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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59 여의도 표류기

한겨울에 시작한 여의도 생활이 3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안가는 듯 흘러간 시간의 흔적은 뾰루지 수와 팔자주름의 깊이에 드러난다. '스트레스나 수면의 질에 따라 트러블이 생긴다' 는 기계적인 의사 멘트와 '잘 챙겨먹고 몸관리해' 라시던 어머니 목소리에 그저 '네'. 제대로 할런진 모르겠지만 그이상 어떻게 더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여의도 골목 구석 응달의 얼음도 녹아가는 날씨다. 그치만 뻣뻣해진 몸은 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상도 덩달아 경직되어 있다. 우선 일출과 일몰을 회사에서 보낸다. 퇴근을 하고 시간이 조금 남는 날엔 헬스장에 간다. 일주일에 세번, 한시간씩 운동하기. 땀 흘리는 남자는 옳다니 회사 밖에서라도 옳단말 들어봐야지. 평일에 이틀은 집에서 책을 읽는다. 정작 세보면 몇 페이지 못 읽은 날이 태반이지만.. 명색이 해외 사업 담당이니 종종 잉글리시 아티클도 읽어준다. 가끔가다 뱉던 에이씨 말고 다른 알파벳을 읊으려니 어색하다. 주말에는 늦잠을 잔다. 한주간 내려앉은 먼지를 치워내고 묵은 빨래도 세탁한다. 친목도모의 시간도 가진다.

그렇게 단조롭지만 나름 최적화된 일상을 보냈다. 날이 좀 더 풀리면 여기에 역동성도 더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볼이 마지막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두께감이 있는 옷을 입고 나가야하나 싶다가 얼마전에 산 짙은 오렌지색 봄코트를 걸쳤다. 코 끝이 시려운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봄맞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출근길에 나선다.

 

 

 

 

매일 아침 섬으로 출근하고 있다.

직딩의 섬 여의도.

 

높은 빌딩으로 사방이 둘러쌓인 이곳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보금자리중 하나다. 여러 건물들과 수많은 사람들로 빼곡한 여의도를 멀찍이 관망하고 있자면 어느날 타이타닉처럼 가라앉진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된다.

 

오전 7시 30분에 그 섬으로 향하는 지하철엔 직장인들이 얽히고 섥혀 있다. 밤잠이 부족했는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 누군가부터, 음악을 들으며 들썩대는 사람, 신문 읽고 웹툰을 보는 사람까지 다양하니 그들이 하고 있는 생각도 그렇겠지?

스타트업이 많은 강남과는 달리 대기업과 공기업이 주인 여의도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은 대부분 일정한 편이다. 여의철도789에서 사람들이 흘러나오면서 비로소 이곳의 하루가 시작된다.

 

근무지인 20층에서 내려다보는 여의도는 정말 멋지다. 미세먼지가 없이 맑은 날이면 한강부터 주변의 여러 다리, 그리고 국회의사당까지 한켠에 놓인 그림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여의도에 일하며 겪는 몇 안되는 재미다.

한숨 돌릴수 있는 점심시간이 다가올 경이면 회의가 없기를 기도한다. 꼭 30분을 앞두고 '급한' 회의가 잡히곤 하는데 오늘은 조용히 넘어갔다.

 

 

구내식당 반찬에 코다리 조림이 나왔다.

요놈의 생선은 직장인들과 묘하게 비슷하다. 비슷하지만 차이가 나고, 같이 입사했지만 또 다르게 변해가는게 참 평행한 양상을 띈다.

명태는 가공법이나 잡은 시기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다. 갓 잡아올려 펄떡대는 '생태', 꽁꽁 얼려버린 '동태', 말리다가 날이 따뜻해져 속까지 까매진 '먹태', 덜 자란 새끼를 말려버린 '노가리', 반건조 처리해서 오늘처럼 조림으로 많이 나오는 '코다리' 등. 그 중 바닷바람 사이서 얼고 녹기를 수번 반복 끝에야 만들어지는 황태는 이리 저리 치이며 적응해나가는 누구 모습을 보는듯해 애틋하기까지 하다.

 

딴에 섬이라고 해 저문 여의도는 꽤 조용하다. 밖과 마찬가지로 고요해진 안에서 말 없이 두시간을 야근 후 집으로 돌아간다. 문득 올려다 본 불 켜진 창문 수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 서울의 밤은 이런 반짝임이 모여 만들어진다. 언젠가 내가 사무실 불을 켰을때도 강 건너 누군가는 그 빛이 예쁘다며 감탄했겠지.

 

여의도에서 표류생활 3개월째.

자전거를 딸랑이며 여의도로 출근하는게 로망이라던 친구야, 나는 그걸 몰고 집으로 가버리고 싶단다.

버티다보면 날이 조금씩 풀려가겠구나 싶다. 지난 출근길엔 점퍼 단추를 채우지 않았다. 찬기운이 물러가면 싹이 돋아나고 꽃봉오리도 차오를거다. 벚꽃 흐드러지는 여의도 윤중로는 장관이겠지?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들이 여의도역 어귀 가로수 갯수와 비슷해질때, '아! 정말 봄이다!'

 

하루 이틀 지난 것도 아닌데 내일도 출근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영 쉽지가 않다. 회사 동기들부터 비슷한 연차의 친구들도 출근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니 날씨와는 별개로 정말 춥고도 험한 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여의도는 북적일거다. 힘차게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할거고 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겠지. 자의인지 타읜지 알 수는 없지만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