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을 넘기다 재미난 걸 보게됐다.
짧은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는,
'청년들, 반드시 집을 사야 하는가?'
영상에서 소개된 이삼십대의 답은 단호한 'No!'
월세 인구 최고치 기록을 날마다 갱신하는 요즘, 집을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기보단 원룸에 살더라도 타고 싶은 자동차 구매를 선호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단다. 그중 외제차도 상당 비중을 차지한댔고. 이삼십대가 원룸에 살면서도 외제차를 구매하는 이유에 대해 출연진들은 이렇게 추측하더라.
① 과시욕으로 자기 위안하기 위한 수단
② 집을 사줄 배우자를 구하기 위한 수단
장기적 관점에서 돈을 모으기보다는 폼생폼사 정신으로 단기적으로 연명하는 청춘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집 구매는 너무 험난한 여정이고 길이 딱히 보이지도 않으니 한도 내에서 뭐라도 사서 과시하기 위한게 바로 자동차일거란다. 좋은 차를 앞세워 능력을 갖춘 이성의 호감을 얻으려는 의도도 있을 거라며 깔깔대기도 했고.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가벼운 분위기에서 거론되고 있었다.
40대 이상의 패널들이 조카 세대들의 심중을 넘겨짚는 결론을 내리며 마무리됐다. 정작 이삼십대 출연진은 보이지 않았다. 출근해서 친구에게 영상을 보여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나 자기네들다운 생각이군."
그 세대에겐 모든 선택이 뭔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느냐고 이쪽에서도 넘겨짚는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전세 1억 3천 남짓의 오피스텔. 이삼십대가 주거민의 대부분인 이곳 주차장엔 '음마, 차 보소, 성공한겨?' 소리들을 자가용이 여럿이다. 옆 원룸 앞엔 삼각별 달린 고급 세단이 세워져 있다. 회사 인근 원룸촌을 걷다보면 더 작은 평수 건물 주변에 더 비싼 자동차가 주차된 재미난 현상이 보인다.
2016년에 시작한 회사생활이 어느덧 4년을 꽉 채우려 한다. 연초 동기들과의 모임에선 누가 벌써 얼마를 모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연봉의 반은 저축해야 가능한 금액. 그치만 연봉 상승을 고려하고도 서울시내 32평 아파트 평균 시세 기준으로 30년은 더 모아야 한다. 누가 무슨 차를 샀단 말도 나왔다. 큰 맘 먹고 나도 외제차 한번 질러볼까 자극이나마 되는데 비해 내 집 장만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걸 보면 거긴 더 큰 맘 먹어도 닿을 수 없는 '어나더 레벨' 인가보다.
일상의 키워드 의/식/주. 그중 주(住)를 가장 주(主)로 여기는 기성세대와 'You Only Live Once!' 를 소리치는 이삼십대 욜로(YOLO)들의 생각 차이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개미가 열심히 먹이를 나르며 일하는 동안 베짱이는 노래 부르며 신나게 논다. 개미 눈에 베짱이는 미래 준비는 않은 채 놀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걱정스러우면서 한심하게 보이는 존재다. 베짱이 눈에 개미는 즐길줄 모르고 팍팍한 삶을 아등바등 살아만가는, 불쌍하면서 어리석어 보이는 존재다.
90년 초에 읽었던 우화의 끝은 즐기다 추위에 떨게된 베짱이와 착실하게 대비한 개미의 모습이 대조되며 마무리됐고, 나도 개미처럼 살겠노라 다짐하며 유치원으로 향했던 것같다. 베짱이의 삶을 살다간 후회할 거란 교훈을 얻던 그때는 바야흐로 근면성실이 미덕이던, 내 집 마련 꿈을 지금보단 조금은 더 품어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을 거라 감히 말해본다.
대학생이 된 2010년도엔 각색된 버전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만났다. 땀 흘리며 쉬지 않고 일만 한 개미는 결국 작은 집이나마 얻고 매끼를 챙겨먹을 수 있는 삶을 영위하는데 성공한다. 여기까진 유치원 가방을 매고 읽던 그 부분과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베짱이도 성공한다. 그냥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 대박을 친다. 줄곧 불러재끼던 노래를 음원으로 출시해 저작권료를 받고 다른 풀숲에서 콘서트도 한다. 칼바람 부는 날씨에도 걱정 없다. 윤이 나는 커다란 풀잎으로 장식된 집에서 생활하게 됐으니. 자취방 월세마저 자꾸만 올라가던 그 시기, 맨큐의 경제학을 등에 맨채 이번에도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다.
시대에 따라 중시되는 가치가 달라진다. 철벽과도 같던 기존 관념 사이로 새로운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추운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 나머지 계절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철의 행복을 위해 아홉달을 불행해야하나 싶은 누군가도 있다. 행복에는 여러 결이 있을거고 어느 쪽에 쏠릴진 각자의 시점과 관점에 달렸겠지.
"집도 없는 놈이 외제차 타고 다닌다며 혀를 쯧쯧 차시는데 이거 언제가 되든 내가 벌어 내가 갚을 내 차에요. 그리고 말이 외제차지, S클래스니 7시리즈니 그런 비싼 라인은 아예 생각도 안해요. 나름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한 소비라구요."
"차는 탈수록 감가상각이 되지만 집은 살수록 값어치가 오른다구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3년? 10년?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확실한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런지 잘 모르겠네요."
집 소유에 유난히 관심도가 높은 사회라는 생각도 종종 든다. 그런 윗세대를 보며 자라나 어느덧 내 집 마련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당도하니 이론과 현실의 괴리에 당황하게 되는거고. 산술적 계산으론 20년을 벌어도 적당한 집 한 채 사기가 힘들다. 여기서부턴 선택의 문제가 된다. 원룸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다 멋진 차가 있으면 더 행복할 거라면, 집 장만이 1순위라는 재테크 사고를 굳이 따라야 하나 싶다.
경제력에 비해 비싼 차를 끌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카푸어(Car-Poor)'. 한쪽의 잣대에서만 평가하는 삐딱한 시선같아 조금 불편한 단어다. 역으로 대출을 잔뜩 끼더라도 외곽의 조그만 아파트를 매매했다고 친다면? '카푸어'들에 혀를 차던 어르신은 '생각있는 젊은이'라며 대견해하실 것 같다. 자신이 가진 경제력에 비해 비싼 집을 산 격인데, 그럼 이 경우의 그는 '하우스 푸어' 아닌가?
"원룸에 살지만 벤츠를 몹니다.
혹시 앞으로의 삶이 걱정되진 않냐구요? 아뇨, 전혀.
지금에 만족하냐구요? 네, 매우.
전 지금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겠어요."
반지하 단칸방에서라도 행복하다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젊은이들 어차피 집에 잘 안 있다고, 넓고 예쁜 카페에서 충분히 잘 즐길 수 있는데 굳이 빚져가며 공간을 사야 하는 거냐며, 새로 뽑았다는 차에 오르는 친구의 함박웃음에 다시 한번 수긍하게 된다. 그는 적어도 행복한 벤츠남이니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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