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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김사자 』

[신입사원김사자] Ep.35 파랑새를 찾아서

늦다면 늦고 이르다면 이른 오전 9시에 눈을 떴다.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읽느라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하얀 형광등에 눈이 시려 백열전구 조명을 켰다. 은은하니 조용하니 책 읽기 딱이다.

 

네모난 방이 노란 불빛으로 채워지니 작년 가을 에든버러 오르막길에서의 어느 오두막이 기억난다. 굴뚝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창문 안에선 노란 백열전구의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스름이 빨리 찾아오는 북유럽의 가을날, 또 스코틀랜드만의 신비하고도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우러지는 광경이었기에 한참을 서서 바라봤었다.

 

 

침대 머리 맡 블루투스 스피커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노란색에 더 가까운 금빛으로 상호명이 양각새김 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번. 경쾌하고 빠른 곡으로 노곤한 주말 아침을 열기에 제격이다.

 

평화로운 행복감에 넋을 놓던 중 누군가 산통을 깬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흠칫 놀라 캘린더를 본다. 일요일. 빨간날. 휴… 매일 아침 6시 30분만 되면 핸드폰 기상나팔이 울려퍼진다.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며 겨우 눈을 떴지만 이젠 무덤덤하게 손을 뻗어 버튼을 끄는 평일 아침의 시작이다. 주말에도 그 시간대에 일단 깨긴 하는, 또 늦잠을 방지코자 오전 10시로 설정해둔 알람시계 마저 너무나도 직딩이 되어버린 나를 반증하는 결과물일거다.

 

입 안은 가득 차로 채우고 오른손으로 펜대를 굴리는 중이다. 스피커 볼륨을 높이면서 눈도 지그시 감으면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이 충만해진다. 잠이 들듯 말듯 느긋해지는 것이 평소엔 잘 느끼기 힘든 오묘한 행복감이다.

 

 

 

 

매일 새벽 같이 일어나 바나나 하나 움켜쥐고 급박한 출근길에 오른다. 온종일 정신 없이 바쁘다. 거래처 담당자와의 실랑이 이후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숨 한 번 돌리곤 다시 전투는 이어진다. 나를 부르는 과장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 외부의 침공도 한창인데 내전까지 발발하니 '직장생활은 전쟁터' 라는 비유가 불현듯 떠오른다.

 

화장실 가며, 물 뜨러 가며 짬짬이 확인하는 핸드폰 속엔 참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 기사에선 누군가 또 특이한 세계일주를 하고 왔단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어느 신의 직장이라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형 SNS 피드도 보인다. 퇴근길에선 포르쉐 파나메라가 부웅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나보다 행복해 보인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시간도 많아 괜히 창고를 뒤적거리다 유치원에서 그림책으로 읽었던 벨기에의 동화 <파랑새> 를 봤다. 틸틸과 미틸이라는 (예전엔 치르치르와 미치르라고 표기했던) 아이들이 제목 그대로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

 

오누이 집에 찾아온 할머니가 딸이 아프니 파랑새를 찾아달라 부탁한다. 아이들의 집에는 파랑새는커녕 산비둘기 한마리 뿐이었고, 착한 오누이는 파랑새를 찾아 험난한 모험을 한다. 하지만 파랑새를 찾기란 불가능했으니 미안함과 실망감에 휩싸인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남매의 눈에 우연히 키우던 산비둘기가 들어왔고 자세히 보니 비둘기의 깃털색이 파랳다! 파랑새는 바로 여기 있었는데 알아보지 못했다는 환호성과 함께 동화는 끝난다.

 

100년도 더 된 동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지 어느새 20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도 파랑새를 쫓는 나. ‘행복을 주는 파랑새를 찾고 있어요. 행복을 주는 파랑새는 어디 있나요?’

 

 

일요일 오후가 되어도 아침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책장을 넘기다 배가 고파져 국수를 한 그릇 말아먹고 들어왔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고 여유롭다 못해 나른하다.

 

반쯤 감긴 눈으로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홍차를 우려낼 준비를 한다. 런던에서 사온 포트넘앤메이슨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 물에 담그기 전 꼭 그 향을 맡곤 하는데 한껏 들이마시면 찻잎 향에 심신이 안정된다. 찻물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잔 안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이건 분명 행복한 오후일거다.

 

머핀에 요거트까지 혼자만의 티 파티를 준비해 다시 방으로 들어오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한창이다. 쿵짝짝- 쿵짝짝- 그루브 있는 리듬감 속 묻어나는 묘한 혼란스러움은 마치 아침 드라마의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깔릴 법하다고 느꼈다. 그와중에 머핀은 맛있고 차는 더 맛있다.

 

다 먹고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흘깃 눈이 간 천장은 노을이 퍼져 노란 사각형이다. 딱히 한 건 없었지만 꽉 채운 하루를 보낸 느낌에 행복했다. 별거 없었지만 행복했다. 책 읽고 글 쓰고 차 마시고 음악 들으며 쉬며 느끼는 사소한 여유가 나의 파랑새가 아니었을까? 찾았으니 월요일이 덜 겁난다. 어쩌면 평일에도 이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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