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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26 우리가 취업한 진짜 이유

여기 네 명의 청년이 있다.

 

편의를 위해 이들을 , , , 라고 하자.

(갑을병정이나 ABCD는 뭔가 상하관계나 점수 주는 것 같아 음계로 정했다. 나는 갑질이나 C, D가 참 싫다^^)

 

이 넷은 같은 대학교의 4학년으로 흔히 말하는 취업준비생, 즉 취준생이었다.

마(魔)의 4학년을 넘어서며 그들의 삶의 방향성도 조금씩 달라졌고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양은 대학 시절 각종 동아리와 학회의 장(長)을 도맡던 인기 많고 끼 많은 학생이었다.

타고난 재치와 리더십으로 취업은 큰 문제 없을 거라 여겨지던, 아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법한 그런 학생.

노는 것도, 학점 관리도 비교적 성실하게 챙겨왔고 취업에 대한 열망도 높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리 3년을 연이어 미끄러졌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근성을 보였던 친구.

그랬던 그녀가 취준 3년 차에 돌연히 취업을 포기했다.

 

군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벌여가며 성공시키곤 하던 사업 꿈나무였다.

자존감 강하고 고집 센 성격으로 학우들 사이 호불호가 갈리던 편이었고, 개성이 강했던지라 누가 봐도 한국 기업에서의 조직 생활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취업 자기소개서에 눈에 핏대를 세우던 대학교 4학년, 이 친구에게 취업이란 건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였다지.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프로젝트를 준비한다며 각종 서적이나 해외 자료까지 찾아보던 군.
그런 그가 그 해 말, 대기업 뱃지를 차고 나타났다!

 

양은 집안도 좋고 스펙도 뛰어난 엄친딸.

늘 자신감 있었고 그만큼 능력도 뒷받침 되었기에 모두들 그녀를 인정했다.

주위와 본인의 기대치에 비해 대학교 진학을 잘 하지 못했던 것이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다랄까.

그러나 그걸 웃어 넘기기라도 하듯, 사업을 시작하여 승승장구했다. 높은 자기애가 인간관계에 해가 될까 고민도 많이 됬다지만 그걸 원동력 삼아 빠른 속도로 성장한 양.

유망한 기업에서 인턴 중 정직원 제의도 왔으나 뿌리치고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에 도전한지 어느새 2년 차 란다.

 

군은 체격도 좋고 모나지 않은 심성의 친구다.

늘 느긋해 보이긴 하지만 알고 보면 이것저것 생각도 고민도 많은 젊은이.

눈치 빠르진 않지만 꾀 부리지 않는 우직한 성격인지라 볼수록 정감 간다. 동시에 만날수록 고지식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다 같이 폭음(暴飮) 한 다음날도 술냄새 푹푹 풍기며 학교에 갔었다. 가면 대부분 졸다 오긴 하지만 그래도 수업시간엔 참석한다.

대학교 8학기를 모두 끝 마쳤지만 졸업 유예 후 취준생 2년차.

별 일 없는 척 하지만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듯 한데..

 

 

예상했겠지만 이들은 모두 내 주변 실존 인물들이다.

비슷하게 시작했던 이 네 청춘들의 지금은 꽤나 많이도 달라져있다.

 

실화냐?

응.

 

그들이 취업하고 포기하고 혹은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뭘까?

 

 

 

 

그들이 그랬었던 이유엔 생각보다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생각해 볼 만한 뭔가가 있더라.

 

양은 사실 14K 정도는 되는 골드수저의 소유자였다.

단순히 집안 사업을 물려받는 삶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 이루어내고픈 마음이 컸다. 게다가 집안 일을 이끌기 전에 다른 기업에 몸담고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했기에 일단 취업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보고 있다면 솔직히 간절한 마음보다는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었다. 면접관들의 눈에도 그런게 보였던 걸까?

 

흔히 '취업 현역' 이라고 부르는 대학교 4학년 1학기, 자신있게 인턴을 썼지만 떨어졌다. 곧 이어 2학기에 대기업 공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도전했으나 또 다시 낙방했다. 어떻게 보면 그때부터 그녀에겐 취업 성공이 더욱 절실해졌을 것이다. 호기롭게 혼자 힘으로 사회에 발 디디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으니.

당당하게 합격증을 들고 돌아가고 싶었을거다. 부모님께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 해 상반기와 하반기 전형에도 채용 담당자들에게서 앞 날을 기원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으며 양은 깊은 고민을 했단다.  

'1년만 더 해보고 안되면 접자.' 라는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도전하게 된 이듬 해에도 그녀는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취준생 2년차에 마주한 얼굴엔 그늘이 져 있었다.

늘 쾌활해 보이던 얼굴은 여전히 미소가 있었지만 애써 웃는다는게 느껴졌다.

'경험치를 쌓고 배우기 위해 시작했던'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으며 '다음엔 꼭 될거야' 란 희망에 지속했고, 연거푸 탈락하는 고난을 겪으면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여태까지 들어서있던 취업이라는 늪.

그렇게 취업하고자 했고, 또 그렇게 취업을 내려놓았다.

 

집안 일을 돕고 있는 지금 그녀 표정은 되려 행복해보인다.

"힘들었지만 긴 취업 준비 과정에서 느낀 점도 배운 점도 많았기에 나름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어."

세상이 생각보다 호락호락 하지 않단 걸 몸으로 느꼈으니 이젠 바짝 긴장해서 살아가고 있다는데, 그래선지 더 좋은 추억이었단다.

 

이제 와서 이야기 하지만 집안이 유복한 편이었기에 취업 그 자체만 신경 쓸 수 있다는 점이 크나큰 메리트였다고 할 수 있다. 매 달 챙겨야 하는 월세에 생활비로 아르바이트에 정신 없을 이들이 함께 취업준비를 하는 동년배 사이에서도 수두룩 할텐데.

그래도 자칫 자포자기 할 수 있는 3년차에도 일찍 일어나 경제신문을 읽으며 참 부지런하게 살았던 그녀라서, 씁쓸한 결과에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

 

군의 갑작스런 태세전환의 동기는 뭘까? 
19살 때 첫 시작한 프로젝트를 위해 발급 받은 사업자등록증을 계기로 사업이란 것이 푹 빠져버렸다는 그.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일하기 보다는 주도적으로 자율적인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감내해가며 한 판 승부를 벌이는 게 사업의 매력이었다고 한다. 

 

'자기 일' 을 하며 어린 나이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자기 일' 만 해왔기에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 그러던 와중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이 되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취업에 난리법석이었다.

 

사업가였던 멘토형을 만나 술 한 잔 하다가 "모든 일엔 시기가 있는데 지금은 취업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사업을 하더라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니 어리고 기회를 줄 때 해보는 게 효율적이다. 나올 때 나오더라도 일단 대기업에서 일 해 보는 게 좋다." 는 조언을 듣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대기업 시스템과 큰 조직에서의 생활에서 새로이 배울 게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됬더랬다.

 

급 준비했지만 운 좋게도 바로 취업에 골인한 케이스.

취업용 스펙은 1도 없었으나 시도한 프로젝트가 많으니 그걸 엮어 자기소개서를, 평소에 관심 있던 어학으로 나머지를 채웠고 면접도 그냥 자신감만 있게 봤단다.

컴활이다 4.0 학점이다 봉사활동 시간이다 뭐다 바리바리 들고가는 요즘 취업준비생들과는 사뭇 다르니 정말 뭘 보고 뽑았나 싶다 ㅎㅎ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대충 들어온 회사에 만족을 못해 곧 다른 기업으로 재취업하며 다시 신입사원이었던 녀석.

 

기업의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와 고압적인 꼰대들의 보고 문화로 회사생활에 회의적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취업하길 후회하진 않는단다.

체계적인 전산 시스템과 팀원들이나 타 부서 사람들의 업무방식 중 배울 점만 쏙쏙 골라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 해 볼 수 있단다. 

물론 사업할 때와 달리 루틴한 업무로 다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 곳에서 최대한 다양한 직무 경험과 견문으로 무장한 뒤에 당당하게 나가고 싶다는 군.

회사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뽑아먹어서 미라로 만들어 버리고 떠나거라!!

 

큰 기업의 일원일 때 회사라는 배경을 이용해서 개인이었을 적엔 못해본 걸 꼭 해보고 싶다는데, 나 역시 그가 일개 소소한 직장인으로 살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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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대학교 졸업 후 개인 사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 2년째 고군분투 중이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지만 꼭 잘 될 자신있다고 하는데, 아슬아슬했던 시기도 있지만 그래도 중심을 다시 찾았으니 다행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IT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한 뒤 이런 직딩 생활을 연장할까 고민하다가 훌훌 털어버리고 자기 일을 위해 다시 혼자가 되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 취업을 통해 업무 능력을 터득한 뒤에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에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그녀.

"조직 내에서 배워서 아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바로 실전에 뛰어 들어서 일을 하며 알아서 습득하는 거야." 라고 말해주곤 했다. 

발품을 팔아 직접 구인도 하고 국내외를 오가면서 투자도 받아가며 내적으로도 점점 단단해지고 성숙해감을 느끼고 있단다.

내가 아는 그녀는 머리도 명석한 편이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다보니 기회도 여럿 마주하게 되었을거고 결정도 제법 신속하게 내리는 스타일이라 빠르게 성장했을거다.

 

취업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고 한다.

단지 제한된 시간과 노력 하에서 최대의 효용을 창출해내는 게 성장의 필수 조건인데, 기업에서는 각종 제약들로 인해 그러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본인이 정말 배우고 싶은 업무를 하고 있는 회사원들을 제외하곤 나머지들은 굉장히 비효율적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거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곳인 회사에서의 시간을 효율적이지 못하게 쓰고 있다. 버려지는 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양이 취업을 하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듣다보면 이 시대의 직장인으로서 참 생각이 복잡해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회사에선 쓸데 없는 일들이 참 많다.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던가, 허드렛이 너무 많다던가, 보고를 위한 보고를 하는 등의.

꼰대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일들부터 잘해야 한다고 하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한 번만 해보면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잡일들이다. 그걸 굳이 합리화해가며 지속해야 하나?

 

회사 생활을 통해 나의 강점을 더욱 극대화 시키고 어떤 분야에서의 재능을 꽃 피우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고 싶은데, 사원증을 목에 건 우리들이 그러기엔 참 어렵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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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목표는 부모님께 효도하기다. 취업해서 효도하기.

굉장히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아이다. 큰 욕심도 없고 조용하게 그리고 별 일 없이 사는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별 욕심 없이 살던 그에겐 '취업 성공' 이라는 타이틀이 현재 가장 크게 부리고 있는 욕심일거다.

졸업 후 2년 남짓 취업준비생으로 살고 있는 그가 이번 하반기 결과는 아직 말해주고 있지 않다.

 

인상 좋고 부지런한 스타일인지라 장사와 같은 자영업을 해보는 것도 어떻겠냐고 몇 번 추천해준 적 있다. 혹 하는 듯 하면서도 의례 '그래도 취업해야지~' 하며 마음을 굳히는 걸 보면 얘는 이젠 어쩔 수 없는 회사원이 되어야만 하겠다고 느껴지곤 한다.

본인 입장에서도 다년간 모든 걸 쏟아 부은 취업준비를 이제 와서 그만두긴 쉽지 않을거다. 설령 자신이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 를 범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군의 경우 취업 준비를 꽤나 장기간 하다 보니 취업에 대한 갈망은 커지고 있으나 패기와 당당함이 많이 줄었다.

취업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 적당한 헝그리함과 또 적절한 양의 자신감이 공존하는 듯 했다.

저울로 잰 듯 같은 양보다는, 어떨 땐 취업을 해야만 하는 간절함이 눈에 보이면서도 동시에 본인은 인재라는 당당함의 아우라가 온 몸에 휘감겨 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가 잘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가고 있으니 취업이 되던 안 되던 녀석의 내일은 밝을거다.

 

취업을 통해 평탄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우리  군.

아마 다른 취업준비생들도 대다수는 이런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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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넷은 모두 잘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자기가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있으니 잘들 살고 있는 것일거다.

오로지 본인의 선택에 따라 결정한 삶의 그림을 쓱쓱 그려나가고 있다.

그러기에 어떤 결과를 맞이하던 이들은 적어도 후회는 남지 않을 거다.

 

취업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건 생각 이상으로 고차원적인 선택의 문제다.

 

10대에 대학교 진학이 다가 아니었듯 20대엔 취업이 다가 아니다.

무작정 대기업을 신봉하는 것도, 스타트업 비즈니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할 태도다.

잘 생각하고들 있겠지만 더욱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인생의 갈로다.

 

주위를 둘러봐.

대리님이 취업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며 그 답을 찾았을까?

 

스타트업 5년 차인 사장님이 대학 졸업 이후 바로 사업에 뛰어든 목적은 뭐였을까?

5년의 시간동안 충분히 만족하며 지내고 있을까?

 

모두들 취업에 대한 첫 결정을 내릴 때의 이유가 지금까지 변함 없을지 참 궁금하다.

 

이번엔 나를 돌아보자.

내가 취업한, 혹은 취업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