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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88 오르는 것과 오르지 않는 것

중학생이었던 적 부모님께서 즐겨 드시던 돼지국밥집이 있었다. 특히 어머니께서 좋아하셔서 자가용으로 15분은 걸리는 애매한 거리였음에도 한 달에 한 두 번은 함께 가곤 했었다. 오르막 많은 동네 중턱에 도착해 양철 문을 밀고 들어서면 테이블 여섯개가 놓인 작은 식당이 보인다. 건물 연식만큼 오래된 무쇠 솥이 인상적이었던 그 곳은 20년 동안 꺼지지 않고 끓었다는 깊은 맛의 육수가 일품이었다.

 

틈만 나면 가격을 올린 다른 음식점에 비해 월드컵을 두 차례나 지내면서도 한그릇 6천원이던 가격과 맛까지 유지하는 인심에 감탄하며 떠먹곤 했던 우리. 여느 날과 같이 식당을 방문한 우리 눈에 종이가 덧대어진 가격표가 들어왔다. 돼지국밥 1인분 7천원. 재료 가격 인상으로 부득이 올릴 수밖에 없었단다. 여태 안 올렸으니 좀 올려도 괜찮다는 마음 뒤엔 이곳도 가격 인상 루프에 올라탔다는 서운함도 내심 있긴했다. 

 

 

몇 달 뒤 다시 찾은 국밥집 메뉴판에 적힌 돼지국밥 가격은 6천원. 분명히 천원 올랐었는데? 돼지고기 가격이 다시 떨어져 가격도 원상복구시켰단다. 올라간 가격이 더 올라가는 건 본 적있어도 다시 떨어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러고보니 당시 가격표에 위에 붙은 종이 옆엔 더 큰 종이가 붙어있었던 것 같다. 가격 인상의 사유라기보단 사과문에 가까웠던 글은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면 국밥 값을 다시 내리겠읍니다. 죄송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허허 웃으시는 사장님에게서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동안 한결같이 끓어온 솥이 겹쳐보였다. 국밥, 양파절임, 깍두기로 구성된 단출한 밥상. 그 속에 깊게 배인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은 진한 국물만큼이나 그윽하다. 원가 절감과 비용 감소를 이유로 혀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몇몇 가게와는 사뭇 달랐다. 합리적인 뚝심에다 맛까지 갖춘 그 곳은 다시 찾지 않을 수가 없는 집이었다. 

 

 

 

 

연말정산의 달이 돌아왔다. 원천징수명세서엔 지난 1년 간의 벌이가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직전 해에 비해 아주 살짝 늘어난 느낌의 소득을 보며 연초에 봤던 연봉통지서를 기억해냈다. 매년 첫번째 달의 이슈가 연말정산이라면 3월엔 연봉을 확인하느라 정신없는 회사원들. SNS에는 우리 회사는 연봉이 몇 프로가 인상됐네, 우리는 올해 동결이네 시끌벅적하다.

 

작년 연봉은 ○○○원이 올랐었다. 월 단위로 쪼개면 ○○원 정도. 서울서 부산 가서 회 한접시하고 오기에도 빠듯한 액수인걸보면 이거 물가 상승률은 제대로 반영한 건지 모르겠다.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하라실 때 말 좀 들을걸 싶기도 하고.. 연봉만큼 몇 년째 그대로인듯한 은행 저축액 자릿수는 언제나 미스테리다. 저기 남산이 보이는 걸 보면 예금에 수수료가 붙는 스위스는 아닌데..

 

회사원의 하루 식대는 평균 7~8천원이다. 구내식당 일품요리 세트에 탄산음료 한 잔 구매 가능한 금액. 오므라이스와 된장국에, 감자튀김 네개, 깍두기 다섯 조각으로 구성된 식사는 성인 남성을 배불리기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추가 반찬을 한 두 개 더 집다보면 계산대 금액은 단숨에 올라간다. 돈가스나 김치볶음밥이 나올 땐 응당 아는 맛이려니 싶지만 이내 새로움을 맛본다. 튀김옷이 눅눅하다거나 소스 간이 안 맞더다던가. 신기하게 같은 메뉴를 외부 음식점에서 주문하면 기억 속 맛있는 그 맛이 난다.

 

일주일의 절반 정도는 외식을 한다. 점심 먹는다는 명목 하에 사무실을 나서 콧바람이라도 좀 쐬어줘야 자발적 근로자란 걸 잊지 않을 수있으니깐. 여의도 끝자락에 위치한 회사는 아파트 단지와 횡단보도 하나 거리다. 출근을 하는건지 할아버지 뵈러 온건지 헷갈려하다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몰리는 IFC몰에 들어설 때야 나도 그들 중 하나였음을 기억해낸다.

 

그와중에 음식 가격이 많이 올랐다. 회사 근처 식당들은 특히나 고점에 다다랐다. 회사에서 받는 점심 값으로 주문할 수 있는 요리를 찾으려면 메뉴판을 한참은 봐야 한다. 기본 메뉴인 김치찌개 백반도 예산을 초과하는 수준이니 좀 더 그럴듯한 밥상을 받으려면 받는 식대에 개인돈을 좀 얹어야 한다. 받는 월급 수준으론 구내식당서 끼니를 해결하는게 맞긴 한데.. 비싼 요리가 언제나 더 맛난 걸 보면 역시 자본주의 사회다. 맛집은 대기하는 줄도 길다. 순댓국 한그릇을 먹기 위해 피같은 점심시간을 몽땅 투자할 때나 카페에서 주문번호 50번대를 받으면 식당 사장님들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세상엔 오르는 것과 오르지 않는 것이 비교적 명확하다. 합리적인듯 비합리적인듯한 또 공평한듯 공평치 않아보이는 그 대상들은 수많은 직장인들을 웃고 울게 한다. 밥 값이 오르고 기름값도 오르고(내릴 때도 있지만) 집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역시 떨어질 때도 있지만 오르는 폭에 비하면 애교 수준). 그리고 물가 상승률에 근근히 맞춰지는 우리의 품삯도 있고.

 

새해 들어선 햄버거며 짜장면이며 여러 음식의 가격이 올랐다. 원재료 및 인건비 상승이 인상의 요인이란다. 화난 소비자들의 댓글이 기사들을 메우는 와중에 '값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치고, 그럼 품질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 는 코멘트가 보였다. 매출 원가율이 낮아졌음에도 가격 인상하는 신통방통한 논리에 대고 한 대 올려붙이는 느낌!

 

 

밥 값이 오르는 속도와 연봉이 오르는 속도를 비교해본다. 회사마다 격차는 있겠지만 확실히 월급은 천천히도 또 조금씩 오른다. 하루 받는 일당에서 세 끼 먹는 값을 제하면 정작 손에 들어오는 돈이 얼마되지 않는다. 부쩍 가격이 오른 배달음식엔 배달료가 추가됐고 도착한 치킨세트에는 콜라가 별도 구매란다. 돈도 아깝고 건강도 나빠지는 듯해 시켜 먹는 빈도를 줄이자 결심하면서도 퇴근 후 지친 손은 또 배달앱을 누르고 있다.

 

비교가 되겠냐만은 이번엔 집 값과 연봉을 나란히 줄 세워본다. 표준임대차계약서를 (반강제로) 작성한 후 오른 월세의 폭은 연봉 인상율보다 안정적인데다 높기까지 하다. 부동산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데 그 싼 가격마저 당장 지불할 수가 없어 목돈 마련부터 알음알음. 어느 정도 모았다싶으면 집 값은 다시 손 닿지 않는 위치로 올라가버렸으니 내 집 마련의 꿈은 그 시세만큼 높은 곳에 있다. 

 

수익성, 수익성, 귀 아프게 들으면서도 회사원으로서의 얻는 수익은 어느 정도일지 생각해본적 있나 모르겠다. 이따금씩 인터넷엔 회사별 직급별로 매겨진 급여 순위 이미지가 돈다. 노고에 대한 정당한 대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기업도 있는가하면 직원과 임원 사이, 혹은 경영층과의 임금 상승률 격차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곳도 많다. 누군가에겐 불편한 이야기겠지만 좀 불편해 하라고.

 

건강보험료 인상 뉴스를 보며 차라리 좀 아파야 하나 싶은 엄한 마음까지 든다며 낄낄대는 친구들이다. 세금 인상의 이유는 있겠거니와 일에 치이는 직장인들은 확인할 시간이며 여력도 없으니 이것 또한 그들만의 결정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닌가 싶다. 부지불식간 졸졸 새는 돈.

안그래도 외소한데 알 수 없는 각종 세금에게까지 쥐어 터지다 오는 월급. 정부 부서에 있는 친구는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럭을 왜 자꾸만 갈아 엎는지 모르겠단다. 오르는 것과 오르지 않는 것. 시소의 한 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 쪽은 올라가듯, 누군가 돈을 잃으면 누군가는 번다는 만고의 진리.

 

연말정산 공제를 한톨이라도 더 챙기려 각종 서류 떼는 귀찮음을 감수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월급 빼고 모든게 오르는 와중에 세금 환급액이라도 올려야 할테니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