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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아트투어 김사자] 행복.6 은밀하게 위대하게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여행을 즐기진 않았던 내게 파리는 빵 살 때나 들어가 본 곳이었다.

에펠 탑 앞에서 인생샷을 건져야 한다는 호들갑도, 베르사유 궁전이 그렇게 이쁘다던 말도 감흥없게 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어느새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사람에 홀려서 그들 나라를 찾아가고플 때가 있다고.

 

12월의 어느 겨울날, 파리(Paris)에서 온 열 살 남짓의 소년들과 마주하며 그 마음은 슬그머니 찾아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컬쳐코드이자 세계 3대 어린이 합창단 중 하나인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Les petits chanteurs a la croix de bois)

 

공연을 보고 온 다음 날 팀원들이랑 잡담하다가 주말에 뭐 했냔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공연 보고 왔어요~" 랬더니,

과장님은 "파리나무란게 있냐?"

대리님은 "파리가 나무에 붙었다고?"

차장님은 "아니, 파리나무라는게 있나? 검색해볼까?"

대화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에 얼른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아뇨 아뇨, 프랑스 빠리에서 온 합창단인데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 달고 노래불러서 이름이 그래요."

 

이름이 꽤나 길고 띄어쓰기 표기가 잘 되어있지 않다면 읽으면서도 한 번에 이해가 힘들 수도 있다.

구두로 전달할 땐 더 알아듣기 힘드므로 또박또박 띄어쓰기와 강세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얘네 이름이 뭐다?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

 

무대 위에 올라선 소년들의 눈망울엔 낯섦이 보였지만 그보다 더한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걱정 반 설렘 반, 아니다, 아이들이니만큼 걱정 한 스푼에 설렘을 우다다다 넘치게 부었겠지?

 

하는 행동마다 정말 '아이' 다웠다.

합창단을 대표하여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하며 멋쩍어 웃곤 하는 소년도, 낯선 외국어로 말하는 친구를 슬쩍 곁눈질하면서 웃음을 참는 단원도 영락 없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들 특유의 노력 섞인 성의와 천진함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한국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준비한 한국어 몇 문장에 익숙해지기 위해 몇 번이고 중얼거렸을거다.

정확한 발음으로 구사하기 위해 나름대로 끙끙거리며 시도했을거다.

애써 외운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 밥 먹다가도, 또 합창 연습하다가도 쉬는 시간에 한 번쯤 되뇌어 봤을거다.

그리고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을 이 소년들.

 

아이들이 뱉는 한 단어 한 단어엔 진심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엉성하지만 누구보다도 완벽히 구사한 한국말이었다.

 

이제껏 나를 거쳐간 거장들 모두 긴장하셔야 할 것 같다.

여기 때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은밀하게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소년들이 왔으니.

 

 

 

 

이제껏 다녀온 명연주 시리즈의 다른 콘서트와는 달랐다.

 

지금까지 만나본 그들의 음악과 연주를 통해서는 소름이 돋고 감정이 복받치는 경험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린 사촌동생이나 조카들의 재롱잔치를 보는 기분에 절로 귀애(貴愛)함 가득한 미소가 지어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아빠미소였는데, 난 아직 아빠도 아니니 삼춘미소 정도랄까?

 

▲ 오늘의 주인공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원들과 지휘자 뱅상 캐론씨. 공연에서 질서정연한 깜찍함이 돋보였던건 이들의 케미덕이 아니었을까

 

보면 볼수록 우쭈쭈해주고픈 빠리 소년들의 공연은 1부와 2부로 마련되어 있었다.

 

각국의 동요와 민요를 메인으로 한 1부에서는 여러 나라의 노래에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만의 색깔을 덧씌워 풀어낸 합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모르는 노래이니만큼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자면 맑고 투명함마저 느껴지는 노랫소리에 전에 없던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하이라이트는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모차르트의 자장가(Berceuse de Mozart) 였다.

어린 소년들의 변성기 전 소프라노에 가까운 목소리인 보이 소프라노(Boy Soprano), 그 청아한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지노라면 가슴에서 시작된 청량함이 머리 끝까지 맴돌게 된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노래는 이 보이 소프라노를 기반으로 한 미성 합창의 진수를 보여준다.

 

2부에서는 어린이들의 동심이 가득 실린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럿 준비되어 있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듣긴 좋건만 부르라면 쑥쓰러워 서로 눈치만 보게 되는 캐럴은 본디 어린이들의 것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Douce Nuit) 부터 징글벨(Jingle Bell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등 신남과 깜찍함이 담뿍 담긴 아이들의 노래가 이어지며 공연장은 흥겨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무대에서 객석까지 모두가 함께 즐기는 분위기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 과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이 이어지며 극으로 치달았고, 그 끝이자 클라이막스는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었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

팝의 황제라는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하여 1991년에 세상에 내놓은 이 곡에선 엣지있고 센세이셔널한 특유의 스타일이 풍기진 않는다. 대신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드러운 친근감이 느껴진다. 굳이 세련미를 내세우진 않지만 은근히 자꾸만 끌리는 마성의 노래라고나 할까?

귀에 때려 박는 멜로디와 자극적인 가사가 트렌드라는 요즘, 다소 느린 템포와 교훈적인 노랫말의 이 작품을 들어보면 90년대 올드팝 감정을 넘어 신선한 충격마저 들거다.

Heal the World.

제목부터 너무나 힐링 충만해지는 노래.

요근래 신규 매장 오픈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전담하게 되어 너무 지쳤었는데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긴장이 스스륵 풀리메 나도 모르게 조용히 따라서 흥얼대고 있었다.

 

https://youtu.be/BWf-eARnf6U (출처: Youtube)

▲ 마이클 잭슨이 제작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이 여겼다는 'Heal the World'

 

 

매스컴에선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공연을 흔히 '천상의 하모니' 라고 소개하곤 한다.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론 천사들의 합창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잘 하는 건 맞지만 합창단원으로 합숙까지하며 진행한 연습 덕이 클 것이고, 이들 선배 기수의 노래를 들어봐도 그토록 난리법석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세간의 찬사를 받는 음악단체의 일원들의 경우 대개 개개인이 월드클래스급 기량을 갖추고 기똥찬 연주로 혼을 빼놓곤 한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경우 그런 기술적인 요인은 조금 약했던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은 세기(世紀)를 훌쩍 넘긴 세계적인 합창단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여러 직업군에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인정 받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뛰어난 외모를 갖지 않아도 인기 연예인이 될 수 있다.

지식의 수준이나 강의력은 약해도 존경 받는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또 일을 잘하진 못해도 승승장구 하는 직장인이 될 수 있다. 아부를 잘하거나 자기 일만 챙기거나 혹은 술 잘마시면..ㅎㅎ 소근소근^^

 

어떤 부분이 미흡하더라도 또 다른 나만의 장점을 발전시켜낸다면 집단과 한 분야의 대가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렇듯이 천재적 재능이나 연주의 숙련도만이 음악적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있자면 무대 위에서 콜록대는 아이도,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솔로 파트를 부르는 아이도 보였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가 절로 나왔다.

아니, 그렇기에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리가 '소년' 합창단의 무대를 기대하는 이유는 분명 노래 실력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합창의 테크닉으로는 성인 합창단이 당연히 훨씬 나을거다. 

경험과 기술로 무장한 그들과는 다르게 소년 합창단의 노래에는 분명 성인 합창단이 따라잡을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우리도 한 때는 가지고 있었겠지만 언제 잃어버린지 기억도 나지 않는 꾸밈 없는 순수함.

 

 

준비한 한국어 인삿말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아이들에겐 웃음기 섞인 쑥스러움이 비쳤다.

한국어 가사로 부른 노래마다 숨길 수 없는 떨림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참 열심히들 한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최선을 다해 보여준다.

이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 가 문득 생각난다.

 

경쟁해야 하고 방심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하는 보통의 나날들은 잠시 접어두고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과 함께한 순수의 시대에 흠뻑 취해본 날.

 

음악을 사랑하는 그 순수한 열정에 감탄하고 함께 자리하는 관객들 또한 사랑하기에 그들 나라의 언어로 인사하고 노래하는 정성에 모두들 열광하는 걸꺼다.

 

자신들이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Heal the World' 하기 위해 세계를 돌며 노래 부르는 아이들.

 

은밀하고 또 위대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그들은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