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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64 입방아 찧는 사람들

[입방아를 찧다]

 - 명사: 어떤 일을 화제로 삼아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일 

   *표준국어대사전(네이버 국어사전)


 

점심식사 후의 산책은 '카더라' 류의 소문의 시간이기도 하다.

대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숙덕이는 뒷담화와 카더라 통신이 주를 이루니 그때마다 웃는 듯 아닌 듯 애매한 표정으로 있게 된다. 너도 그리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에는 질문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내 의견은 최소화하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글쎄요.' 혹은 '잘 모르겠어요.' 로 늘 마무리 되는 이 레파토리는 겪을 때마다 참 별로다.

 

"걔는 옷을 왜 그렇게 입는지 몰라? 싼티 나 보이게."

그날의 오후엔 아는 사람이 등장했다. 손등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닦아내며 동조를 구하는 눈빛을 자연스레 피했다.

아는 사람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내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도 그려진다. (실제로 그런 적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달나라 토끼는 떡방아를 찧고 회사 인간들은 입방아를 찧어댄다. 여유가 없어 후배를 못챙긴다면서, 남 일엔 전혀 관심 없는 듯 행동하더니, 쓸데없는 소리들은 왜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아까 보던 국어사전 창을 닫는데 밑에 몇 줄이 더보인다.

 

관용구(1건)

"입방아(를) 찧다" : 말을 방정맞게 자꾸 하다

 

 

 

 

 

"야, 말 안하려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낮에 너 놓고들 떠들어대더라."

"누가? 전에도 몇 명이 그런다는 소문 듣긴 했었다."

 

옆 부서 그에게 메신저를 보냈고 생각보다 덤덤한 답장이 왔다. 표현만 덜 할 뿐 상처 받는 건 똑같겠지. 찧어대는 입방아에도 신입사원들과 사원급들은 별 말 못한다. 명실공히 사내 약자들.

불금 술자리 대나무 숲엔 그들이 말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 울려 퍼진다.

 

*

"내가 딱 보면 아는데, 너는 후회할 일을 많이 저질렀을거 같아~"

퇴사하고 돗자리나 까세요, 이 양반아! 서로 안지 반 년이나 됐나? 대화 거의 없었잖아요. 예의 없는 부장에게 정말 후회할 일 한번 내주려다 그냥 참았단걸 그는 알런지.

 

*

유관부서의 누군가를 돌려 까대는 게 마치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베테랑인 과장씨! 나는 그들을 아직 몰라요. 만나지도 못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지 말아줘요. 헐뜯는 사람이 되려 더 방정 맞아 보이니깐.

 

*

옷차림이 야하다며 지적하는 대리들! 욕하는 놈이 제일 열심히 봤더라. 너 보라고 입고 다니는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 옆은 본인이 못 입으니까 괜히 심술 부리는 분일거라 예상됩니다만. 옷으로도 가릴 수가 없는 입방정이군요.

 

*

신입이 들고 온 명품백이 브랜드에서 제일 싼 라인이라며 숙덕대는 거기들! 튀는 옷차림이 야하다며 호박씨를 까대는 건너편 차장. 유난 떨지 말고 본인이나 신경 쓰시길^^ 화장 냄새, 담배 냄새에 속이 안 좋을 지경이에요.

 

 

찧어대는 입방아 옆 별소리 못하고 있는 사람들. 괜히 미운털 박힐까봐 목소리 내질 못했고 나설 당위성이 없어 듣고만 있다. 다들 자기만 챙기는데 굳이 나서야 하나 싶은. 나도 챙김 받은 적이 없거든.

 

그들의 입에 너와 내가 오른다. 툭- 건들면 팍! 쳐줘야 할텐데, 한국이라 어렵고 대기업이라 더 힘들다. 나이가 깡패요 직급이 권력인 곳이니라. 

옆 부서 형은 펜처럼 생긴 녹음기를 사서 가슴팍에 달고 다닌단다. (보안을 빌미로 사내에선 핸드폰에 녹음 및 촬영 기능을 차단하는 어플을 강제 실행시키는데, 역시 다 똑같은 놈들이니 알아서 챙겨야 한다.)

 

"여기 분위기 자체가 좀 그래. 남 기분 신경쓰지 않고 말하고 뒷말하고. 한마디에 일일이 상처받으면 너만 힘들어져."

 

사원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다며 커피 한 잔 하자던 대리님. 이곳의 분위기에 이직한 직후의 본인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한 사람이 감내할 수 밖에 없다는 말에서 사회생활의 팍팍함이 다시금 밀려온다.

 

생계를 꾸려야 하니 승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위에도 잘 보여야 하고 사내 평판에 목을 맬 수밖에 없어 참고 견딘다. 뒷담화의 대상이 된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웃음 짓는다. 마음에 굳은살이 생겨 덤덤해질때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며 폐단은 되풀이 된다. 후배를 위해 악습을 바꿔나가려다는 본인만 다치게 되는 현실 탓을 하며 과거의 자기와 조우한다. 어쩔 수가 없으니 그저 버티라는 말 밖에.

 

한 쪽에선 입방아를 찧고 나머지는 거기에 오르내린다. 이윽고 반대 양상이 펼쳐지니 시소를 타는 듯 즐거운 회사 생활이다.

 

쓸데없는 소리들 말자고 싶지만 그 말이 또 여기저기 오르내릴 걸 안다.

그래, 그냥 입방아들 찧거라. 이어선 네가 찧일테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