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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1 취업, 그 설렘에 관하여

이따금씩 즐기게 되는 카드나 화투 게임에는 ‘쪼는 맛’이란 게 있다. 손에 쥔 패를 살살 올려 가며 확인할 때의 쫄깃하면서도 선득한 마음. 일상적이지 않은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면 낯선 설렘을 느낄 수 있다. 너무 잦으면 정신이 피폐해질 수도 있겠지만 가끔 경험하기엔 그리 나쁘진 않은 기분이랄까?

 

쪼는 맛 혹은 쫄리는(?) 맛. 게임이 아니더라도 그 감정을 체험 가능한 경우가 간혹 있다. 취업도 그중 하나일 거고. 원서를 써내고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폐까지 죄여올 정도의 그 맛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용돈벌이로 시작한 자전거 닦는 아르바이트가 <힘내라 청춘! 청춘 자전거 스타트업>이 되고 딱히 할 게 없어서 떠난 워킹홀리데이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떠난 영혼의 여행>으로 재탄생한다. 민망함에 손과 발이 오글대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제목부터 눈길을 끌지 않으면 인사팀 쓰레기통 행이니까.

 

소금의 양을 구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구별하고 친구 집에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찾아 겨우 도착한 면접실 앞. 면접 테이블의 중압감을 이겨낸 후 받은 ‘합격’ 메시지는 한껏 조였던 횡격막에 평화를 가져다 줬다. 엄마! 아빠! 나 합격했어!

 

 

 

 

애지중지하던 새 신발 뒤축을 구겨 신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설렘의 크기와 익숙함의 반비례 공식도 깨쳤다. 붙여만 주면 충성하겠다는 다짐은 기대보다 적은 월급과 기대보다 긴 근무시간에 대한 불만에 점점 희미해져가더라.

 

설렘이 전부였던 초년생 시절은 가고 이제는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32년 근속하신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 나는 3년이라도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3일 전이나 후나 한숨 나오는 일상까지.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다 보니 이후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놈의 쪼는 맛을 견뎌내고 도착한 곳에서마저 신경 쓸게 이리 많나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인지 설렘이 사라진 곳에는 맷집이란 이름의 근성이 돋아나 있었다.

 

취업의 설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쁨일지 곧 찾아올 비극 전 최후의 만찬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음 일단 잘 간직해야지.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한 감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