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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79 낭만적 간식과 그 후의 뱃살

   부스럭- 부스럭- 

   부시럭- 부시럭-

   찌익 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 .

 이 소리는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김씨가

 사무실에서 과자 봉지 뜯는 소리입니다.

 


 

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까까라면 사족을 못 쓰던 코흘리개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적게 먹는 편이었는데. 아마도 불량 식품이라면서 집에 거의 사두지 않으셨던 부모님 영향도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교복을 입으면선 본격적으로 과자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과자를 다시 마주한 건 신입사원 3주 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이 바짝 잡힌 상태로 말도 거의 않고 어설프게나마 일만 하던 나를 건너편 선배가 툭툭 쳤다. 우리는 편의점으로 가 과자 코너에 섰다. 너도 뭐 하나 고르라길래, 선배를 따라 작은 초콜릿을 하나 집었다. 군것질 류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그냥 눈치껏 했다.

 

 

농촌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선 밭 일 중에 새참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은 고된 농사일을 기꺼이 해내게 만드는 나름의 활력소란다. "새참 이요!" 한마디에 어르신들은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종일 등지고 있던 햇볕을 비로소 마주 한다. 이마 위의 고됨이 웃음과 더해져 보람으로 승화 될 때, 흙과 땀과 새참이 만드는 낭만이 완성된다.

 

빌딩 숲으로 고개를 돌리면 도시 속의 새참 풍경이 보인다. 몇 시간 째 꿈쩍 않고 모니터와 하나 되던 회사원들은 이윽고 과자나 빵 봉지를 뜯어 나눠 먹기 시작한다. 업무로 인해 헝클어진 머리를 슥슥 다듬고 휘핑 크림을 잔뜩 얹은 라떼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직장인들의 미소는 참 밝다.

 

하지만 이 낭만적 간식 이후의 뱃살을 우린 미처 알지 못했다.

 

 

 

 

매일 오후 두 세시 경이 되면 시작되는 루틴이 있다.

모니터에서 눈을 뗀 후 → 고개를 돌려 → 오른쪽 서랍 문을 연다 → 손을 넣어 잡히는 놈을 꺼낸다 (보고 맘에 안들면 다시 한번 더..) → 손아귀 속 녀석은 계속 부시럭대며 소리를 내고 → 얘가 펄떡이는지 내 손이 그런진 모르겠지만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면 → 맛있다♥

 

회사의 요즘은 매일이 할로윈 데이다. "Trick or Treat!" 을 외치지 않아도 건너편에서 젤리가 날아오고 앞자리서 쿠키가, 옆자리에선 과자 봉지가 건네진다. 오전에 먹은 초콜릿 비닐이 눈 앞에 보여 책상 안 쪽으로 쓱 밀어 넣었다. 눈치 볼 필요 없어, 간식 배는 오전 오후 따로 있는 거니깐.

 

학생 땐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보냈다. 한 켠엔 어머니께서 놓아 주신 과일이나 떡이 늘 있던 것으로 기억난다. 머리 쓰는 일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시며 계속 앉아만 있더라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덕분에 하루에 다섯 끼 남짓은 먹은 것 같은데, 당시 체중이 10kg 은 늘었으니 나는 필히 졸기만 했을 거다.

 

비슷하게 회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자면 배가 고파온다. 업무 중에 손과 눈은 부단히 움직이지만 입은 다물어진 상태로 할 일이 없으니 참 심심할 거다. 어디 한 부분 소중하지 않은 게 없으니 입도 움직이게 해줘야 공평하다.

 

본격적으로 간식을 먹어 댄지 10개월 째, 옆구리에 살이 붙었다. 일주일에 두 세번은 헬스장에 가지만서도 뱃살이 잡히는 건 회사원의 숙명인건가? 반 년 전에 이미 턱이 두 개가 된 옆 팀 선배는 그 두번째 턱의 부피가 본래 턱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머리 쓰는 일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할 테니깐. 이런저런 골머리 썩히는 업무가 칼로리를 알아서 태워줄 테니까^^

 

'당 떨어진다' 는 표현은 유독 일할 때나 공부할 때 입에 붙는다. 피곤해지고 힘이 떨어져 혈액 속의 포도당 수치가 줄어든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집에서 쉬거나 노는 순간에는 절대 뱉지 않는 말인데 말이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혹은 마지 못해 하면 몸이 먼저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모자란 당을 충전하기 위해 카페로 편의점으로 향한다. 껌을 꽉꽉 씹으면 화가 풀리고, 달달한 라떼 한 입으로 금새 기분 좋아지기도, 매운 떡볶이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하니깐. 자, 당이 떨어진~다, 가자!

 

 

군대에선 행군을 시작하기 전에 건빵을 나눠 줬다. 건빵은 별 맛이 없다. 짐만 되고 목만 막히는 이런 걸 왜 주냐 싶다가도 걷다 보면 어느새 주머니로 가고 있는 손. 씹다 보면 신기하게도 맛있다. 텁텁해질 때가 되면 별사탕이 이 사이에 걸리는데 고소함에 얹혀진 깜찍한 단 맛은 기 막히는 별미였다. 지루하고 끝 없는 행군길에서 그 소박한 간식에 정신이 팔렸던지 아니면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건지, 결국 몇 십 킬로미터를 완주해 내고야 만다.

 

시간이 흘러 과자를 권하면 예의상 한개 집어 먹던 신입은 어디로 가고 한주먹 가득 잡는 4년차 김사원만이 남았다.

각각의 이유를 사전에 준비하기 위해서라며,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서랍은 간식 창고가 된다. 사회 생활도 길고 긴 행군이요 마라톤일테니깐.

 

'다시 힘 좀 내볼까?'  응원의 초콜릿 하나,

'왜 이렇게 쳐지냐..'  격려의 사탕 한 알,

'아오, 짜증나네!'  위로의 과자 한 봉지.

 

지나친 단 맛과 짠 맛이 부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향연은 밋밋한 회사원 삶에서 작지만 새로운 자극을 준다. 달라질 것 없을 일상에서 간식만은 예외니 선반에 오늘은 또 어떤 간식이 놓여 있을지 궁금하다. 단짠단짠.

 

오늘도 어김 없이 선배는 과자를 찾고 나는 모두가 공평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분한다. 모두가 공평하게 살 찔 수 있도록 칼로리를 분배한다. 그렇게 오가는 과자 봉지 속 뱃살은 싹 튼다. 우리는 팀이니깐, 먹어도 같이 먹고 살 쪄도 같이 쪄야 하니깐.

 

선후배의 정이 오가는 낭만적 간식 시간 그리고 그 후의 뱃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