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흔히 하는 놀이 중에 '이미지 게임' 이라는 게 있다.
'가장 ~ 할 것 같은' 사람을 동시에 가리켜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이가 벌주를 마시는 단순한 게임이다. 대학교 새내기 새로 배움터나 신입사원 동기 모임과 같이 최대한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했을 때 가장 솔직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데, 언제나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가 속출한다. 결백을 주장하는 느낌표의 갯수와 웃음의 크기 중에 뭘 우선시 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그저 서로의 첫인상과 이미지가 풍기는 느낌을 따랐을 뿐이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첫만남에서 호감을 결정하는 시간은 단 몇 초란다. 진득하게 오래 봐야 제대로 안다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생김새와 성격과 같은 외적 요소가 초기엔 크리티컬 하다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감정적인데다 본인의 내린 판단에 확신을 많이 가지므로 첫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열의 다섯 정도로 이미지 게임의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된다.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 어느 챕터의 제목이기도 했던 이 문장을 직독직해하자면, '하지 마라, 판단, 책, 따라서, 표지'. 그 와중에 참고서조차 내용보단 디자인을 먼저 확인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일거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산다는 속담도 있으니깐.
신동엽 시인처럼 '껍데기는 가라~' 말하고 싶지만, 어떡하랴? 우리 눈은 공항검색대가 아니라 껍데기부터 먼저 보이는 걸. 그래도 이미지 게임의 피해자 모임 멤버로서 살짝 손 들어 본다. 발음 신경쓰지 말고 씩씩하게만 외쳐!
돈저지어북바이이츠커버!
작년 말 본부를 이동하면서 2년 반만에 본부와 팀을 옮기게 됐다.
기존 팀장님께선 첫인상이 고정시키는 이미지가 거의 다라며 새로운 팀에서 ○○ 하게 보일 수 있도록 생활하라며 신신당부 하셨었다. 일주일 뒤, 나는 이동 대상자 교육에 참여했고 새 조직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구? 전 팀장님이 말씀하신 ○○ 일까, ▲▲ 일까, 아니면 ☆★ 일까? 나도 궁금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게 보통 이런 말을 한다.
"영업 체질인거 아니세요?? 되게 잘할 것 같은데."
나를 몇 년간 알아온 친구들은 이런다.
"너 영업 안 맞잖아.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면서.."
돈저지어북바이이츠커버의 전형적인 예랄까? 초기 관계 형성에 집중하는 내 스타일은 성격 전반에 있어 오해의 소지?를 남길 때가 잦다. 잘 웃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바탕으로 첫만남에서도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지만 사실 여기에는 이유 있는 노력이 담겼으니, 처음 보는 사람들과는 빨리 친해지는게 여러모로 유리하니까. 익숙해졌다 싶은 시점부터는 참여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낯을 꽤 가리는 편이니깐. 혼자가 더 편하니깐. 여럿이 함께 있는 자체가 솔직히 피곤하다. 그래서 업무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영업 직군은 언제나 퇴사 고민의 시발점이었다. 여전히 회사 안 밖으로 '처음 마주친' 사람들은 내가 슈퍼 외향적인지 알지만..
간접 요소로 누군가를 판단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쓴 글을 먼저 읽고 나서야 만나게 되며 조금은 당황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 나이대가 있는지 알았는데 어리다라거나, 정적이고 무게감 있을 법한 이미지를 예상했더니 개구쟁이 소년스럽다는 말과 함께.
반대로 알고 지낸지는 꽤 됐지만 이제야 내 글을 읽은 친구들 중에서도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었는데, 앞으로 우리 직접 만나지는 말고 그냥 글 링크만 보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ㅎㅎ
처음 제공된 정보가 기준점이 되어 인식의 닻을 굳게 내려버리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로 인해 첫만남의 표정과 몸짓을 보며 최종 같은 1차 판단을 내린다. 엄해 보인다, 너그러워 보인다 등 굉장히 즉각적인 생각의 형성을 느끼며 이번엔 입사 면접장의 반대편에 앉아 봤다. 그들에 대한 합격과 탈락권은 내겐 없긴 했지만.
두 번째 만남이 세 번, 네 번으로 넘어가면서 첫인상은 종종 뒤집힌다. 무서워 보였던 팀 선배가 가장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되기도 했으며 내게 관심조차 있을까 싶었던 분껜 인생 조언을 듣기도 했고.
재밌는 점은 내렸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그 자체로 인정할 때가 있는가 하면 사실은 그들의 진면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따금씩 객관적인 시각으로 꽤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편이라고 스스로 믿는 경향을 보인다. '오! 네 말이 맞았구나!' 하는 말에 대해 '운이 좋죠~ 많이 부족합니다' 대답하지만, 속으론 '그럼 그렇지..' 살포시 내 눈썰미를 인정하게 되는 그런 순간처럼. 확률상 열의 다섯은 예상은 적중하게 되므로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내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딱 보면 소주 세 병 이상 묻고 따블로 가는 주당이고만~'
'놀러 다니는 거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말 없고 차분할 것 같으세요~'
'너, 사실 술 잘 안 먹구나??'
'보기보다 집돌이였단 말이지..'
'조용할지 알았는데 완전 또라이였네ㅋ 개 웃곀ㅋㅋ'
'사실 나는 걔 술 안 좋아할 것 같더라. 딱 봤을 때부터 술꾼 스웩이 없더라고~'
'처음부터 왠지 모르게 잘 나다닐 것 같진 않겠다는 느낌이 오더라'
'첫만남에서 눈빛이 아주 그냥 미친놈이더만? 언제 본성 드러날까 했다ㅋ'
발랄한 아우라의 그는 동시에 일정 시간은 반드시 혼자서 보내야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과묵해 보이던 내 동기는 사실 미스터 빅 마우스였고, 새로 팀에 오신 선임님의 큰 키와 진지한 이미지 속엔 다정다감한 동네 형이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파악이 어려운 사람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조금 멀찍이서 오래 관찰하고자 한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담금주와 같아 일정 시간이 지나야 맛이 좋을 테니깐.
첫인상의 늪이 생각보다 질퍽이고 겉모습의 수렁이 의외로 깊긴 하다만 제대로 보려면 기어코 기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결국에 한번 빠지게 될 함정들이라면 일찍 걸려 보는 게 차라리 나을거다. 섵부른 판단으로 힘들어 본 적이 있다면 앞으로의 만남에선 조금 더 자세히 또 진득하게 보려 하겠지.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의 어느 시구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두 낫 저지 어 북 바이 이츠 커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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