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상에 앉아 있던 고양이들이 부리나케 달아났다.
친구에게 키우는 아이들이냐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도시에 살다 보면 길고양이가 병을 옮긴다며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말을 자주 듣는다. 고양이가 자꾸 모이면 동네가 후져보여서 아파트 집 값이 떨어진다나 뭐래나. 고양이를 보자마자 퍼뜩 그 생각이 나며 그 자리에 앉기가 다소 꺼려졌다.
여기는 전라남도 여수시 금오도. 친한 형의 집들이에서 갑자기 결정된 가을 여행지다.
고향 쪽 어느 섬에 있는 가족 소유의 집에 머물며 낚시나 하자는 여수 출신 S군의 제안에 가장 먼저 내가 손을 들었다. 각자의 이유로 휴식이 필요했던 우리는 당장 다음주 금요일 퇴근 후 출발해 버리자는 계획을 세웠다.
기꺼이 운전기사도 자처한 S군의 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도로 위에 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 간밤에 각자 가방을 꾸려 서울을 벗어나는 느낌은 묘했다. 새벽 녘에야 도착한 여수 친구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이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금오도로 들어갔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방파제에 걸터 앉아 있자니 펜을 잡고 글감 잡기를 기다리는 평소의 주말 일상과 은근한 공통점이 있었다. 조그만 잡어 한마리를 낚아 손 맛을 봤으니 이제 나는 섬 집으로 들어가보겠소, 시골길을 걷고 돌계단을 올라 철컹대는 양철 대문 앞에 다시 도착했다. 문을 열면 고양이들이 평상 위에 누워 있을까? 컴퓨터 게임에선 던전을 클리어 한 후 나갔다가 재입장하면 몬스터들이 원상복구되어 있었는데.
바가지에 물을 길어 간단히 씻고 나서 고양이들이 사라진 담벼락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녀석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그 곳에 가방에 있던 인절미 과자 몇 개를 살며시 놓아 뒀다. 이번에 만난다면 쓰다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친구들은 섬그늘에 고기를 잡으러 갔고 나는 홀로 남아 집을 본다.
보일러를 찾다 그냥 찬물로 씻은 터라 재빨리 안방 이불 속으로 뛰어 들었다. 머리를 동여맨 수건 사이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남긴 동그라미가 하나 둘 셋 넷.
친척 어른이 사셨다는 어촌 마을 집은 시골에서 밥 해 먹으며 쉬다 오는 어느 TV 예능 시리즈의 촬영장과 비슷하다. 방문을 밀어 젖히면 한 눈에 들어오는 마루와 마당. 그 앞엔 정말 손으로 쌓음직한 투박한 돌담이 드리워 있다. 춥지만 따뜻하다는 느낌은 그곳에서 이불을 덮고 앉아 휴게소에서 산 뻥튀기를 먹는 맛이랄까?
좀처럼 갖기 힘든 호젓한 시간이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시간은 문제 없이 흘렀다. 입은 숨을 쉬는 본연의 임무를 다했고 귀는 그 소리에만 집중했다. 이따금씩 마당으로 나가면서 확인한 과자는 그자리에 그대로.
낚시꾼들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들어왔다. 여기 싱싱한 고등어들을 보라며 대문에서부터 나를 불러낸다. 짠 하며 여는 아이스 박스에 대고 외친, "우와, 등이 진짜 파랗다! 신선해 보여!!"
탄성의 크기에 따라 이따 먹을 고등어 회의 손질 수준이 결정될 테니깐.
뭍에서 준비해 온 장어를 굽고 정성껏 마련된 고등어 회를 함께 상차림 했다. 왁자지껄 떠들며 밥을 먹는데, 저 쪽 담벼락에서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아침에 본 고양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에게 아낌 없이 장어 머리 하나 던져 줬다. 낼름 물고 다시 넘어가더니 5분도 되지 않아 세마리가 되어 돌아왔다. 동네 고양이 다 데리고 온다고 웃으면서 머리 하나 또 던졌다. 그렇게 불어난 고양이는 총 다섯 마리, 장어 머리는 물렸는지 더이상 안 먹길래 고등어를 건넸다.
이렇게 음식을 선사 받은 고양이들은 이따금씩 마당에 죽은 쥐를 놓고 간단다. 한번쯤 들어본 '고양이의 보은' 사례.
사내 여러 좋은 선배들 중에서도 유난히 잘 챙겨주시는 분을 만날 때가 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친절하고 다정한 분들이 꼭 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참 고마운 분이다.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아에 혼 안 낸다는 건 아니지만, 혼날 건 나야 한다지만, 왜 그런거 있잖아, 따뜻한 꾸짖음?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지만 뭘로 갚아야 할지 통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괜히 잘 보이고 싶어 오버하는 걸로 생각되는 건 아닌가 싶어 소극적인 인사를 하고 만다.
고양이가 쥐를 물어다 주는 이유는 그렇게 복잡한 고민에서 나오는 게 아닐 거다.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좋아할 거라는 단순하지만 귀여운 생각은 고마움의 증표로 매듭 지어지니, 종(種)은 다르지만 전해 오는 마음의 결은 하나다.
다독임을 받은 고양이들은 사랑한다면 표현하라는 어느 문구처럼 어김없이 고마움을 표할 거에요. 그러니 길고양이를 만난다면 쓰다듬어 주세요.
유난히 별이 잘 보이던 주말 저녁, 바닷 내음 가득한 섬집에서 우리는 길고양이를 만났고 어린 아이의 재롱 앞에서나 터질 법한 웃음으로 깊은 밤을 지새웠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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