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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김사자] Ep.97 성과급 180만원 받았을 때 벌어지는 일

메신저 친구 목록을 내리다 꽤 오래 연락하지 않은 학교선배의 이름을 발견했다. 사실 이름보다 상태 알림말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혹시 돈이 모자란건 아닌지 확인해 봅시다' 

뭔소린가 싶어 몇 초 보다가 다시 목록을 휙휙 내렸다.

 

그 타이밍에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눈 한번 깜빡이는새 여섯 개나 됐다. 이런 경우 엮이면 보통 피곤해진다고 본능이 말한다. 이걸 지금 바로 읽어도 되려나 싶다가 수신 메시지 수가 10을 찍는 순간 우정으로 클-릭.

 

- 야

- 양

- ㅇㅇ

- ㅇ

- ㅅㅂ

- 도랐다

- 안보냐

- 봐라바롸ㅏ

- 먼일이있늦ㄴ지ㅣ아냐?

- 슬프다ㅏ형이지금

- ㅇㅇ뭔일인데?

- 오늘 성과급 나왔거든?

- ㅇㅇ

- 얼마 받은지 아냐?

- ㄴㄴ

- 하ㅏ아ㅏ나 스버ㄹ 백팔십 받았다 백팔시이빕!!!

 

1년 간의 온갖 고생에 대한 대가가 월급의 반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1차 절망. 월 단위로 쪼개봤더니 한달에 고작 15만원 더 받은 셈이었다며 5차 같은 2차 절망을 했단다. 작년에 이어 조(兆)단위 수익을 냈다는 기사를 내놓은 회사는 임원은 그리도 챙겨주고선 직원들에겐 짜냐고 절규한다. 라면 물 올리고 온 중에도 이어진 하소연은 소싯적 한컴 타자 1천타였던 그의 역량을 펼치는 장이었고 나는 랜선 만남을 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구 녀석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늦겨울 회사 동기들과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길이었단다.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인 여의도를 가로지르며 금융기업들을 많이도 스치다 문득 나온 '아마도 여기서 우리가 가장 연봉 낮지 않을까?.'

그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애매한 말에 모두 말이 없었고 그렇게 그들은 섬의 끝자락에 도착했단다.

 

 

메신저에서의 내 리액션이 충분하지 않았던지 결국 지상에서 대작을 하게 됐다. 나도 비슷한 처지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의 날이다. 180을 위로하는 날이다. 그래서 기분은 좀 나아졌냐는 질문에 대답은 않고 또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더라.

 

"다음날 딱 출근을 했어. 엘베가 올라가다가 하필 18층에 서더라? 하, 이놈의 18이 내 발목을 지겹게도 잡는다 싶으면서 사무실에 들어갔지. 근데 아직 근무시간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일하는건데? 어제도 초과수당 없는 야근해놓고 오늘도 또 저렇게 열일하더라. 말로만 듣던 노예근성인가 그게? 개처럼 일해서 개똥처럼 받구만. 딱 받은 만큼만 일할 거다. 그럼 채찍 하나 든 다른 노예가 욕하겠지. 요즘 애들 정신상태 어쩌고 하면서."

 

어린이 웅변대회 최우수상 출신의 연설에 뭐라고 화답해할지 몰랐다. 대신 사장님께 여기서 가장 시원한 소주 한병과 가장 맛있는 문어 숙회 한 접시를 달라고 했다. 오늘 밤은 차가운 알콜로 열을 내리고 쫄깃한 회를 꽉꽉 씹게 해줘야겠다. 물론 그 입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야, 1억8천 받은 사람처럼 먹고 싶은거 다 시켜! 물론 돈은 N빵인거 알지? 그래요, 이따가 같이 로또나 사러 갈 우리는 언젠가 어디에선 터지리라 기도하는 보통의 직장인들이랍니다.

 

 

 

 

"다들 고민이 안 있겠냐? ○이 걔도 생각보다 박봉일텐데."

"그래? 연봉이 얼마길래?"

"나도 반년 전쯤 들었던건데, ■원 정도였을걸?"

'뭐야, 나랑 비슷한데..'

 

180만원의 사나이 외에도 성과급이니 연봉 인상이니 이야기들 나올 시기다. 올해도 역시나 금융권 아이들의 얼굴이 좋다. 셈에 약했던 나를 제외한 다수의 과 동기들은 Money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됐다. 자연히 우리들의 연봉도 앞자리가 달라졌고. 자연스럽다기엔 액수가 꽤 큰, 이런 경우를 보고 대학 헛다녔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4년간 보고 듣고 쓴 것이 나띵 벗 돈이었는데 지금 내 잔고가 나띵이라니깐.

 

제조업 실적은 바다 위 쪽배 마냥 출렁거린다.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는 기사가 동네방네 띄워진 해에야 금융권 보통 수준의 성과급이 나온다. <울프 오브 월스트릿>을 열번은 봐놓곤 정작 '승냥이 오브 여의도'도 되지 못했다. 일하는 곳은 같은 동네지만 지갑의 그립감은 다른 것을 느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가 심해지겠구나 싶었다.

 

누군가 어디 취업이나 이직을 했다고하면 가장 먼저 회사 이름을 검색해본다. 그다음으로 거기 연봉을 검색해보게 된다. 애초에 회사이름+연봉을 한 번에 검색하는 마음 급한 사람들도 있다. 처음으로 공채를 준비하던 5년 전만해도 연봉보단 다른 걸 중시했었는데. 그 놈이 그 놈이자 그 밥에 그 나물임을 알게 되면서부턴 어떤 회사인지보다 얼마를 주는 회사인지가 궁금해지게 됐다. 

 

학생들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그정도 월급 차이 가지고 뭘 그리 유난떠나 싶을 수 있다. 취준생들은 돈 적게 받아도 좋으니 취업이 간절할 수도 있다. 나조차도 그땐 돈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을 이해 못했으니깐. 근데 좀 더 과거로 가보면, 수험생일 때는 대학생을 무작정 동경했었고 미필이었을 적에는 군필을 참 부러워했었다. 겪어보기 전엔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연말 성과급 180만원 받으며 비로소 눈을 뜨겠지. 지극히 현실적이라 더 슬픈 현실 속에서.

 

월급 주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직장에 부여하게 될시 서로가 힘들어진다는 말을 들은적 있다. 회사생활 반십년의 나도 그 선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늘어가는 실망감에 월급만큼의 책임감만 저울 위에 놓게 되지만 마지막 남은 정 때문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더 올리고 다시 후회하는 일이 반복된다.

 

직장인들에겐 매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진 않지만 일단 생활을 영위할 순 있는 수준이다. 성과급으로 떨어지는 몇 백만원 없이도 사는덴 지장 없다. 천만원이 없어도 삶이 크게 흔들리진 않는다. 물론 있으면 조금 더 풍족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막상 조금 받게 되면 기분이 참 별로긴 하다. 화나고 서운하고 맥도 풀린다. 그렇게 휘둘리는 마음을 이따금씩 알아챌땐 속물스럽다며 다시 한번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FIRE 족'에 대한 동영상을 보게 됐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줄임말로 30~40대에 바짝 경제적 부를 일구고 이른 은퇴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상으로 만나게 된 미국 파이어족 형은 여러 갈래의 수익원을 창출해내야 하는 것은 물론 최대한 절약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싼 음식을 먹고, 고급 물품을 사는 그런 소비의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사지 샵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 온몸에 뭉친 근육이 풀릴땐 참 돈이 좋다 싶다. 마치고서 좋아하는 위스키 한 잔 딱 하고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지. 그전에 마블링 고운 소고기까지 먹었다면 더 행복할 거다. 돈 쓸 곳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절약을 하냐고요.. 

 

어뭬리칸 화이어족 형도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행복을 위한 수단임에 동의를 했다. 그래서 본인도 돈을 빨리 또 많이 벌고픈 거고. 지출을 줄이기 위해선 행복에 대해 조금 더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행복이란 감정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금액을 되짚어보기. 그에 있어 그 비용은 단돈 1달러였다. 그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려 세가지나 있었다는데, 1)강아지와 공원 산책하기  2)친구들과 기타 치며 노래부르기  3)독서와 글쓰기

 

월급이 얼마니 연봉이 어느 정도니 성과급은 또 어떻냐는 질문에 둘러쌓여 있는 직장인들. 그들의 역린(逆鱗)인 월급과 연봉.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꺼내는 시늉만해도 불편해지는 민감한 주제다. 네 명이 모이면 세 명은 월급에 불만이다. 어지간히 많이 받는 사람조차 자기 몫에 만족하질 못하는 경우를 보면 우리는 정녕 행복해질 수 없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엔 대체로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스스로를 조이고 있던건 아닐지.

 

직장인은 보통 두 부류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직장인과 돈을 많이 받는 직장인. 하지만 행복한 직장인은 하나란다.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 직장과 돈이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행복해할줄 알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될 수 있을까?

 

성과급이 나오며 벌어지게 된 일. 분노와 한탄으로 엉망이 된 판을 소주와 회가 그나마 정리한 올해는 가히 비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년 레퍼토리는 어떻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굳세다만 적게 받더라도 크게 흔들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행여 성과급 대신 무급이 찾아오더라도 변함없이 행복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175cm의 내가 가로 14.8cm에 세로 6.8cm인 종이쪼가리에 울고 웃는건 너무 모양 빠지잖아!

 

끝.