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신호로 머신 무게를 올렸다. 렛풀다운 머신(Lat Pull Down Machine)으로 등 운동시 시작은 늘 낮은 무게부터. 자세를 잡고 스트레칭 한 후 40kg 짜리 추를 걸고 천천히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무겁다고 팔 힘으로 하면 안된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등 쪽에 힘이 실리도록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기. 승모근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남녀가 모두 사랑하는 직각 어깨를 만들기 위해선. 무거운 무게로 운동하는 것이 절대 능사가 아니다. 정확한 부위에 자극이 충분히 들어가야만 효과가 있다. 자세를 최대한 신경쓰며 잡아당긴지 수차례, 광배근이 팽팽해지는 느낌이 든다. 운동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신호다.
대학생 때부터 시작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하고 있다. 하루 중 가장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무심하게 헬스장 입구를 통과해 석고상만큼이나 과묵하게 운동을 한다. 핸드폰도 멀찍이 두고 이어폰도 끼지 않고, 밥 먹는 강아지처럼 초연하게 눈 앞의 덤벨만 들어댄다.
무거운 것들을 드는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곤 한다. 송글송글 맺히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함께 종일 쌓인 스트레스도 배출되는 느낌이다. 원판을 하나 더 끼운다. 때론 빼기도 한다.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무게를 더했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몇 세트를 반복하다 팔뚝에 핏줄이 도드라지고 허벅지엔 묵직함이 실려올 때쯤 확인해본다. 내가 몇 킬로그램을 들어올리고 있는지. 너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헬스장 안에서 실컷 들어올리다 나왔는데 밖에서도 짊어져야 할 몫이 여럿이다. 고개를 돌려 등에 얹혀 있는 것들을 본다. 직장인이라는 원판 하나, 이십대 후반이라는 원판 하나, 장남이라는 원판 하나, 미래라는 정말 두꺼운 원판 또 하나까지. 중간중간 끼어있는 작은 원판들도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된다. 월요일, 팀장님 호통, 거래처 클레임, 주말 연락, 실적 압박, 회의, 평가, 후배 둘의 어중간한 연차.
점점 허리가 구부정해지고 거북목이 되어간다싶더니, 이고 지는 것이 많아서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몇 개나 들어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와중에도 계속해서 뭔가가 얹히고 나는 계속 들고 있어야 할 뿐이다. 힘들다고 떨어뜨리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언젠가부터 등에 실린 무게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군대 제대 후 복학생이라는 무게가 얹혔다. 그 위에 졸업이라는 추가 하나 더 얹어졌고 사회 초년생이라는 무게도 더해졌다. 어깨가 뻐근하다.
적응되나 했더니 어느새 3년 차 직장인이라며, 또 선배가 되었다며 무게가 추가됐다. 기우뚱한다. 휘청대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가까스로 균형을 찾았건만 뭔가가 또 올려질 것이란 예감이 든다. 그리고 그건 곧 실제가 된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잘하는 듯하면서도 어설펐다. 특히 경쟁하는 팀 스포츠는 특히 약했던 걸로 기억한다. 남과 경쟁하는 행위를 그리 즐기진 않는 성향이 반영됐던 것 같다. 그래선지 헬스는 나랑 제법 잘 맞았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최선을 다하면 족할 뿐인 운동이었으니까. 그저 묵묵히 하면 됐다. 내 힘이 닿는데까지 그냥 들어내면 됐었다.
꾸준히 운동하다 보면 모르는 새 힘이 길러져 있다. 시나브로 길러진 근력은 힘든 와중에도 더한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준다. 흥분된 상태로 계획했던 횟수보다 수차례 더 반복하면 이튿날 근육통이 찾아온다.
무게를 높여가며 운동해야 근육도 커지겠다만 높은 무게를 들어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운동을 꽤 했다고 느껴지면서 고중량의 덤벨을 손에 쥐게 됬다. 벤치프레스의 무게를 한껏 올렸고 팔이 후들거릴 정도의 무게로 이를 악물고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뿌듯했다. 나는 이제 이 무게로 가슴 운동 해! 이 정도는 들어줘야 이두박근 운동했다 말할 수 있지!
이따금씩 보디빌더 선수들을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낮은 무게로 수차례 반복운동을 하더라. 물론 나중엔 포탄 만한 크기의 덤벨을 잡긴 했었지만. 처음부터 무거운 무게를 억지로 들어올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근육이 놀라지 않도록 작은 자극으로 몸이 적응하는 시간을 준 뒤 조금씩 그 무게를 늘려줘야 한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와주지 않는다면 효과는 커녕 되려 다칠 수도 있기에.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 와 같이 거룩한 말은 못하겠다. 떠오르지도 않고 하고 싶지 않은 류의 말이다. 보통의 우리들 중엔 '왕관'처럼 무거운 걸 쓸 사람은 잘 없을뿐더러 견뎌내면서까지 꼭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겨우/ 간신히 하는 게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정말로 제대로 들어올려줬으면 좋겠다. 조심스레 잘 들어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준비가 아직 덜 되었다면 천천히라도 들어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문득 돌아보았을 때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너의 무게가 이 정도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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