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도 그러했었다.
11월 말에서 12월 초.
해마다 이맘때면 온 회사가 술렁이곤 한다.
"났냐?"
"안 난듯."
"왜!!! 오늘 낮 발표라며!"
"내일로 연기됬다는 찌라시가.."
"아 뭐 맨날 연기래!!"
동기 카톡방, 팀장님 없는 팀원방에서 누구 할 것 없이 꺼내곤 하는 이야기.
평소엔 대화도 크게 없던 옆 사업부 선배랑도 얼굴만 마주치면 자연스레 하게 되는 그 이야기.
"이번에 팀에서 누가 이동해(요)?"
지금은 인사이동철이다.
꽃게철, 전어철, 수박철, 딸기철처럼 생각만해도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철도 있건만, 이 놈의 인사이동철은 사람 참 심란케한다.
업무를 하다가도 이따금씩 사내 포털 메인화면과 게시판을 눌러본다.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그래서 이동은.." 비슷한 말만 들려와도 양 쪽 귀는 쫑긋 서지.
누가 어디로 이동한다느니, 어느 팀엔 어떤 팀장님이 온다느니 식의 카더라 통신이 하루에도 수 번은 돌고 또 돈다.
평소에 과묵하고 우직한 성격일지라도 이 시기엔 귀가 살짝씩은 얇아질거다.
20대 중 후반의 어엿한 직장들이건만 중학교 배정 추첨을 기다리는 초등학생들 마냥 신나서 떠들고 있다.
작은 첩보 하나에도 울고 웃는다.
인사철에 일희일비 하는 건 직급에 구애 받지 않는다.
유치원생 딸을 둔 과장님도, 아들 군대 보낸 부장님도 하나 같이 궁금케하고 움찔하게 만드는 이 네 글자, 인사이동.
스타일이 맞지 않아 너무 힘들었던 팀장이 이번에 이동 대상자가 아니란다.
자기 일을 자꾸만 시키던 차장이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단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공식적으로 발표나기 전까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바로 인사요 또 이동이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 베라(Yogi Berra) 의 명언은 바로 이 때를 위함이었나.
바람처럼 떠돌던 소문이 폭풍이 되어 돌아올지 아니면 조용히 사라질지는 오로지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문제일 거다.
인사이동의 시즌에 풍문(風聞)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를 찾아온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회사생활 중에 바람에 날리다 내 자리에 슬쩍 와 앉은 소문이란 놈은 어지간하면 다 맞더라.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는 속담은 역시 그냥 나온게 아닌듯 하다.
일단 지금 팀에 발령 받은지 1년 반째인 나는 그대로 한 해 더 남아있을 듯 하다.
올해 말엔 지방근무를 탈출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건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영업도 하기 싫고 지방도 싫다는 내게 맞선배는 땅이 꺼질 듯한 한 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내년이면 4년 찬데 왜 또 지방발령날 것 같다냐.."
경험한 이들은 알겠지만 원하는 직무나 지역으로 이동이 안 된다는 걸 알게되면 분노와 동시에 강력한 퇴사 욕구가 샘솟는다.
직급이 낮고 나이가 어릴수록 그 정도가 큰 편인데, 보통 사원이나 대리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특히 여사우들은 인사이동 통보 후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반대로 연차가 쌓이고 또 책임져야 할 가정이 생긴 사람일수록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이 빠르다.
물론 납득할 수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월급쟁이의 비애'란 현실에 무릎 꿇었다랄까.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모든 회사에는 인사팀이 있다.
회사의 일원들의 인사를 관리하는 업무를 도맡는 중요한 부서인데,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할 창구이기도 하다.
이 곳을 통해서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어필할 수 있다.
비록 100%, 아니 80% 반영도 어려운 편이긴 하지만 일단 들어준다.
연 초와 중순쯤엔 전사 구성원 면담 일정도 잡아 지방까지 찾아와서 개별 면담도 진행하곤 한다.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싶으면 인사팀의 문을 두드려 달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데, 결과와 상관 없이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참 위안이 되기도 하더라.
의견 반영해서 이동시켜주면 완전 땡큐고!
이 인사팀에 본인 어필을 충실히, 주기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저께 였던가, 옆 팀 대리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는 지방 근무 중이지만, 몇 달에 한 번씩 연차 내고 서울에 인사드리러 올라간다고. 정확하게는 미래에 자신이 가고 싶은 팀에 계신 선배들에게 본인 이름과 얼굴을 알리러 간다고 한다. 냉장고마케팅 부서로 가는 것이 목표라던데, 일부러 찾아가서 대화 나눈단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팀 박너구리입니다. 이번 판촉안 관련하여 제안드리고 싶은 사항이 이러저러하게 있는데요, 얼굴 한 번 뵙고 이야기 나누는게 좋을 것 같아서 올라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가고 싶어하는 특정 부서가 있다.
"난 기획팀 가고 싶어."
"나는 조직문화팀이나 인사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 가고 싶은데.."
그치만 그 팀에서 실제로 어떤 업무가 어떠한 스타일로 이루어지는지, 현재 팀원은 누가 있는지, 그 부서로 이동하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보고 정리해 본 사람은 소수일거다.
그런 의미에서 박너구리 선배의 방식이 좋다 어떠하다를 논하기 보다는,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해서 어떻게든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희한하게도 인사이동 발표는 꼭 연기가 되곤 한다.
수요일 오후 2시 공지라고 반 오피셜하게 도는 소문이 무성하건만 콩닥콩닥 뛰는 가슴 안고 기다려봐야 공지글은 어디에도 없다.
다시 들리는 첩보로는 인사이동이 아직 확정나지 않아 부득이하게 금요일로 연기되었단다.
금요일이 되어도 여전히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퇴근시간에 직면하여 도깨비처럼 불쑥 등장하는 인사이동 공지글!
놀란 가슴 부여잡고 찬찬히 훑어봐도 우리 팀장님 이동 계획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조직 개편으로 인해 신설되는 팀의 팀장 인사는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아 차 주 공지할 예정이었는데, 자꾸만 공지가 늦춰지니 본부장님이 노하셨단다. 그래서 그 대상들만 빼고 일단 이동자 명단을 올렸고 미확정된 인원은 차주 월요일에 다시 공지키로 한단다.
어차피 직면해야 하는 게 인사이동 발표랬다.
선배들을 보면 가기 싫다고 안 갈 수도 없고, 또 남고 싶다고 남을 수도 없는 듯하다.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공지라도 일찍 되어서 당사자가 결과를 받아들일 시간이라도 필요한데, 발표한다는 날에 하질 않으니 마음 정리 할 충분한 여유 조차 없이 바짝바짝 입술만 말라오는 기다림의 시간만 추가다.
우리 회사, 그 안에서도 내가 몸담고 있는 본부에서는 지역근무가 필수다.
그러다보니 지역에서 일정기간을 근무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인원도 있지만, 운과 기타 이유로 인해서 또 다시 타 지방팀으로 발령이나 연이어 지역근무를 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내 팀의 선배가 바로 그런 케이스이다.
자그마치 3년을 대구에서 일하다가 이번에 울산으로 이동하게 된다는데, 전화기 넘어 들리는 건 모든 걸 체념한 목소리였다.
이렇듯 인사이동철엔 울적한 사람들도 많고 그만큼 퇴사도 잦다.
어느 팀으로 이동하고 싶다고 그렇게 목 놓아 소리쳐왔는데 그 기대가 산산히 부서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퇴사 의욕이 어마무시하게 밀려온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 서러움과 빡침 또한 깊기에 충분히 퇴사할 만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순간 내리는 결정이 현명한 처사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반 년 전 퇴사한 6개월 선배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판을 바꿀 수 없다면 그 곳을 떠나버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인사이동철엔 사원이나 과장이나 똑같이 불안해하게 된다.
맡은 일만 죽어라 해왔는데, 1년 동안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는데 내가 어디로 가게 될 진 나도 모르고 내 옆 사람도 모르고 심지어 인사팀장도 발표하기 전까진 단언할 수 없다.
공지 예정일 하루 전에도 그 동안 짜 둔 인사이동자 명단은 뒤엎어질 수도 있고 전혀 예기치 않은 사람이 예상도 못한 곳으로 가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20년을 이 조직에서 일해온 부장님까지 "인사는 패 뒤집어 보기 전엔 몰라~" 라며 소문에 휘둘리지 말라신다.
까라면 까야하는 것이 우리 직장인이다. 자의보단 필요에 의해서 이리저리 옮겨지는 장기말 인생이 슬픈 건 어쩔 수가 없을거다.
그렇지만 인사이동은 생각보다 짜임새있게 이루어지고 있고,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적어도 졸(卒)이아닌 차(車)의 삶을 살 수 있다.
잘 알아보면서 동시에 어디로 가고 싶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또 자주 낸다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확률이 높다.
정말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여기저기 물어본 결과 정말 그렇단다.
그렇기에 인사이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도 날카로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민들레 홀씨처럼 너풀너풀 날아다니다 어딘가에 앉는 식이 아닌, 도깨비 풀처럼 닿은 곳에 바로 탁 달라붙는 것.
"서울로 가고 싶어요" 가 아닌,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에 가고 싶어서 저는 이런 걸 잘하고 준비해 왔습니다" 라는.
다른 의미에서 신입 답지 않은 신입이 되자.
막연히 주어진 일과 현재의 팀 업무에 내 역량의 100% 를 쏟기보다는 내 회사생활(언제까지 할 진 모르겠지만)을 전체적으로 보며 커리어 세팅을 하자.
열의와 패기가 끓어 넘지는 신입 보단 회사생활을 3년은 한 중견사원 처럼 앞으로 다가올 조직이동 계획까지 세워 볼 수 있는 그런 신입이 된다면, 인사이동철에 조금은 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도 될거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던 게 나중엔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어' 가 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걸 제대로 하고 있지는 못하다 ㅎㅎ
그러니까 누구든 제대로 해서 결과 공유해 주시길 ^^7
풍문으로 당신의 좋은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길 기대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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