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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99 입사 6개월차인 동생에게

얼마전 참석했던 친척 모임에서 누가 나더러 동생 좀 잘 챙기라더라? 사촌집 남매처럼 좀 가까이 지내래. 좋은 말씀 귀댁 자녀들부터 전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대답하려다가 그냥 '예^^' 하고 치웠으~ 쇼윈도 안 해서 그렇지 우린 이미 우리만의 방식으로 친한데 말야. 그치?

 

만나면 인사 다음으로 '회사는 좀 다닐만하냐'가 고정 멘트로 나오는 걸 보면 이젠 정말 사회인 남매구나 싶다. 입사 반년 정도된 지금까진 고개를 끄덕끄덕하니 다행이네. 회사가 어떠니 누가 어떠니, 할 말 많을 시기일텐데도 덤덤히 잘 다니는 모습이 기특해. 낯선 것도 힘든 것도 또 이해 안 되는 것도 많을텐데 별 내색 않고 적응하는거 보면 나보다 낫다싶다^^

 

 

엄마께선 사회생활 먼저 시작한 오빠가 좋은 이야기 자주 해주라셔. 근데 네가 알다시피 내가 또 전형적인 회사형 인간은 아니잖아. 괜히 나서서 하는 말로 너 혼란스러울까봐 hoxy 질문 들어오면 답변해주는 콜센터 스탠스를 유지하려고 했지. 근데 여섯 달이 지났는데 고객의 소리가 여전히 0인겨. 이거 잘못하면 차장 달 때쯤 질문하겠다 싶어서 자주 물을만한 질문 몇 개 솎아봤s.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것들도, 맘 속에 맴돌던 주제도, 역시 오빠 너새끼답다 싶은 시선도 있을 거야.

 

그럼 심심할때 5년차 꼰대의 편지 마저 읽어보게나, 제군.

 

 

 

 

* 아침 챙겨 먹기

새삼스럽게 무슨 밥을 먹으라는 소린가 싶지?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데 아침까지 챙겨먹고 출근하는건 딴세상이야기긴해. 근데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이잖아. 자리에 앉자마자 할 일이 태산일텐데 빈속이면 당 떨어져서 일찍 지쳐. 허기져서 점심때 과식도 하게 되고. 구첩 반상, 쌀밥에 국물, 뭐 이런거 아니더라도 과일에 시리얼 한그릇정도면 점심 전까진 든든히 버틸 수 있다? 오믈렛에 토스트에 피자에 핫도그에 과카몰리 샌드위치까지 다 섭렵(?)해봤는데, 삶은계란 두세알에 바나나가 빠르게 챙기기엔 장땡이더라.

 

* 일주일에 두 번은 부모님과 통화하기

이건 나도 노력중인 부분이야. 어른들은 목소리 듣는 걸 참 좋아하시더라. 비록 목소리만 맞닿는거지만서도 뭔가 서로의 정을 확인하는것 같으시대. 독립해서 사는 경우 평균적으로 두세달에 한번꼴로야 찾아 뵙게 되는데, 그럼 1년에 4번에서 6번 정도. 앞으로 20년 동안 100번밖에 못뵙는거야. 30년으로 넣고 계산해봐도 200번이 채 안돼. 이삼십년 참 긴시간 같았는데 쪼개보니 너무 현실적이라서 더 슬프더라.

효도 별거 있나? 회사원 연봉으로 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드리겠어. 그저 자주 찾아뵙고 얼굴 보여드리는게 최고지싶다. 몸이 떨어져있으니 차선으로 전화라도 자주 드리자. 아까 막 통화했는데, 나보다 딸래미 목소리 들으면 더 기뻐하실 거야ㅋㅋ

 

* 주말 중 하루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 보자

일주일 중 하루는 재충전이 필요해. 3년 4년 딱 정해진 학교생활이랑 다르게 이건 마라톤이니깐.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 속에서 생활한다고 고생했어. 사람을 대한다는게 생각보다 되게 지치는 일이야.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만해도 몸은 긴장된 상태일거거든. 싫은 놈도 적당히 좋은척 연기해줘야하고 그와중에 계속 추가되는 업무도 쳐내야 하고. 몸과 마음이 수축은 하는데 이완이 안된다. 그러니 하루정도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해. 잠도 푹 자고 조용한 집에서 창밖 참새소리도 들어보고, 잠깐이라도 여유느끼며 쉬자. 친구들과 만나면서도 활력을 얻기도 한다지만 그걸 갈무리해서 동력화하는건 결국 혼자 보내는 시간에 이뤄지더라.

 

* 초년생일땐 사내 연애는 비추할게

사람을 잘 보려면 우선 충분히 만나봐야 한다지만(많이 만나라는 말은 또 아니고 적당히..라면 감이 오나?) 일단 1년차에는 회사사람과 교제하진 말아보자. 만약에 괜찮은 사람이 보인다 싶어도 일단 관망(?)의 자세로 지켜보게나. 겪어봤겠지만 대학교 신입생은 한두 학번 위 선배가 멋있게 보일 때가 있다잖아. 반년 언저리 지나면 그거 선배 버프 들어갔던거란 걸 깨닫게 되고.

세상에 비밀은 없고 특히나 회사에서는 대서특보감이 돼버려. 헤어지든 안 헤어지든 가십의 주인공이 되는게 크게 좋을건 없잖아. 이성이 감성보다 살짝은 앞서는 연애를 해야 아플 일이 줄어들더라.

 

*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긴 힘들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는 게 사람 사이고 특히 회사같은 조직에선 그게 더 커져. 업무로 얽히고 섥히다보니 작은 사건으로도 관계가 어긋나기도하고 개선되기도 해. 너무나 다양한 성향과 다채로운 배경들 중에서 맞는 사람을 찾는건 1만 피스 퍼즐 조각 앞에 서있는 것과 같아.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면 너무 좋겠지만 하나하나 맞춰주다가 너 골병든다. 어느날 한쪽서 빈정 상하면 금방 틀어지기도 하고. 그니깐 포기하고 인정하는 편이 맘 편할걸?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겠지만 개새끼이기도 하다는걸.

 

* 회사사람들은 회사사람들이야

아니야~ 걔네 절대 너 친구 아니야~ 말 그대로 '회사'와 '사람'의 합성어란 걸 잊지말자. 친하다고 착각하다가 실수하는 경우, 괜히 마음 주다가 혼자 서운함 느끼는 케이스 많이 봤다. '이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거일수록 절대 말하지마. 괜히 피보는 일 생긴다. 고민이나 억울하고 화 짜증나는 일은 입사 전부터 알던 진짜 네 친구들이랑 퇴근 후에나 얘기 나누기로 하고.

5년차인 나도 간혹 깜빡깜빡해서 아차! 싶을 순간이 있긴해. 회사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로 잘 지내되 친구나 언니 오빠처럼은 대하진 마. 저쪽서 인식하는 너는 그냥 '회사원J'이기 때문에. 삭막하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알아서, 눈치껏. 갓잇? 혼자 바보되서 마음 고생하지 않기다.

 

*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는 한 번만 해도 괜찮아

그렇지 않던 사람도 긴장해서 어버버하는 신입사원시절이야. 굴러 들어온 돌은 행여 가루 흘리지 않았나 싶어서 괜히 조마조마해하지. 당황하면 반응 속도가 늦어지고 실수가 잦아져서 사과할 일도 많아지게 되더라. 고맙고 미안한 상황에서는 말하는 게 예의지만 너무 많이하면 그게 또 탈이 나. 되려 가벼워 보이거나 얕잡혀 보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해. 특히 죄송하다는 말은 입에 붙어버리면 힘들어지니깐 정말 잘못한 상황에서나 진심 담아서 한 번만, 오키?

 

* 명함을 꺼내지 않고도 너를 소개할 수 있겠어?

비행기에서 입국신고서 쓸 때 직업란에 멈칫해본적 있으려나? 회사원의 'ㅎ'를 쓰다가 잠깐 일시정지. 맞긴하다만 그리 쓰기가 좀 슬픈거야. 가장 안타까운게 회사 타이틀 떼면 내세울게 없는 직장인이거든.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ㅠ

회사에서 에너지를 다 쓰지 않아도 괜찮아. 반 정도는 아껴뒀다가 퇴근 후에 하고 싶은 일에 써.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요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운동하는직장인 #글쓰는회사원 이런거 많잖아. 러닝이 좋으니 '러너입니다' 피아노 배우고 싶었으니 '피아니스트입니다'처럼. 전공자도 아닌데 해도 괜찮냐고? 알게 뭐야,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어쨌거나 '저는 회사원입니다'보단 나아 보이는 소개 멘트지 않아?

 

* 예쁨 받고 싶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져도 괜찮아

미움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일 잘하고 예의 발라도 인정까지만 받을수 있고 예쁨은 상사와 코드까지 맞아야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야. 그거 때문에 마음 고생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주변에 참 많다. '예쁨 못 받는것보단 나으니까'란 의견이 참 슬프더라. 그 형들은 남이라 굳이 왈가왈부하진 않았는데 너는 가족이니깐 좀 할게? 따지고보면 다 같은 성인에다 똑같은 회사원 신분인데 왜 같은 급에게 예쁨 받으려고 해? 그러지 말자. 할 말 있으면 하고, 아니다 싶은건 의문 가져봐도 괜찮아. 신입사원이지 애완사원은 아니니깐.

 

* 너무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

잘 하고 싶으면 열심히 해야 한다. 다들 열심히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해. 연봉도 올려야 하고 재태크도 해야하고 또 자기계발도 챙겨야 해.. 주변에서 해주는 '열심' 이야기 너무 귀담아 듣지마. 흥청망청 핑핑 노는것보다야 좋긴 하겠지. 근데 고생에 비해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안보이는 것 같더라. 그러니깐 너무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

 

 

적고보니 다 알아서 잘하고 있을법한 내용뿐이네. 서른이 넘은 내게 '고구마 먹는 법! 껍질 잘 까서 목 막히지 않게 우유나 물이랑 같이 꼭꼭 씹어 먹기' 메시지 보내시는 부모님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

 

얼마 전 네 생일이라고 만나서 저녁 먹었지. 아무리 바빠도 이름 있는 날은 서로 챙겨주란 엄마 말씀 듣길 잘했다싶더라. 꽤나 드라이한 성향의 우리는 겉으로 보이기에도 서로 살갑지 않긴 하지. 내가 좀 더 신경썼어야 했다싶다. 내가 겪은 어려움을 너는 피해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간 했던 말들이 너무 매정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다정하게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을텐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본의 아니게 서운하게해서 미안해.

 

딱 90년생인 내가 올해부론 사원 명찰을 내려놓게 됐어. 90년생들은 이제 갔고 중후반생인 너희들 차례야. 진짜 신입사원의 눈높이에서 앞으로 많은 얘기 들려주길 바랄게. 좋은 사원을 넘어 위대한 사원이 되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