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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61 퇴근길이 출국행입니다

출근은 언제나 힘겹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해외여행이 예정된 날이다.

드디어 해봤다.

아침 출근에 저녁 출국

 

캐리어를 끌고 출근길에 나섰다. 반팔 티셔츠 차림에 여행가방까지 들고 여의도 넥타이 부대를 가로지르는 기분은 통쾌하다. 오늘 하루는 한번 버텨봄직할 것 같다. 퇴근만 하면 여의도를, 아니 한국 자체를 뜨니깐! 

 

21시 베트남행 비행기

점심시간에 쌀국수가 땡겨오는게 마음은 벌써 상하이쯤이다. 목표는 17시 30분 퇴근. 지킨적이 별로 없는 공식 퇴근시간이다만 오늘은 칼 같이 사수할테다. 떠나기전 맡은 업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아침부터 집중해서 일들을 쳐내간다. 행여나 호치민에서 메일 쓰는 일은 없도록 해야지.

 

오후 4시 40분

슬슬 휴가자 마인드로 세팅을 하는데 내선 번호로 전화가 온다. 싸늘하다.. 가슴에 일감이 날아와 꽂힌다. 팀의 경리분이 업무를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연차를 내버렸단다. 납기가 오늘까지라고 나보고 좀 챙겨달란다. 이 사람아! 내 출국도 곧 납기야! 

 

 

5시 10분

결국 그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은 급한데 생각보다 까다로운데다 유관부서 담당자는 계속 통화중이다.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님아 그 전화를 받으소, 같은 신세끼리 좀 돕고 삽시다. 허허..

 

5시 30분

아직 자리에 앉아있다. 일이 참 질척인다. 아까만 해도 퇴근종 치면 칼 같이 뛰쳐나가고자 했었는데 그건 플라스틱 빵칼이었던가? 도어투도어 시간이 1시간 30분 남짓 같아 보이니 공덕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공항철도로 갈아타는게 최단 루트려나? 6시쯤 나가도 할 만 하겠지?

 

20분이 초과되었다. 일은 아직 덜 끝났다^^ 헤매는 시간보다 시곗바늘 흘러가는 속도가 더 빠르니 유감. 이쯤 되면 욕 먹을 각오하고 그냥 나가야 하나 싶다. 아침 출근길 그 상쾌함은 어디로 갔나 몰라?

 

마지막 순간까지 물고 늘어지는 꼬라지가 역시나 회사답다. 뭐 하나라도 절대 쉬운게 없는.. 

 

 

 

 

 

2013년 겨울이었을까, 대학교 같은 과 친구 몇 명과 미국 동부 여행을 했었다. 약 10일간 뉴욕시티부터 보스턴, 코네티컷까지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재미나게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웃고 울고 또 싸우기도 하며 학교서 놀던 것과는 또다른 맛을 경험했다.

 

"이번에 다같이 베트남 가면 뉴욕 때의 500배는 더 재미있을걸??" 미국 여행의 팔로워였자 이번 여행의 호스트가 말했었다.

 

나의 베트남행을 막던 그 업무는 결국 바로 윗 선배 차지가 되었다. 혹시나 나중에 책 잡힐까봐 딱히 부탁하고 싶진 않았다만 어쩔수 없었다. 비행기는 타야 하고 내 여행은 소중하니깐.

 

직장인들을 타겟으로 밤 비행기 여행 상품이 늘고 있단다. 어느 선배는 친구들끼리 불금하던 자리에서 바로 티켓을 끊어 일본으로 떠났단다. 속옷이며 필요한 것들은 그냥 현지 가서 사고.

쥐꼬리일망정 써재끼려고 돈을 번다. 개 같이 벌어 더 그렇게 쓰자! 멍멍!

 

호치민 공항의 후끈한 공기에 영화 <쇼생크 탈출>의 탈출씬처럼 포효했다. 아엠 어 프리맨!!! 며칠간 회사란건 없다.

 

 

우리는 총 4명이고 침실은 3개니 누군가는 거실 소파에서 자야 했다. 영혼의 가위바위보 한 판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 하나를 차지했다. 침대 위에서 보이는 시티뷰는.. 음.. 후암동?

 

이튿날 아침 씻지도 않고 수영장에 들어가려다 걸렸다! 둥둥 뜬 상태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네모난 걸작이었으니, 애들 안달나라고 회사 동기방에 사진을 올렸다. 나는 연차고, 너넨 근무일이야!

 

 

베트남 가정식으로 첫 식사를 했다. 아침밥 먹을 시간도 없이 출근해서 지하 카페에서 토스트 하나 물고 올라와 조용히 녹여 먹던 어제의 나는 안녕~

진리의 쌀국수에 코코넛 볶음밥에다 이름 기억나지 않는 무슨 부침개류의 존맛 요리들로 흡족하게 배를 채웠다. 오전부터 타이거 비어로 알콜 충전하니 디즈니 <알라딘>의 프린스 알리가 부럽지 않아.

행복하다.

 

 

 

2,3일차: JOHN-NA 놈.

행복하다.

 

돌아가는 날 아침. 왠지 모를 울적함이 휘몰아치는건 귀국 지옥 입구 앞이라 그런걸까? 입에 들어가는 건 여전히 맛나고 또 재밌다며 웃음 짓곤 있지만 시곗바늘이 돌아갈수록 쳐져가는 어깨들이다.

행복하냐?

 

술 마시다 이야기를 나눴다. 행복의 시점은 지금 이순간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미래에 있는지. 한 친구는 '금요일이 행복하냐, 일요일이 행복하냐?' 는 질문을 던지며 행복은 미래에 있다는 나름의 논리를 펼쳐 나갔다.

 

티켓을 쥐고 공항으로 향하며 마냥 즐거워하고 여행지에 도착한 모습을 상상하면 더 설렌다. 여행시엔 현재와 미래의 행복이 그런식으로 공존한다. 여행 첫날,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으며 참 좋다. 동시에 다가올 내일에 있어서도 행복함을 느낀다. 둘쨋날도 그렇고 세쨋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현재와 미래. 내일과 오늘. 양갈래로 뻗어나가던 행복감은 귀국일이 가까워오매 사그라든다. '여행은 끝났다' 는 통보를 저 먼저 피하고 싶나보다.

 

국가별로 시민들이 어느정도로 행복한지를 평가하는 '행복지수' 라는 게 있더라. 문득 궁금해졌다. 베트남 벤탄시장의 상인들과 길거리서 쌀국수를 말아 파는 할머니,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시민들은 어느 정도로 행복할까?

만일 '행복해요!' 라고 흔쾌히 답변한 사람의 조사 결과가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나왔다면, 과연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려나?

 

 

우리는 직장인이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있자면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건 사치요 머리 아프다.

'꿈과 목표는 시방 모르겠고 당장 내일 출근 안하기만 해도 행복하겠어. 퇴사하면 먹고 살 문제가 깜깜하니 또 그건 싫고.. 그냥 퇴근이나 하고 싶다!'

 

조삼모사 일화에 등장하는 원숭이들은 아침에 도토리를 3개 주고 저녁에 4개 주겠다는 말엔 화를 냈고, 그걸 그대로 뒤집은 아침 4개, 저녁 3개 제안에는 만족하며 콜을 외쳤다. 어리석다며 웃겠지만 사실 그녀석들이야말로 현명한것 아닐까? 최소한 그순간만큼은 행복을 만끽했을테니까.

좋은게 좋은거라는 정신승리. 워낙에 햄보칼수 없는게 직장인의 삶인만큼 그런 승리라도 거두는 편이 그나마 낫다.

 

출근길이 지옥행이라는건 국가적 차원의 슬픈 현실이다. 결국 귀국이 기다리지만 그래도 현지에선 행복할테니 퇴근 후 출국이라도 하길 바랄게.

 

퇴근길은 안그래도 천국행인데 출국행이라면 따블로 행복할거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