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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34 그렇게 선배가 된다

자동차 음악 볼륨을 몇 칸 줄이자 자 옆에 탄 후배 목소리가 좀 더 또렷이 들렸다. 행사 시작까진 아직 30분도 더 남았으니 근처 카페에 들러 커피나 한 잔 하고 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이 친구와 따로 밥 한 끼 먹은 적도 없는 것 같다.

 

팀 차장님네 늦둥이 돌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가는 길목에서 후배를 픽업해준댔더니 생각보다 좋아했다. 옆 팀에서 넘어와 올해부터 내 후배가 된 친구다.

 

작년 10월쯤 옆 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왔었다. 당시 막 1년차를 넘기면서 막내의 위치와 그에 따른 잡무에 허덕이던 내게 옆팀에 후배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직무를 했지만 딱히 대화를 나눌 일도 없었을뿐더러 옆 팀 막내까지 챙겨줄 여유도 없었다. 그치만 가끔 쭈뼛대며 질문해오던 그 친구에게서 역시나 힘든 막내생활을 보낸 예전 내 모습이 보여서였던지 바쁜 와중에도 밝은 목소리로 맞았던 기억이 난다.

 

 

올해 들어 조직변동이 있었다. 내가 속한 팀은 옆 팀과 합쳐졌다. 옆 팀 막내는 자연스레 내 후배가 됐다. 그렇게 얼떨결에 선배가 됐다.

 

대학 수석에다 조기 졸업까지 했다는 후배는 똑 부러졌고 막내라는 위치가 무색할 정도로 맡은 일을 척척 해냈다. 옆 팀 막내였던 시절 케어를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몇몇 업무 프로세스는 다시 가르쳐야 했지만 큰 어려움없이 잘 따라와 주어 기특하면서도 고마웠다.

 

후배와 처음 만났던 적부터 줄곧 존댓말을 하고 있다. 한 팀 선후배 관계가 된지 반년도 훌쩍 넘었건만 여전히 존대하고 있다.

 

 

 

 

2년 동안의 내 회사생활 중 새삼 불편했던 순간은 선배와의 벽이 강제로 허물어졌을 때였다. 나를 보며 씩 웃는 선배의 입에서 친구 사이에서 주고 받았음직한 거친 말이 흘러나왔을 때. 본인만의 친분 형성 스타일이었음을 알게 된 후엔 더 친해지게 됐지만 처음엔 퍽 당황스러웠다.

 

너무 멀면 아쉽다. 너무 가까우면 불편하다. 선후배 관계인만큼 가까워질 필요성은 느꼈으나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의는 서로 간의 그 선을 계속해서 자각하는 과정에서 지킬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해봤으니까. 그래서 어린 후배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게 됐다.

 

지난 주엔 팀에 신입사원이 또 들어왔다. 후배의 후배다. 내가 막내의 자리를 후배에게 내어준 것처럼 이번엔 그의 차례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게는 나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년 12월, 두개의 팀이 하나가 됐고 내게도 후배가 생기며 여러 마음이 들었었다. '후배가 생기면 정말 잘해줘야지' 라며 다짐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후배였기에 더 그랬었던 것 같다. 미안하게도 그때의 다짐만큼 후배를 신경 써주지 못했다. 후배를 챙긴다는 게 생각보다 만만찮은 일이었다. 후배를 대함에 있어 선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참 모호하기도 했다. 잘해주기 전에 일단 기본적인 예의부터 지키자는 마음에 시작한 우리의 존댓말과 관계.

 

이렇게 나의 선배도 선배가 되어갔을거다. 내 선배도 느꼈고 나도 느꼈고 그리고 내 후배도 곧 느끼게 될, 후배가 생겨도 나의 회사생활엔 그리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을 거란 사실.

 

내일도 우리는 출근을 할거다. 날이 바짝 선 신입사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할거고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와중에 너는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을거다. 후배의 질문을 받아주고 필요한 업무를 가르쳐주며 이따금씩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을 네가 상상된다. 그런 너를 보며 나도 생각하겠지, 그렇게 선배가 되어간다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