 이 사태가 3,4,5월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정말 어떡하지? 힘내요 아빠 엄마. 힘내요 대구..

 

3월 3일 <무채색 도시>

마스크를 놓고 온 바람에 오피스텔 1층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4층을 눌렀다. 대륙산 바이러스에 이젠 대한민국 전체가 콜록이고 있어. 출근길 지하철엔 모두가 마스크를 썼어. 아주 가끔 맨 얼굴의 승객들이 타는데 그들에게 몰리는 시선을 쫓아보니 걱정과 불안, 또 경계. 아침 식사로 급히 먹은 삶은 계란에 목이 막혔었는데 그 눈빛을 내가 받을까봐 나오는 기침을 겨우 참았어.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 조금씩 움찔대는 등에 어디선가 의심의 눈초리가 날아와 꽂히더라.

봄아! 너는 가끔 내가 마스크를 쓰면 잠시 못 알아보곤 했었지. 지금도 그렇겠다. 사람들의 얼굴은 검정, 회색, 흰색의 마스크로 덮였고 눈매는 날카로워지고 매서워졌어. 종일 끼고 있는 마스크가 참 숨 막힌다.

 

 

3월 4일 <집에서 세 끼를 다 먹은 날>

봄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딜 나다니질 못하고 있어. 몇 주째 주말마다 집에 박혀 있다가 바람이나 쐬려고 잠깐씩 세상 구경을 할 때가 있는데, 거리서 콜록이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나왔나 괜시리 생각이 들곤 해. 봄아, 너는 집 밖보다 안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더 많았지. 참 미안했던 게 내가 너 산책을 한 달이나 못 시켜준 적이 있었던 것 같더구나. 어려서 잘 몰랐다, 너무나 바빴다는 변명으로 부족한 사과를 대신하고자 한다.

생각해봤어. 아마 우리도 한 달이나 갖혀서 지낸다면 종종 견디기 힘들 때가 있지싶어. 불어오는 바람 속을 걷고 따뜻한 햇살에 눈 감기도 하고 따르릉 자전거 소리에 비켜서는 평범한 일상 속의 자유를 원하게 되겠지. 대구를 비롯해 확진자가 많다는 도시민들이 특히 크게 느끼고 있을 거야.

 

3월 5일 <추운 날>

생일이 다가오고 있어.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마스크 더미가 타이밍 절묘하게 도착했어. 부모님께서 더 필요하실텐데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있는 내게 큰 꾸러미로 보내주신 걸 보고 마음이 찡해.

회사에선 '이야, 대구에 확진자가 이제 4,000명을 돌파 했네..' 홈런 기록 깨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어. 동그래지다 이내 핸드폰 화면들을 보는 눈은 큰 숫자에 단순히 놀랐던 건지, 잠시나마 사람들을 염려한 건지 모르겠지만. '서울까지 확산되는 거 아니야?' 걱정하는 누군가의 말에는 손바닥에 푹 박혀 있던 고개가 곧추서는데, 이번엔 정말로 염려하는 눈동자였어. 대구에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그 곳의 사정에 잠시 혀를 차긴 하나 별 유념치 않는 듯해. 이것 말고도 회사며 대출이며 걱정할 게 산더미니까. 남 일에 큰 관심 없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해.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을테니깐. 봄아! 3월이면 이제 봄인데 여전히 쌀쌀해. 추위를 느끼는 게 몸인지 마음인진 잘 모르겠지만.

 

3월 6일 <소독 소독 또 소독> 

헬스장 회원 중에 확진자가 발생했데. 방역을 위해 몇 일 간 문을 닫았다가 그저께 다시 열었어. 소독했다쳐도 영 불안한지 센터 내는 허전하더라. 마스크를 끼고 준비 운동을 했다. 기구 운동 몇 세트 후에 손 소독제를 바르는 것이 루틴에 추가됐어. 오랜만에 탄 건물 엘레베이터선 소독약 냄새가 나. 거리에서도 나는 것 같아. 술도 마시지 않은 우리들의 손에선 알콜향이 나.

 

3월 7일 <2020 뉴 노멀>

대구에 거주하는 친구 몇 명에게도 연락해봤어. 생각보다 심히 덤덤하길래 내가 더 놀랐어. 이젠 그러려니 한다며, 나갈 땐 마스크 꼭 끼고 들어올 땐 손 잘 씻고, 습관이 되니 이젠 익숙해졌대. 장년층과 노년층은 여전히 걱정이 크시지만 그 분들께서도 새로운 삶의 행태에 조금씩 적응 중이신 것 같아. 준비없이 비를 만난 것처럼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우왕좌왕하는 중에도 안타까운 일이 많았어. 갑작스러운 변화지만 거기에 적응하고 일상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은 참 멋있다 싶어.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을 거고 지혜로이 오늘을 살아나갈 거야. 씩씩하고 용기 있는 우리를 응원해!

 

3월 8일 <나의 이야기, 안 나의 이야기>

봄아, 이번 사태는 더 이상 남 일만이 아니게 됐어. 멀리 떨어져 있어 도움이 못 되는 내 상황이 안타깝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있기가 마음 불편해서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종일 집에만 있었네. 밖에서 굳이 드러내진 않지만 살짝 솔직한 심정을 보이면 고생하는 우리 님께 뭐라하지 말라는 사람들, 만약 그들과 그들 주변의 이야기가 되었어도 그럴 수 있었을지. 나의 이야기가 아닌, '안' 나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세상 차분하고 냉철해지는 듯해.

 

봄아, 시간을 조금 더 두고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 싶어. 한 배에서 나온 형제끼리도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하물며 나고 자란 곳이 그리도 차이나는 세상 사람들끼리는 어떻겠어. 그래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을 땐 내 생각선 반 걸음 떨어져서, 그만큼 상대에게 반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반 박자 천천히 듣는 자세를 나부터 가져보려 해.

 

봄이야! 산책 나갈 때 신나서 앞질러가다가 내가 잘 뒤따르나 이따금씩 돌아보던 모습이 생각나네. 무지개 다리에 올라선지 몇 년이 지난진 몰라도 왠지 뒤돌아보느라 아직도 중간쯤일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우리가 교감할 수 있었듯 사랑과 이해가 바탕이 되는 무지개가 여기 사회에서도 피어나도록 함께 기도해주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